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배우 쓰면 광고도 따다 줄게
▲ 드라마 <보고싶다>에 출연한 윤은혜, 유승호, 장미인애, 박유천(왼쪽부터). 주인공 박유천과 같은 소속사 장미인애가 ‘끼워팔기’ 형식으로 출연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
끼워팔기는 방송가에서 관행처럼 행해지고 있다. 드라마 한 편에는 주조연급 5~6명을 제외하더라도 수십 명의 고정 출연자가 필요하다. 출연 분량이 많지 않을뿐더러 제작비 또한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이름값 있는 배우로만 채울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일부 연예 기획사들은 주연 배우 섭외에 응하는 대신 같은 소속사에 속한 조연 혹은 신인 배우들의 출연을 요구하곤 한다.
끼워팔기가 수면 위로 올라왔던 대표적인 예로 2010년 방송돼 엄청난 인기를 누린 SBS 드라마 <시크릿가든>을 들 수 있다. 당초 이 드라마의 주연 배우로 물망에 오른 주인공은 장혁이었다. 하지만 극중 천재 작곡가 썬 역에 소속 배우인 박재범의 출연을 무리하게 요구하다가 결국 장혁까지 하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장혁을 대신해 <시크릿가든>에 투입된 현빈은 대박을 터뜨렸고 장혁의 소속사는 이 모습을 씁쓸하게 지켜봐야 했다.
▲ <착한남자>에 출연한 이유비(왼쪽)와 이상엽. |
한 외주 제작사 관계자는 “<착한남자>와 <뿌리깊은 나무>는 이들의 소속사인 IHQ에서 제작했기 때문에 소속 배우들을 다수 출연시키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다른 외주 제작사가 만드는 작품에 소속 배우를 출연시킬 때도 패키지 출연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어 제작사를 난감하게 만들 때가 있었다”고 전했다.
끼워팔기는 알려진 것보다 더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반드시 배우와 배우가 묶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올해 각광을 받은 한 신인 배우 A의 경우 한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연기 경험이 전무했지만 큰 배역을 맡게 된 배경에는 A의 소속사와 드라마 제작사의 은밀한 거래가 있었다.
A의 소속사는 A를 이 드라마에 출연시키는 조건으로 향후 3년 동안 A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를 드라마 제작사에 지불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A가 벌어들이는 수입의 일부가 제작사로 귀속되기 때문에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었다. 결국 A는 이 드라마를 통해 높은 인기를 얻었고 제작사 역시 쾌재를 불렀다는 후문이다.
일부 배우들은 광고나 제작지원을 들고 와 제작사의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최근 제작되는 지상파 드라마의 회당 제작비는 최소 2억 원을 상회한다. 하지만 방송사가 회당 지급하는 제작비는 1억 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나머지 제작비를 충당하고 흑자를 내기 위해서 외주 제작사는 각종 제작지원과 간접광고를 따내야 한다.
광고계로 발이 넓은 매니저들은 소속 배우가 모델을 맡고 있는 업체의 제작지원을 받는 형식으로 제작사에 금전적 이익을 가져다준다. 특정 배우를 써야 하는 주요 배역이 아니라면 제작지원을 갖고 온 배우를 마다할 제작사는 거의 없다.
이 관계자는 “드라마 한 편당 15억~25억 원 정도의 제작지원 및 간접광고 수익을 낸다. 원활한 제작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제작사의 이런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일부 연예기획사는 ‘배우+광고’ 형식으로 끼워팔기를 시도한다”고 덧붙였다.
대형 연예기획사의 경우 보다 통 큰 베팅을 한다. 특정 배우를 출연시키는 조건으로 자신들이 보유한 또 다른 배우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의 편성을 요구하는 식이다. 드라마 관계자들은 “편성은 전쟁”이라 말한다. 지상파 3사에서 한 주에 방송될 수 있는 외주 제작 드라마는 20편 안팎이다. 반면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외주 제작사는 100개가 넘는다. 지상파 편성을 받는 것은 전쟁이라 불리는 이유다.
대형 연예기획사 B 사는 내년 초 방송되는 한 지상파 드라마에 배우 C를 출연시킬 계획이다. C가 오랜 기간 브라운관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C가 드라마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 엄청난 홍보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건 자명하다. 때문에 이 방송사는 C를 잡기 위해 B 사를 회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B 사는 소속 배우인 D가 출연하는 드라마의 편성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이 드라마의 편성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D 역시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배우이기 때문에 이 방송사는 D가 출연한 드라마의 편성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이 방송사의 관계자는 “스타 파워가 세지면서 스타를 앞세워 거래를 요구하는 일이 점점 늘고 있다. 전형적인 끼워 팔기 형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로 하나를 내주고 하나를 취하는 거래가 왕왕 진행된다. 물론 편성권을 잡고 있는 방송사가 여전히 ‘갑’의 위치지만 지상파 3사 대결에서 승리해야 하기 때문에 좋은 배우가 출연하는 드라마를 선점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