공사비 껑충, 추가 분담금 부담 탓 흥행 장담 어려워…사업성 지역마다 엇갈려 “분당 뺀 나머진 싸늘”
#선도지구 지정, 기대와 우려 공존
정부가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에 최대 3만 9000가구에 달하는 선도지구를 지정한다. 선도지구로 지정되면 1기 신도시 내에서 가장 먼저 재건축이 추진된다. 지난 5월 22일 국토교통부는 ‘1기 신도시 정비 선도구역 선정 계획’을 발표하며 분당 8000가구, 일산 6000가구, 평촌 4000가구, 중동 4000가구, 산본 4000가구 등 총 2만 6000가구를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지자체별로 1~3개 구역을 추가로 선정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도지구 선정기준은 5개 항목으로 이뤄진다. △주민동의 여부(최대 60점) △정비사업 추진의 파급효과(최대 20점) △정주환경 개선의 시급성(최대 10점) △도시기능 활성화 필요성(최대 10점) △사업의 실현 가능성(가점 5점)이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도시기능 활성화 필요성이나 사업의 실현 가능성은 정성평가이기 때문에 국토부나 지자체 입김이 충분히 들어갈 여지가 있다”며 “편의시설이 좋은 역세권 주변 단지 위주로 선정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네이버 부동산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온다. 경기도 지역에 거주한다고 밝힌 한 네티즌은 “분담금 기본 3억~5억 원은 깔고 가야겠다. 사업성 좋은 곳은 그 이상 오르기에 투자금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반면 다른 네티즌은 “나중에 추가분담금 6억~7억 원 소리 나올 수도 있는데 너무 쉽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되면 좋겠지만 재건축 분담금 내면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선도지구 지정 등으로 가격이 오르면 팔고 다른 지역에 집 사고 싶다”고 밝혔다. 이번 선도지구 지정이 수도권 1기 신도시로 한정되면서 대전시 둔산동이나, 부산시 좌동 등 지방 주요 도시 주민들은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1기 신도시까지는 서울에서 멀지도 않고 접근성 면에서 나쁘지 않다. 외부에서 수요가 유입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여러 가구가 이동하려면 이주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제대로 못하면 전월세 가격과 부동산 가격을 한꺼번에 밀어올린다. 동시에 진행하면 안 되고 순환개발방식을 택해 순차적으로 진행해야 시장을 안정화하면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건설공사비 3년간 26% 상승
지역마다 사업성이 엇갈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지역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이다. 재건축 사업의 성공 여부는 조합원의 추가 분담금 규모에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추가 분담금이 늘어날수록 주민들의 이자 비용 등 금융 부담이 높아지고 집값 상승으로 인한 시세 차익 효과를 누리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건비와 자재값 상승 등으로 인해 건설공사비가 지난 3년간 26%가량 상승하면서 분담금 우려는 더욱 커진 상황이다.
용적률을 최대한 높이고 일반 분양가를 높게 책정할 수 있는 지역이 유리하다는 뜻이다. 분당은 1기 신도시 중 평균 용적률이 가장 낮고 다른 1기 신도시들보다 시세가 높아 일반 분양가를 높게 받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분당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분위기가 싸늘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일산은 집주인들은 동의받느라고 바쁘지만 집값 높이는 데 한계가 있어 매수자들의 관심이 적다”며 “평촌같은 경우는 역세권에 있는 단지들이나 목련2단지, 향촌 마을처럼 수요가 높은 아파트들이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고 비선호 단지에서 선도지구 선정을 노리고 있어 반응이 없다. 산본이나 중동도 사업성 없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건설 경기 침체에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서울 강남권을 비롯한 주요 재건축 추진 단지들도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라 흥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1분기 재개발 수주액은 2조 6309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7% 감소했다.
4월 29일에 마감된 강남구 도곡동 도곡개포한신아파트는 평당 920만 원 수준의 공사비를 제시했으나 재건축 시공사 선정 입찰에 단 한 곳의 건설사도 사업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12차와 신반포27차도 경쟁입찰이 성사되지 않아 각각 롯데건설, SK에코플랜트와 단독으로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상반기 서울 성북구 길음5구역 재개발사업 시공사 선정 입찰 결과 역시 포스코이앤씨 한 곳만 사업제안서를 제출하면서 유찰됐다. 최근 진행된 용산 한강변의 47년차 재건축 아파트 ‘산호’ 역시 시공사 입찰에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발표한 추진 일정도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올해 11월 선도지구 지정을 마치고 2025년 특별정비구역을 지정하고 2026년 시행계획 및 관리처분 계획 수립,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를 시작한다는 로드맵을 내놓은 상태다.
한문도 연세대 경영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여러 단지가 합쳐서 조합을 만드는 데도 1년 걸리고, 사업 시행 인가 준비하면서 감정평가, 아파트 배정 방식, 관리 처분 계획 수립 시 상가 문제, 이주 대책, 시공사 선정, 공사 가격 입찰 등 풀어야 할 이슈들이 산더미”라며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서울시 공공임대주택도 몇 년째 이주대책 때문에 꼼짝을 못하고 있는데 절대 가능하지 않은 속도를 제시하면서 정부가 희망고문에 나섰다”라고 지적했다.
‘뉴타운’ 추진에서 발생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재개발·재건축이 잘 작동하려면 희소성이 있어야 하는데 선도지구를 너무 많이 지정하려고 한다. 예전에 수많은 지역을 뉴타운으로 지정했다가 사업이 잘 진행되지 않아 대부분 해제하면서 해당 지역이 황폐화한 사례가 있는데 기시감이 든다”며 “높은 가격에 분양해야 분담금이 적어지는데 그게 가능하려면 주택 가격 상승이 전제돼야 한다. 그런데 주택 경기 활성화를 위해 선도지구 정책을 꺼내들면서 완전히 역순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개발을 기다리며 관리를 소홀히 하면 노후화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경우 사업 진행에 실패하면 비용만 발생하고 집값은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최은영 소장은 “조합이 설립되는 단계부터 대출이 발생하고 오도가도 못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데 정부는 용적률 정도 풀어주고 모든 리스크를 민간에 떠넘기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문도 교수는 “3기 신도시 보상이 다 끝났기 때문에 1기 신도시 재건축·재개발 기간에 물건이 나올텐데 누가 1기 신도시로 가려고 하겠나. 한때 20%에 달했던 재건축·재개발 현장 수익성도 현재 8% 수준밖에 안 되는데 까딱하면 적자”라며 “뉴타운보다 더한 사회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라고 지적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