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변동기 눈밖에 나면 ‘본때’
▲ 지난해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악수하고 있다. 옆엔 최근 비자금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 ||
반면 현 정권 기간 동안 각종 구설수를 몰고 다녔음에도 무탈했던 기업들도 또다른 측면에서 세인의 눈길을 끌고 있다. 각종 의혹에 휩싸였다가도 별다른 혐의점이 드러나지 않은 채 넘어가는 경우를 보며 호사가들은 현 정권과의 이런저런 관계 때문에 해당 기업들이 무사했을지 모른다는 질투 어린 해석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정권이 바뀔 경우 전 정권에서 잘 나가던 기업이 된서리를 맞는 경우도 있어 이들 기업들은 정권 교체기를 맞아 몸조심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LG는 현 정권 기간 동안 ‘4대 그룹 중 유일하게 검찰 수사를 겪지 않은 곳’이란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혼쭐이 났던 삼성 현대차 SK 입장에선 LG를 향해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보냈을 법하다.
LG에게 위기가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지난 2004년 곤지암리조트 건설 승인 허가 관련 로비의혹 수사를 받은 데 이어 2006년 말엔 구본무 회장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계열사 ‘서브원’이 검찰 조사를 받았던 것이다. 서브원은 곤지암리조트 개발사업 주체.
서브원 조사 직후 곤지암리조트 관련 수사발표가 없자 정·관·재계에선 ‘서브원 조사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 관련 조사를 위한 것’이란 관측이 나돌기도 했다. LG-CNS가 외환은행과 전산장비 납품거래를 했던 것을 빌미로 구 회장이 공동대표로 있는 서브원을 압박해 관련 진술을 얻어내려 했을 것이란 시각이었다.
결과적으로 LG 관련 어떤 혐의점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구설수가 다른 곳으로 번져나갔다. LG와 현 정부의 각별한(?) 인연이 주목을 받은 것이다. 그 출발점은 노무현 대통령 아들 건호 씨의 LG전자 근무 경력이다. 건호 씨는 지난 2002년 7월 LG전자에 공채로 입사해 근무하다 지난해 9월 가족과 함께 스탠퍼드대 경영학석사(MBA) 과정 이수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김대중 정권 당시 LG투자증권 사장을 지내고 현재 LG화학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오호수 전 한국증권업협회장과 LG의 인연도 눈길을 끈다. 광주 출신의 오 전 회장은 김대중-노무현 양대 정권의 경제정책을 주도해온 ‘이헌재 사단’의 좌장급 멤버로 알려진 인사다. LG가 빅3 재벌들과 달리 아무 탈 없이 지내자 ‘현 정권과 맺은 인적 네트워크 덕을 본 것 아니냐’는 시기 섞인 시각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LG는 지난 2003년 3월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이후 LG의 미성년 총수 일가의 거액 지분 보유 내역은 국정감사 단골메뉴가 되기도 했다. 지주회사제 전환 과정에서 총수 일가의 지분 취득을 수사당국 내 몇몇 경제 전문가급 검사들이 주시했다는 소문도 나온 바 있다. 최근 LG전자가 세무조사를 받게 된 점 역시 무수한 관측을 낳고 있다.
LG로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모두 호사가들의 질투 섞인 시선이라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정권들의 경우를 참고삼아 더더욱 몸조심을 하는 분위기다.
최근 몇 년 사이 대형 M&A를 통해 급격히 몸을 불린 몇몇 건설사들이 다음 정권에 어떤 행보를 취하게 될지도 주목할 만한 사안이다. 공격적인 인수 합병 과정에서 구설수를 낳았고 세무당국의 주요 표적에 오르는 등 각종 의혹에 휘말려온 까닭에서다.
테크노마트로 유명한 프라임개발은 지난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삼안건설기술공사 엠씨씨 등을 인수하면서 몸집을 키웠고 현 정권에 들어서는 한글과컴퓨터를 인수해 사업 영역을 넓혔다. 최근엔 프라임개발을 필두로 한 프라임트라이덴트 컨소시엄이 6780억 원에 동아건설 인수를 사실상 마무리 지어 눈길을 끌었다.
이런 프라임이 올 초 세무조사를 받자 ‘그동안의 M&A 과정에서 보인 무리수 때문일 것’이란 관측이 고개를 들었다. 세무조사 이후 수사당국이 프라임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수사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아직 당국이 수사 중이라는 전언에 따라 M&A를 둘러싼 기업의 자금 흐름에 대한 내사가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김대중 정부 당시 대한화재를 인수하고 현 정권 들어서 신영조선공업 광주일보 리빙TV 등을 인수한 대주건설 역시 세무당국과 수사당국의 주목을 받아왔다. 대주건설도 지난 5월부터 세무조사를 받았는데 주로 탈세 혐의에 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수사당국의 대주건설 고위인사 관련 내사설이 퍼지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프라임과 대주는 모두 광주를 기반으로 삼아 사업영역을 확대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 정권의 중심세력이 광주·호남 지역을 주요 지지 기반으로 삼아온 점 때문인지 프라임 대주 등도 정권교체 이후의 상황에 여러 가지 추측성 관측이 난무하고 있다. 숱한 소문을 낳았던 프라임과 대주에 대한 관련 당국의 조사가 레임덕이 본격화된 정권 말기에 이뤄졌다는 점 또한 호사가들의 궁금증을 달군다.
그밖에 최근 대형 M&A를 통해 국내 대표 재벌 반열에 올라선 모 기업이나 법정관리 대상 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사들여 몸집을 불려온 중견업체들 역시 언제든 검찰의 수사선상에 놓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해당 기업들에 대한 구설수가 초고속 성장에 대한 주변의 부러움에서 빚어진 음해였는지, 아니면 급격한 몸 불리기 배경에 ‘남다른 뭔가’가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자칫 내년 2월 새 정부 출범 이후 새로운 상황으로 나타날지 세인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