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배기 억대 자산가 ‘나도 대주주야 응애~’
두산의 지주사 전환 작업은 총수일가 일원들이 계열사 명의 ㈜두산 지분을 사들여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식으로 진행돼 왔다. 이 과정에서 두산 총수일가는 결코 적지 않은 평가차익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건설 부회장을 필두로 한 4세 경영인들의 지분율 상승이 차익 증가와 더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월 27일 두산 총수일가 4세들이 두산산업개발이 갖고 있던 ㈜두산 지분 171만 주를 사들였다. 박정원 부회장과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박태원 두산건설 상무를 비롯한 10명이 주식 매집에 참여했다. 이들은 ‘형제의 난’ 당시 그룹에서 퇴출당한 박용오 전 회장을 제외한 박용곤 명예회장,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박용현 두산건설 회장,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 등 총수 형제의 자제들이다. 2월 27일 ㈜두산 주가 5만 8500원으로 환산할 때 이들 4세들이 쏟은 주식매입 대금은 1000억 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10명은 지난 5월 7일 두산엔진과 두산인프라코어가 보유하고 있던 ㈜두산 지분 200만 주를 추가로 매입했다. 5월 7일 ㈜두산 주가(9만 900원)를 감안할 때 총 1820억 원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 거래들은 두산그룹의 지주회사제에 초석을 마련한 계기로 평가받는다. 자회사들이 보유한 ㈜두산 지분을 대주주들이 모두 흡수함으로써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한편 대주주들의 ㈜두산 지분율을 높인 까닭에서다. 대주주들이 사비를 3000억 원 가까이 들여 지주회사 지분을 매입한 것은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된 것임에 틀림없다.
두산 총수일가가 지배구조 전환을 위해 출혈을 감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따른 대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미 투자금액에 상응하는 수준을 넘어선 특수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 주가는 10월 10일 현재 21만 6500원이다. 총수일가가 두산산업개발의 ㈜두산 지분을 매집할 때보다 3.7배 올랐으며 두산인프라코어의 ㈜두산 지분을 흡수할 때보다 2.4배 오른 셈이다. 지주사 전환 작업과 총수일가의 ㈜두산 지분 확보에 따른 기대감이 증시에 반영됐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지난 2월 두산산업개발 명의 지분 매입을 통해 총수일가 4세들은 2700억 원가량의 평가차익을 얻고 있으며 5월 두산인프라코어 명의 지분 매집을 통해선 2500억 원 이상의 평가차익을 낸 것으로 보인다. 불과 8개월 만에 투자금액의 두 배에 달하는 이익을 내고 있는 셈이다.
올해 두산 총수일가의 지분 변동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또 한 가지 대목은 박용오 전 회장 지분이 현격히 줄었다는 점이다. 박용오 전 회장은 지난 3월 19일부터 3월 28일까지 10일간 ㈜두산 주식 10만 주를 내다팔았으며 지난 5월 8일부터 5월 28일까지 21일 간 4만 주, 6월 18일~6월 22일 사이 4만 8000주를 매각했다. 이어 9월 14일~9월 20일, 7일 동안 5만 주를 매각해 박 전 회장의 ㈜두산 지분율은 올 초 1.63%에서 10월 10일 현재 0.42%(10만 990주)까지 떨어진 상태다.
올해 박 전 회장이 지분 매각으로 벌어들인 금액은 270억 원가량이다. ㈜두산이 임시 이사회를 열어 박 전 회장에 대한 대표이사 회장직 해임 결의안을 통과시킨 2005년 7월 22일 당시 ㈜두산 주가는 1만 4400원이었다. 올 들어 박 전 회장의 첫 지분 거래일인 3월 24일 ㈜두산 주가는 7만 4600원이었으며 5월 8일엔 9만 5500원, 6월 8일 14만 5000원, 그리고 9월 14일 17만 6000원을 돌파해 현재 20만 원을 훌쩍 넘기고 있다. 만약 박 전 회장이 대표이사직 박탈 당시 모든 지분을 처분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이익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총수일가와 등을 돌리게 됐지만 그룹이 추진하는 지주회사제 특수를 박 전 회장 역시 누린 셈이다.
박용오 전 회장 이름이 ㈜두산 대주주 명부에서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동안 손자뻘인 직계 5세들이 새롭게 이름을 내밀고 있다는 점도 주목을 받고 있다. 당초 ㈜두산 지분이 하나도 없던 이들 11명의 직계 5세들은 지난 3월 19일~3월 28일 그리고 5월 8일~6월 12일 동안 ㈜두산 지분을 사들이고 일부 증여를 받아 ㈜두산의 어엿한 대주주 반열에 올랐다. 이 기간은 공교롭게도 박용오 전 회장이 지분을 내다판 시점과 겹치기도 한다.
5세들의 약진은 비단 ㈜두산 지분구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손녀와 장손자(박정원 부회장 자녀)는 지난 3월 27일~3월 28일 이틀에 걸쳐 두산인프라코어 1만 2080주를 매입했다. 같은 기간 동안 박 명예회장 차남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의 아들딸도 두산중공업 지분 3176주를 사들였다. 지난 7월 4일엔 박용성 회장이 자신의 네 손녀들에게 두산건설 지분 1만 7000주를 증여했다. 이들 5세들 모두 각 계열사 주요주주 명부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박 명예회장 장손녀를 비롯한 두산 박 씨 일가 직계 5세들 11명이 현재 보유한 ㈜두산 지분은 3만 6067주로 시가총액은 78억 원에 이른다. 10월 10일 주가 기준으로 따져보면 5세들이 보유한 나머지 계열사 지분 시가총액도 11억 원 정도가 된다.
두산 총수일가 직계 5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박 명예회장 장손녀는 18세(1990년생)며 장손자는 14세(1994년생)다. 이들 5세들은 모두 미성년자들인데 지난해 태어난 두 살배기마저 ㈜두산 대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려놓은 점이 이채롭다. 이 두 살배기가 가진 지분은 3860주(지분율 0.01%)다. 두 살배기 5세 명의 지분의 시가총액은 8억 3000만 원 정도로 추산된다. 현재 지주사 전환 기대를 타고 ㈜두산 주가가 상승 중인 점을 감안하면 두산그룹 총수일가 내 ‘두 살배기 10억대 자산가’ 탄생은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