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야 될 때 추락… 삼성전자의 굴욕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그런 삼성전자가 최근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리는 증시 붐에 가려지지 않았더라면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을 누를 만한 메가톤급 화두였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증시에 ‘과열’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도 삼성전자는 52주 신저가(한해 동안 가장 낮은 가격)을 연일 갱신하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가 조금이라도 빠지면 시장 전체가 파랗게 질리던 시절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연초 110조 원이 넘던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78조 수준까지 낮아졌다. 반 년도 안돼 30조가 넘게 사라진 것이다.
지난해 11월 67만원이던 삼성전자의 주가가 지난달(5월) 28일 54만원 대로 추락하면서 국내 증시에서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이 지난 99년 10월 이후 7년 7개월 만에 10% 아래로 떨어졌다. 이날 펀드평가 전문업체인 ‘제로인’ 허진영 과장의 전화기에서는 불이 났다. 삼성전자 편입비중이 높은 펀드가 어떤 게 있는지, 또 수익률은 얼마나 되는지를 묻는 증권부 기자들의 전화였다.
지난해 삼성그룹주 펀드 대부분이 수익률 ‘TOP 10’에 들었다. 삼성그룹 계열사 주식을 묶어 ‘명품 펀드’라고 자랑하던 시절이 불과 일년 전이었다. 그때 주가 지수가 연초부터 큰 폭으로 급락하면서 조정과 횡보세를 보임에 따라 안정적인 주가 흐름을 보였던 삼성그룹주 펀드가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좋았다.
이번엔 삼성전자의 급락으로 지난해와 정반대의 질문이 쏟아진 것이다.
지난해 빛을 발한 대표적 삼성그룹주 펀드는 한국투신운용의 ‘한국삼성그룹적립식주식 1Class A’이다.
이 펀드는 2006년 수익률 1위(500억원 이상 펀드)로 지난 한해 무려 1조8000억 원이 몰렸다. 한국운용이 내놓은 또다른 삼성그룹주 펀드 4개도 수익률 10위 안에 들어가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삼성그룹주 펀드는 삼성그룹 계열사 중 상장된 삼성전자,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중공업,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물산, 삼성테크윈, 삼성전기, 호텔신라, 삼성정밀화학, 제일모직, 삼성SDI, 에스원, 제일기획 등 삼성 그룹 14개 종목에 투자한다.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한국삼성그룹적립식주식 1Class A의 3개월 수익률은 16.42%. 같은 종류의 성장형 346개 펀드의 평균 수익률 19.44% 보다 더 낮았다. 6개월 수익률 역시 16.42%로 평균치인 21.56%를 훨씬 밑돌았다. 지난해 가장 잘 나가던 펀드가 시장 평균 수익률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 수익률 30%를 훌쩍 뛰어 넘은 상위 펀드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익률을 기록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다른 삼성그룹주 펀드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운용의 한국삼성그룹주식형-자(B)도 3개월 16.54%, 6개월 16.65%를 기록했고 한국부자아빠삼성그룹주식 1, 한국삼성그룹주식형-자(A), 한국삼성그룹리딩플러스종류형주식 1ClassC 등도 비슷한 수익률이다.
삼성전자의 급락에도 그나마 플러스 수익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삼성엔지어니링(82.0%)과 삼성중공업(67.9%), 삼성물산(49.9%), 삼성정밀화학(47.9%) 등의 주가 급등 때문.
삼성전자가 맏형의 역할을 포기한 것은 물론 다른 삼성그룹주가 벌어 놓은 수익률까지 까먹는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한 것이다.
삼성전자를 기초로 만든 파생상품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삼성전자를 기초자산으로 편입한 주가연계증권(ELS)에서는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하는가 하면 삼성전자와 연계된 ELS 상품에 투자한 펀드 중에는 수익률 마이너스 50%를 넘는 것도 나타났다.
ELS는 개별 주식의 주가 또는 주가 지수의 변동과 연계하여 만기 지급액이 결정되는 증권이다. 개별 주식의 주가가 예상과 달리 큰 폭으로 하락하게 되면 원금을 거의 다 까먹은 상태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와 코스피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성전자 주가 상승률이 코스피지수 상승률과 같거나 높으면 연 10%의 수익률로 조기상환되는 조건의 ELS가 있다면 조기상환되기는커녕 최종 만기수익률 마이너스 50%를 넘을 수도 있다.
실제로 이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한국채권평가에 따르면 삼성전자를 기초자산으로 했다가 손실이 발생한 9개 만기 ELS의 평균 수익률은 마이너스 70%를 넘었다. 지난 2004년 발행된 발행액 256억 원 규모의 모 ELS는 손실액만 184억 원을 넘었다. 굿모닝신한증권이 지난 2004년 삼성전자와 코스피 200지수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해피엔드 ELS 원톱(One Top)’은 지난 18일 마이너스 89.74%의 손실을 최종 확정지었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와 연계된 ELS에 투자한 펀드의 경우 절반 이상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특히 ‘대한Two-StarVI 파생상품 3’는 최근 3개월 수익률이 -13.87%였고, 설정일인 2005년 3월4일 기준으로는 무려 -53.55%에 달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금융감독원이 직접 나서 삼성전자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 등 파생상품의 원금 손실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수수료를 노리고 경쟁적으로 ELS 등 파생상품을 쏟아낸 증권사들의 ‘달콤한 사탕발림’에 넘어간 개인투자자들은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는 증권시장에서 한겨울을 맞고 있다.
전용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courag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