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급사 꿰차고 현지화…이게 진짜 해외진출
▲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감독. 일요신문 DB |
최근 봉준호 감독은 미국 메이저 배급사인 와인스타인컴퍼니와 영화 <설국열차>의 배급 계약을 맺어 화제를 모았다. 미주 지역과 호주, 뉴질랜드 등의 배급을 맡는 와인스타인컴퍼니는 영어권 국가를 중심으로 특히 북·남미에서 대규모 개봉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국 감독이 세계 시장을 겨냥해 연출한 영화로는 스크린 수에서 최대 규모가 될 가능성이 높다.
와인스타인컴퍼니는 2005년 10월 설립된 미국의 대표적인 제작·배급사다. 지난해 아카데미영화상 작품상을 수상한 <킹스 스피치>와 올해 아카데미 5개 부문을 휩쓴 <아티스트> 등을 제작해 배급하면서 힘을 키웠다. 와인스타인컴퍼니는 “봉준호의 <설국열차>는 경이로운 작품”이라며 “특히 뛰어난 배우 크리스 에반스가 보여줄 액션 연기를 전세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의욕을 보이고 있다.
<설국열차>는 제작비 400억 원 규모의 SF블록버스터다. 동명의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빙하기를 맞은 인류가 노아의 방주와 같은 기차에 올라타 벌어지는 이야기다.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등 연기력과 인기를 겸비한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고 한국 배우로는 송강호와 고아성이 출연했다. 후반작업을 한창 진행 중인 <설국열차>는 내년 여름께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기획부터 세계 시장을 겨냥한 <설국열차>는 할리우드 스태프들이 주요 부문을 맡았다. <스파이더맨2>의 특수효과 전문가가 컴퓨터 그래픽을, <다이하드> <터미네이터3>의 음악 감독이 OST 작업을 담당했다. 봉준호 감독은 <마더>와 <살인의 추억> 등으로 할리우드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연출자다. 국내 영화 관계자들은 <설국열차>를 두고 “유명 배우의 참여와 대규모 배급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할리우드 진출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 것”이라며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올드보이>가 2004년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이후 박찬욱 감독은 세계 영화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할리우드에서도 꾸준하게 러브콜을 받아왔다. <스토커>를 제작하기로 마음먹고 박찬욱 감독을 할리우드로 불러들인 이는 유명 형제 감독인 리들리 스콧과 고 토니 스콧이다. 이들 형제 감독이 제작을 맡은 데다 니콜 키드먼이 합류하면서 <스토커>는 현지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 이십세기폭스가 배급을 담당하면서 북·남미 지역을 넘어 한층 넓은 시장을 겨냥하게 됐다.
한편 현재 할리우드에서는 <올드보이>가 리메이크되고 있다. 스파이크 리 감독이 연출을, 새뮤얼 잭슨이 주연을 맡아 촬영이 한창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스토커> 개봉까지 이루면서 박찬욱 감독은 자연스럽게 할리우드에서 주목도를 높이고 있다.
<스토커>의 시나리오는 인기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연 배우 웬트워스 밀러가 썼다. 한국에서는 ‘석호필’이란 별칭으로도 친숙한 배우.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엄마와 둘이 남은 딸이 갑자기 나타난 삼촌과 엄마의 미묘한 관계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빅3 감독 가운데 가장 먼저 할리우드에서 연출 영화를 공개하는 사람은 김지운 감독이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흥행 실력을 인정받았고 <달콤한 인생>으로 감각적인 연출력을 드러낸 김지운 감독은 내년 1월 할리우드 데뷔작 <라스트 스탠드>로 세계 관객을 찾는다. 이 영화의 배급은 뉴라인시네마가 맡았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배급을 맡아 전세계 동시 흥행을 이룬 굴지의 회사다.
<라스트 스탠드>는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주연으로 나선 액션 영화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임기를 마친 뒤 거취를 두고 관심을 모아왔던 슈워제네거가 한국 감독인 김지운의 <라스트 스탠드>를 택하면서 언론의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도 받았다. 영화는 멕시코 국경을 배경으로 마약 밀매업자와 보안관이 벌이는 대결. 무엇보다 할리우드에서 인정받는 액션 배우의 귀환이란 점에서 상당한 후광효과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든든한 배급사까지 만나면서 북·남미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에도 공격적인 진출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김지운 감독이 최근 아시아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영화인조합이 선정한 ‘차세대 감독상’을 수상하며 <라스트 스탠드>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였다. 시상식에서 김지운 감독은 “창조적인 실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빅3 감독들의 할리우드 진출은 그동안 소극적으로 이뤄진 한국 영화인들의 해외시장 도전의 범위를 단숨에 확장했다는 점에서 한국 영화계에서도 반기고 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그동안 <워리어스 웨이>의 이승무 감독이나 <라스트 갓 파더>의 심형래 감독 정도가 미국 자본이 투입된 영화로 할리우드 시장을 공략했다”며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감독은 철저히 현지화해 세계시장으로 나선 가장 적극적인 시도”라고 밝혔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