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외할머니 향한 진정한 효심 담겨…중장년 팬들에게 대한 진심으로 이어져
#‘배신자’와 임영웅
임영웅은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사고였다. 하루아침에 그는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는 가장이 됐다. 어머니는 미용사였다. 홀로 포천의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며 외아들을 키웠다. 생활고는 피할 수 없었다. 그 가난의 흔적이 바로 임영웅의 왼쪽 뺨에 난 큰 흉터다.
이 흉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생겼다. 담벼락에 꽂아 놓은 유리 파편에 얼굴 광대 쪽을 찧는 끔찍한 사고였다. 30바늘을 꿰매야 할 큰 생채기가 났다. 수술을 마친 후 의사는 “얼굴 신경이 죽어 제 자리를 못 잡을 수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머니는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해주지 못하고, 제거 수술로 흉터를 줄여주지 못한 것을 속상해 하셨다.
하지만 임영웅은 당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내 얼굴에 나이키가 있어요. 보조개 같지 않아요?”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덜 상하길 바라는 배려였다. ‘미스터트롯’ 우승 후 임영웅은 이 흉터 위에 대중의 위로라는 연고를 발랐다. 이제는 “흉터가 진짜 콤플렉스였는데 ‘미스터트롯’을 통해 극복하게 됐어요”라고 말한다.
그의 모든 노래 속에서는 어머니가, 가족이 있었다. 그래서 시작과 끝을 장식한 노래가 각각 ‘바램’과 ‘배신자’였다. 당시 ‘현역부A’조에 속해 예선 무대에 첫 등장한 임영웅은 홀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를 생각하며 ‘바램’을 불렀다. ‘영웅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결승전 마지막 무대에서 부른 ‘배신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머니를 위해 불러주던 노래다. 차마 감정이 북받쳐 임영웅이 부르지 못했던 곡이다. 하지만 ‘미스터트롯’ 여정에 마침표를 찍으며 이보다 더 적절한 ‘인생곡’은 없었다. 게다가 결승전 당일은,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임영웅은 용기 내 불렀고 우승 왕관을 썼다.
임영웅은 데뷔할 때 달력에 이렇게 썼다. ‘2020년 엄마 생일 때 현금 1억 원을 드리겠다.’ ‘미스터트롯’ 우승 상금은 1억 원이었다. 여기서 세금이 빠진다. 임영웅은 세금만큼 채워 어머니에게 1억 원을 드렸다. 더할 나위 없는 엔딩이었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와 임영웅
임영웅을 상징하는 또 다른 노래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다. 김목경과 고 김광석이 불렀지만, 이제는 ‘임영웅 표’로 찾아듣는 이들이 더 많다. 이 노래의 유튜브 조회수는 5800만 뷰에 육박한다.
이 노래를 부르는 임영웅의 감정 속에는 또 한 명의 가족이 담겨 있다. 바로 외할머니다. 2022년 5월 열린 ‘2022 임영웅 콘서트 아임 히어로’ 창원 콘서트. 이날 임영웅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부르다 울음이 올라와 노래를 잇지 못했다. 그는 “외할머니가 떠올라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를 익히 알고 있던 팬들은 ‘떼창’으로 대신 노래를 불렀다.
임영웅의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어머니인 외할머니가 있었다. 어머니가 미용실 일로 임영웅을 챙기지 못할 때 그의 곁에는 외할머니가 장승처럼 버텨줬다. 당신께서는 홀로 살림을 꾸려 가는 딸을 위해서, 그 딸이 애지중지하는 손자 임영웅을 위해서 그의 인생을 바쳤다. 이를 보고 자란 임영웅에게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곧 ‘외할머니의 이야기’인 셈이다.
‘미스터트롯’에 출연하기 전 KBS ‘아침마당’의 코너 ‘도전 꿈의 무대’에 선 임영웅이 첫 승을 거두자 무대 위로 달려 나온 할머니는 “너무 좋아서 날아갈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때 임영웅은 “성공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할머니와 어머니에 대한 효도”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이동 제한으로 할머니를 자주 찾아뵐 수 없을 때 임영웅은 용돈을 보내드리며 “용돈 드릴 때마다 할머니가 우신다.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가족들과 푸짐한 상 차려서 다 같이 밥 먹고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소망을 전한 바 있다. 그 밥상에는 임영웅이 가장 좋아한다는 오징어찌개가 어김없이 올라온다. 임영웅은 이를 마치 아이처럼 자랑하곤 한다. “할머니가 맛있게 잘하시는데 그걸 어머니가 배워서 해주세요. 되게 맛있어요”라고.
#‘모래 알갱이’와 임영웅
‘배신자’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선배 가수의 곡이다. 스타덤에 오른 후 임영웅은 숱한 자신 만의 히트곡을 냈다. ‘이제 나만 믿어요’를 비롯해 ‘우리 만날 수 있을까’, ‘우리들의 블루스’, ‘무지개’ 등이다. 하지만 그중 그가 직접 가사를 쓴 ‘모래 알갱이’를 빼놓을 수 없다.
‘모래 알갱이’는 그의 또 다른 가족인 공식 팬덤 영웅시대를 비롯해 모든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위로송이다. ‘그대 바람이 불거든 / 그 바람에 실려 홀연히 따라 걸어가요’ ‘그대여 내 맘에 언제라도 그런 발자국을 내어줘요 /그렇게 편한 숨을 쉬듯이 언제든 내 곁에 쉬어가요’ 부는 바람에 따라 유유자적 살아가고, 그 곁에는 항상 내가 있을 것이란 약속이다.
임영웅은 때가 되면 영웅시대의 이름으로 기부한다. 공연장에 오는 팬들을 위해 객석마다 푹신한 방석을 놓는다. “건강 검진 꼭 받으시라”고 권하곤 하는데 실제로 임영웅의 당부 이후 검진 예약률이 상승했다. 아울러 그의 공연 티켓은 최고의 효도 선물이 됐다.
스타는 이름 따라 간다는 말이 있다. ‘임영웅’은 아버지가 직접 지어준 이름이다. 홍콩 배우 주윤발이 출연한 ‘영웅본색’을 즐겨보던 아버지는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되라며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수많은 장년층들에게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그런 항상 임영웅은 “건행”(건강하고 행복하세요)이라고 외친다. 이보다 더 귀한 게 없다는 걸, 임영웅은 일찌감치 깨쳤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