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수 관여 정황 드러나고 탄핵 청원 이어져 더 부담…재표결 시 수정안 만들어 여야 합의 의견도
제22대 국회 첫 임시국회가 7월 4일 마무리됐다. 4일 본회의에선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순직해병 수사방해 및 사건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이른바 ‘채 해병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재석의원 190명 중 찬성 189명·반대 1명으로 가결 처리됐다.
국민의힘은 야당 주도의 특검법 강행 처리에 반발해 표결을 앞두고 퇴장했다. 하지만 안철수 의원은 남아 찬성표를, 김재섭 의원은 반대표를 던졌다. 이로써 채 해병 특검법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국회 재표결을 거쳐 최종 폐기된 지 37일 만에 다시 윤 대통령 앞에 놓이게 됐다.
민주당 포함 야당은 22대 국회 시작부터 입법을 속전속결로 진행했다. 개원 첫날인 5월 30일 민주당은 채 해병 특검법을 ‘당론 1호’로 재발의했다. 국민의힘이 상임위 참석을 보이콧하는 동안 야당은 법제사법위원회 첫 전체회의에서 특검법을 곧바로 상정, 소위 심사를 거쳐 재발의 22일 만에 법사위를 통과시켰다.
야당의 채 해병 특검법 처리에 국민의힘은 의석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7월 3일 채 해병 특검법을 상정하자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로 항의의 뜻을 보였다. 하지만 약 26시간 만에 토론종결 동의에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며 강제 종료됐다.
여당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계획이다. 또한 국회 파행으로 맞불을 놨다. 채 해병 특검법 처리 직후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의원들과 규탄대회를 열고, 5일 예정됐던 22대 국회 개원식 불참을 선언했다. 추 원내대표는 “국회에 분풀이하듯 ‘윽박의 장’으로 만든 민주당과 우 의장의 반성 없이는, 22대 국회 개원식에 참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서도 “여당이 없는 개원식에 대통령을 초청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며 “여당은 국회 개원식에 대통령이 참석하지 마실 것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현직 대통령은 한 차례도 빠짐없이 국회 개원식에 참석해 연설을 했다.
대통령실 역시 강하게 반발했다. 대통령실은 특검법 통과 직후 “위헌성 때문에 재의결이 부결됐으면 헌법에 맞게 수정하는 게 상식이고 순리일 텐데 오히려 위헌에 위헌을 더한, 반헌법적 특검법으로 되돌아왔다”며 “헌정사에 부끄러운 헌법유린을 개탄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야 충돌 여파로 5일 예정된 22대 국회 개원식은 무산됐다. 국회의장실은 “연기된 개원식 일정은 추후 확정 고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치 국면이 이어지면 개원식이 언제 열리게 될지 예측하기 힘들다. 1987년 개헌 이후 가장 늦은 개원식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최장기간 지연 기록은 2020년 7월 16일 열린 21대 국회다.
정치권에선 22대 국회도 ‘거부권 정국’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윤 대통령이 이번 채 해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대통령 취임 이후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15개로 늘어난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30여 년간 행사된 거부권 9건(노무현 전 대통령 6개·이명박 전 대통령 1개·박근혜 전 대통령 2개)보다 많은 횟수다.
윤 대통령으로선 지난번 거부권 행사 때보다 상황이 좋지 않다는 분석이다. 채 해병 사건 관련 윤 대통령의 수사외압 관여 정황 일부가 드러났다. 앞서 지난 6월 21일 국회 법사위에서 열린 채 해병 특검법 입법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은 ‘신 전 차관도 (대통령과) 통화한 게 나오고 있다’는 장경태 의원의 질의에 “그것은 (외압 행사가 아니라) 회수에 관한 것”이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이 채 해병 사건 기록을 회수하는데 관여한 정황이 사건 관계자 진술로 나온 것은 처음이다. 장 의원은 “회수가 외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의 경우 “임기훈 당시 대통령실 국방비서관이 전화가 와서 경북경찰청에서 전화가 올 거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부재중 전화가 경북경찰청일 거라고 예측하고 경북 경찰에 다시 전화했다”고 말했다. 채 해병 사건 기록 회수를 국방부가 아니라 대통령실이 주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최근 김진표 전 국회의장 회고록으로 촉발된 ‘윤석열 대통령의 10·29 참사 조작 가능성 발언’ 논란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김 전 의장은 회고록에 2022년 12월 5일 국가조찬기도회를 계기로 가진 윤 대통령과 독대에서 윤 대통령이 자신에게 “이태원 참사에 관해 강한 의심이 가는 게 있어 아무래도 결정을 못 하겠다”며 “이 사고가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은 “국회의장을 지내신 분이 대통령에 독대를 요청해 나눴던 이야기를 멋대로 왜곡해서 세상에 알리는 것이 개탄스럽다”고 반박했고, 이후 7월 1일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서는 이도운 홍보수석이 “대통령이 했다는 (10·29 참사 조작 가능성) 발언을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발언 자체를 부정했다. 하지만 박홍근 당시 원내대표가 김 전 의장으로부터 전해 들었다며 당시 기록한 관련 메모를 공개하는 등 복수의 증언이 나오면서 야권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 역시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는 추세다. 한국갤럽이 7월 2일부터 4일까지 실시한 자체 여론조사 결과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26%에 그쳤다. 반면 ‘잘못하고 있다’는 64%를 나타냈다. 지지율이 4월 총선 이후 석 달째 20%대 초중반에 머물고 있다.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 평가자들에게 선택의 이유를 묻자 ‘해병대 수사외압’과 ‘거부권 행사’가 각각 6%와 5%로 집계됐다(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국회 청원도 관심을 모은다. 앞서 6월 20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 올라온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이 게시 2주 만에 동의자 수 100만 명을 넘겨, 5일 기준 117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청원글에는 여러 탄핵 사유가 언급됐는데 해병대 박정훈 수사단장에 대한 외압행사(군사법원법 위반)도 담겨 있다.
윤 대통령 탄핵안 발의 청원은 요건인 5만 명 동의를 얻어 6월 24일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에 회부됐다. 민주당은 청원 관련 청문회 개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사위 청원심사소위에서 심사하는 과정에서 필요성이 인정되면 청문회를 열 수 있다. 민주당 법사위 소속 한 의원은 “윤석열 탄핵 청원은 국민들이 직접 참여해 자신들의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국회는 응답할 필요가 있다. 과거 박근혜 탄핵 국면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실제 탄핵 절차가 이뤄진다면 국민여론이 중요하다. 청문회를 열면 국민 앞에서 윤석열 정부의 문제점을 속속들이 알릴 기회가 된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의 더 큰 고민은 국회에서의 재표결을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재의결되려면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21대 국회 구성상 여당에서 17표 이상의 이탈표가 나와야 재의결이 가능했다. 하지만 22대 국회는 범야권 의석수가 총 192석으로 ‘여소야대’ 지형이 더욱 심화돼, 국민의힘에서 8표만 이탈해도 대통령 거부권이 무력화된다. 당 지도부로서는 이탈표 단속에 더 골머리가 썩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번 재표결은 부결 전망이 우세하다. 여권 한 관계자는 “22대 국회가 이제 시작됐다. 여야 주도권 쟁탈을 위해서도 단일대오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따라서 국민의힘 내부에서 찬성표를 던질 의원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현재 진행 중인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가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유력 당권주자인 한동훈 후보는 출마 선언을 하면서 채 해병 특검법 추진 의사를 밝혔다. 한 후보는 현재 민주당 안이 아닌 ‘대법원장 등 제3자 특검 추천안’ 등을 내놓기도 했다.
야권 일각에서는 재의결 시 여야가 합의를 통해 수정안을 만들어 통과시키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현재 한동훈 선거캠프에는 초·재선 의원을 중심으로 10여 명이 돕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후보 의견을 절충, 반영해 수정안을 재표결에 올리면 ‘친한계’ 의원들이 가결표를 던져 의결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점이 국민적 역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회는 본회의 통과 다음날인 7월 5일 채 해병 특검법을 정부로 이송했다. 본회의 의결 이후 일주일 정도 소요된 관행에 비추어보면 즉각적인 조치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법안을 받은 뒤 15일 안에 공포 또는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결정해야 하는 시한은 오는 7월 19일까지다. 이날은 채 해병 순직 1주기가 되는 날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