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독지가 할머니’로 봐주세요?
▲ 지난 2003년 한 모임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왼쪽)과 김승연 한화 회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
최근엔 한화그룹 내에서 학교법인으로의 지분 증여가 이뤄져 재계 호사가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김승연 회장 일가에서 적지 않은 양의 계열사 지분이 한화가 갖고 있는 학교법인으로 증여된 것이다.
지분 증여의 주인공은 김 회장 어머니인 강태영 씨다. 강 씨는 지난 10월 11일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한화 지분 108만 주를 전량 천안북일학원에 증여했다. 10월 11일 ㈜한화 주가 2만 8000원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강 씨가 증여한 지분의 가치는 300억 원을 넘는다. 이로서 강태영 씨는 ㈜한화 대주주 명단에서 사라진 반면 천안북일학원은 종전의 29만 주에서 137만 주로 지분을 늘리며 지분율을 1.82%까지 끌어올렸다.
천안북일학원의 ㈜한화 지분 증가는 그룹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화는 한화그룹의 지주회사다. 한화석유화학의 지분 24.21%를 비롯해 대한생명보험 지분 26.30%, 한화개발 지분 52.32%, 한화국토개발 지분 50%를 법인 지배목적으로 소유하고 있으며 한화건설과 한화기계의 지분은 100% ㈜한화가 소유하고 있다. ㈜한화에 대한 지분율이 높아질수록 그룹 전체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지는 셈이다.
현재 ㈜한화의 최대주주는 김승연 회장으로 지분율이 22.64%이며 ㈜한화가 자사 지분 7.79%를 확보해 2대 주주에 올라 있다. ㈜한화 지분구조에서 천안북일학원은 김 회장 장남 김동관 씨(4.41%)와 한화증권(2.25%)에 이어 5대 주주로 올라선 상태다. 이번 증여를 통해 천안북일학원의 ㈜한화 지분율은 김 회장 차남인 김동원 씨(1.66%)와 삼남 김동선 군(1.66%)보다도 높아졌다. 지분구조상으로만 보면 천안북일학원의 ㈜한화에 대한 지배력이 김 회장의 두 아들들보다 커진 셈이다. 천안북일학원은 ㈜한화 지분 외에도 한화석유화학 지분 0.23%(23만 1456주)를 확보하고 있다.
천안북일학원은 천안북일고등학교와 천안북일여자고등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이다. 등기부상에 기재된 출자방법은 ‘출연’이다. ‘한화가 교육사업을 위해 출자한 것일 뿐’이라 추측할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를 그룹 지배구조와 연결 짓는 시각도 적지 않다. 장학재단이나 학교법인 등이 대기업의 지배구조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해온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상태다. 장학재단이나 학교법인 같은 공익재단에 대한 기부엔 증여세가 필요 없기 때문에 해당 재단에 대한 지배력만 확실하다면 증여세 없이 지분을 세습할 수도 있는 셈이다.
천안북일학원 이사장은 김승연 회장이다. 천안북일학원 등기부에 나온 이사진은 이사장인 김 회장을 비롯해 이순종 ㈜한화 부회장, 박원배 전 한화석유화학 부회장, 어한수 전 한화그룹 연수원장 등 한화 측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교육계 인사로는 이정표 전 천안북일고 교사와 엄동일 천안북일고 교장이 이사진에 올라있다. 이사진 명부에 한화와 이해관계가 없는 인사는 단 한 명도 없는 셈이다.
㈜한화의 주가는 12월 5일 종가 기준으로 3만 4600원이다. 이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천안북일학원이 지닌 ㈜한화 지분의 평가액은 470억 원을 상회한다. 천안북일고를 지역 명문으로 키워낸 천안북일학원이 향후 한화 지배구조와 경영권 승계에 영향을 미치게 될지 재계 호사가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