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공연도 레코드 취입도 없다” 강조…‘섬마을 선생님’ 부를 땐 세종문화회관은 거대한 노래방 돼
동백꽃처럼 붉은 수가 놓인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오른 가수 이미자는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올해 84세, 실제 열아홉 살 때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뒤 66년 동안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수식어의 무게를 지탱하던 이미자가 건넨 마지막 인사였다.

이날 콘서트는 마치 그 옛날 극장식 공연처럼 막을 열었다. 붉은 막 위에 조명이 내리쬐고, 막이 걷히자 무대 중앙에 서 있는 이미자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이윽고 오케스트라 선율에 맞춰 이미자는 ‘노래는 나의 인생’으로 마지막 무대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가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이 곡은 “나와 함께 걸어가는 노래만이 나의 생명”이라는 가사에서 알 수 있듯, ‘한 길’을 걸어온 그의 인생을 대변했다.

이들은 이미자를 위해 그의 히트곡을 헌정곡으로 불렀다. 주현미가 ‘아씨’·‘여자의 일생’으로 포문을 열었고, 조항조가 ‘흑산도 아가씨’·‘여로’로 배턴을 이어받았다. 이어 정서주(‘눈물이 진주라면’·‘황포돛대’)와 김용빈(‘아네모네’·‘빙점’)이 자신만의 감성으로 이미자의 노래를 재해석했다. 그리고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에는 젊은 시절 이미자의 모습과 그의 노래를 주제곡으로 삼았던 작품들이 상영되며 관객들을 시간여행으로 초대했다.

노래를 마친 뒤 이 날 진행을 맡은 황수경 아나운서는 이 노래의 가사를 인용해 “헤일 수 없이 그 수많은 밤을 이 노래로 위안 받았던 음악 팬들은 이제 무슨 힘으로 버텨야 되나”라고 물었다. 이에 이미자는 “후배들이 잘 이어갈 것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의연하게 말했다.
이미자는 66년 동안 활동하며 2600여 곡을 발표했다. 약 2069곡이 공개됐던 지난 1990년에는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 가운데 고별 무대에서 이미자가 부른 노래는 7곡이었다. 홀로 부른 ‘열아홉 순정’, ‘황혼의 부루스’, ‘기러기 아빠’는 그가 직접 선곡했다. ‘열아홉 순정’을 부를 때는 마치 66년 전으로 돌아간 듯 간드러진 감성을 되살렸다. 정작 이미자는 ‘열아홉 순정’을 마친 뒤 “열아홉 감성을 다 못 전해줘 미안하다”면서 부끄러워했다.

이미자는 미련도 남겨두지 않으려는 듯했다. “마지막을 이야기하는 것은 노래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기’ 때문”이라며 “노래가 안 되지만 후배들과 전통가요의 맥을 잇겠다는 마음으로 공연을 열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항상 완벽을 추구하던 그였기에, 무결한 무대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공연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평소 지론을 담은 속내였다.
하지만 이날 이미자는 건재했다. 특유의 감성도 여전했고,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발성과 기교로 좌중을 홀렸다. 자신을 낮추는 이미자에게 황수경은 “노래 잘하고 계세요”라고 말했고, 객석 이곳저곳에서 “맞아요!”라는 응원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미자는 가만히 미소 지을 뿐이었다.
그가 택한 엔딩곡은 2009년 발표했던 ‘내 삶의 이유 있음은’이었다. 이미자의 데뷔 50주년 기념곡이다. “나 아픔 속에서도 살아갈 이유 있음은 내 안에 가득 사랑이 내 안에 가득 노래가 있음이라”라는 가사는 그가 살아온 이유가 곧 노래였음을 웅변하고 있다.
이 노래를 마친 뒤 이미자와 출연진 모두가 무대에 올라 공연을 마친 소감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이미자는 다시금 “더 이상 공연도, 레코드 취입도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선배로서 “해야 할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함께 무대에 선 후배들을 향해 “제가 필요하다면 게스트로는 출연하겠다”면서도 “하지만 ‘특별출연’은 싫다. 그냥 게스트로만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더 이상 자신이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되지는 않겠다는 다짐이다. 전통가요의 맥을 잇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이제 그 중책은 자신이 아닌 후배들이 맡고 있음을 분명히 한 셈이었다.
앙코르곡은 ‘섬마을 선생님’이었다. 이미자는 “‘동백아가씨’, ‘기러기 아빠’와 제3대 히트곡 중 하나다. 앞서 두 곡은 불렀는데 ‘섬마을 선생님’은 들려드리지 못했다”면서 “다 함께 불러주시면 저는 이 마지막 무대를 너무 행복하게 끝낼 것 같다. 같이 불러 달라”고 당부했다.
그 순간 이미자가 대중문화인 최초로 문호를 열었던 세종문화회관은 거대한 노래방이 됐다. 객석에 일어난 누군가는 덩실덩실 춤을 췄고, 또 다른 누군가는 두 손을 모은 채 눈물을 흘렸다. 시대를 풍미한 작은 거인의 더할 나위 없는 마지막 무대였다.
안진용 문화일보 기자 mast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