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동 로비스트’ 김인섭 징역 5년 확정, 이화영 김용도 항소심 앞둬…입법권 적극 활용 등 돌파구 찾을 전망
#김인섭 판결, 이재명 재판에 영향 줄 듯
11월 28일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김인섭 전 대표에게 징역 5년에 추징금 63억여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 전 대표는 2015년 9월부터 2023년 3월까지 백현동 개발 사업 관련 인허가 알선 등을 대가로 정바울 아시아디벨로퍼 대표로부터 77억 원가량을 수수하고, 5억 원 상당의 백현동 공사 현장 식당(함바) 사업권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김인섭 전 대표가 이재명 대표와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당시 성남시 정책비서관)과의 친분을 토대로 정바울 대표 청탁을 받고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 과정에서 ‘로비스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김 전 대표는 정 대표 동업자로서 성남시 공무원에게 사업 관련해서 ‘합리적 의견 개진’을 했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정상적인 동업자로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인섭 전 대표는 1995년쯤부터 이재명 대표, 정진상 전 실장 등과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오랫동안 가깝게 지냈다. 김 전 대표는 이 대표의 각종 선거에서 불법적인 방법까지 동원해 가며 성남시장 재선 성공에 기여했고, 성남시 공무원 인사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이른바 ‘비선실세’로 통했다고 한다.
백현동 개발은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이던 시절 진행됐다. 2014년 1월 아시아디벨로퍼는 옛 한국식품연구원 부지에 아파트를 짓기 위해 성남시에 두 차례에 걸쳐 자연녹지였던 백현동 부지를 제2종 일반주거지로 2단계 상향해달라고 신청했다. 성남시는 두 차례 모두 거부했다. 그런데 2015년 1월 아시아디벨로퍼가 김인섭 전 대표를 영입한 뒤 3차 용도 변경 신청을 내자, 성남시는 돌연 입장을 바꿔 용도 변경을 수용했다.
이날 선고로 ‘정바울→김인섭→정진상’ 청탁 경로가 사실로 인정된 만큼 이재명 대표 재판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2023년 10월 이 대표와 정진상 전 실장은 김인섭 전 대표로부터 청탁을 받고 정바울 대표 업체에 특혜를 주고 성남도시개발공사에 200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법상 배임)로 불구속 기소돼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다(관련기사 ‘성남시 2층’에선 무슨 일이…이재명 ‘백현동 공소장’ 해부).
공소장에 따르면 정바울 대표는 2012년 6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김인섭 전 대표를 수차례 만나 용도 변경 등 인허가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김 전 대표는 정 대표에게 “200억 원을 주면 백현동 개발사업 추진 과정에서 필요한 각종 인허가 및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다. 200억 원 중 50%는 이재명 대표, 정진상 전 실장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김인섭 전 대표는 정진상 전 실장을 2013년 말부터 2014년 초까지 만나 용도 변경 등 백현동 개발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부탁했다고 한다. 이에 정 전 실장은 2014년 11월 용도 변경 신청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김 아무개 성남시 도시계획과 도시계획팀장에게 “인섭이 형이 백현동 개발사업을 하려고 하므로 잘 챙겨줘야 한다”며 ‘관련 인허가 등 신청서류가 접수되면 사업자 측에서 요구하는 대로 잘 처리해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공소장에 적시됐다.
김인섭 전 대표도 팀장에게 “2층(이재명·정진상)과도 얘기가 잘 됐고, 잘 해보라고 했다”고 말하면서 백현동 개발 사업 인허가 등과 관련한 원활한 협조 및 편의 제공을 부탁했다. 이 같은 사실들은 김 전 대표 재판에서도 근거로 활용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2015년 2~3월경 정바울 대표는 용도 변경에 성공한 뒤 성남도시개발공사(공사)를 사업에서 배제하고자 또다시 청탁했다. 이에 2015년 4월경 정진상 전 실장은 이 아무개 성남시 도시계획과장을 불러 “공사는 백현동 개발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이재명 대표 지시사항을 전달하며 ‘향후 진행될 관련 절차에서 확실히 공사가 배제될 수 있도록 업무를 처리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공소장에 적시됐다.
이재명 대표는 2015년 3월 당시 유동규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게 “백현동 개발사업은 인섭이 형님이 끼어 있으니 진상이하고 잘 이야기해서 신경 좀 써줘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공소장에 적시됐다. 당시 유 본부장은 이 대표에게 공사가 백현동 개발 사업에 참여하면 200억 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내용을 보고했다고 한다.
이재명 대표는 2016년 7월경 유동규 본부장이 공사의 사업 배제 이유를 묻자 “정진상이 김인섭과 이야기가 됐다고 해서 공사의 사업 참여 배제를 결정했다”는 취지로 말하며, 자신의 그러한 결정을 재차 하달했다고 공소장에 적시됐다. 실제로 공사는 특별한 이유 없이 개발에 참여하지 않았다. 임대주택 공급 계획은 100%에서 10%로 축소됐고, 나머지 90%는 수익성이 높은 일반 분양 아파트로 대체됐다. 기부채납 대상도 변경됐다.
이재명 대표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김인섭 전 대표의 청탁이 정진상 전 실장을 넘어서 이 대표에게까지 전달됐는지를 비롯해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업 참여 배제 위법 여부 △청탁 위법 여부 △청탁이 실제 사업에 영향을 줬는지 등을 판단해야 한다.
법조계에선 이재명 대표 공직선거법 1심 판결도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한다. 앞서 11월 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부장판사 한성진)는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재명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은 국토부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한 것이 아니라 이 대표 스스로 검토해 변경한 것”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이화영 2심도 1심과 같은 판단 내린다면…
김인섭 전 대표뿐만 아니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도 이재명 대표와 관련된 사건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항소심 판결을 앞둔 상황이다. 6월 7일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 대북송금’ 혐의로 1심에서 징역 9년 6월의 실형과 함께 벌금 2억 5000만 원, 추징금 3억 2595만 원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이 전 부지사 판결을 바탕으로 이 대표를 ‘대북송금’ 사건 관련 제3자 뇌물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 대표는 이 전 부지사와 공모해 쌍방울이 경기도 스마트팜 사업비, 이 대표 방북 비용 등 총 800만 달러를 대납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이 전 부지사의 2심 재판부가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린다면 이재명 대표 재판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화영-안부수-쌍방울그룹-북한’으로 이어지는 대북송금의 기초 사실관계가 모두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대표 재판에서 ‘대북송금 행위 및 목적’ 등에 대한 추가 심리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 대표 판결도 이른 시일 내에 나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전 부지사 항소심 결과는 12월 19일 나올 예정이다(관련기사 다른 잣대? 이재명 공소장과 안부수·이화영 1심 판결문 비교해보니).
2023년 11월 30일 정치자금법 위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를 받는 김용 전 부원장은 징역 5년과 벌금 7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지난 대선 당시 불거진 대장동 개발 비리와 관련된 첫 번째 사법 판단이다. 김 전 부원장은 이 대표가 직접 최측근이라 밝힌 인물이다. 2심 재판부는 선고 기일을 2025년 2월 6일로 정했다.
1심 재판부는 김 전 부원장이 2021년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 전후로 유동규 전 본부장을 통해 대장동 민간업자인 남욱 변호사로부터 총 6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용은 유동규에게 이재명 대선 경선을 위한 정치자금을 요구했다. 유동규는 김용의 요구를 남욱에게 전달했고, 남욱은 유동규를 통해 김용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기부했다. 불법 정치자금을 3차례에 걸쳐 수수한 정황은 판결문에 구체적으로 적시됐다(관련기사 ‘김용 구속’ 검찰 칼날 이재명 대선자금 겨누나).
재판부가 김 전 부원장이 받은 돈이 이재명 대표 대선 자금으로 쓰였을 것으로 본 만큼 이 대표 재판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모르쇠로 일관해온 김 전 부원장이 실형 선고 후 입을 열게 된다면, 검찰 수사가 이 대표의 대선 경선자금으로까지 번질 수가 있다.
#선거법 판결 지연이 최우선 과제
정가에선 이재명 대표가 재판보단 비법률적인 방법으로 사법리스크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비법률적인 방법으로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말하며 22대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힌 것처럼, 이 대표도 차기 대선에 출마하고자 힘을 쏟을 것이란 의미다.
이재명 대표는 1심에서 유죄를 받은 선거법 판결을 대선 이후로 지연시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민주당이 면소(법 조항 폐지로 처벌할 수 없음) 판결을 노리고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개정안은 허위사실공표죄·후보자비방죄를 삭제하고, 선거권·피선거권 결격사유와 당선무효의 기준을 현행 1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상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 ‘허위사실 공표’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요구가 당내에서 거론되고 있다.
12월 4일 민주당은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과 조상원 4차장, 최재훈 반부패수사2부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탄핵 사유는 ‘김건희 여사 사건’ 불기소 처분 등이지만, 이재명 대표 재판에 나서는 검찰을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민주당은 이재명 후보의 수사 담당 검사 등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안도 발의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방탄을 위해서 입법권과 탄핵 등을 이용하고 있다고 반발한다. ‘이재명 재판 지연방지 태스크포스(TF)’도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주진우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은 “선거법 사건은 법률에 따라 다른 어떤 사건보다 우선해 처리해야 하고, 2심은 3개월 내 선고해야 한다”며 “대법원장께서도 해당 규정이 훈시 규정이 아니라 재판부의 의무사항임을 천명했다”고 강조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