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는 배은망덕, 구단은 왕짠돌이”
▲ 지난해 11월 류제국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근이 형의 몸값을 직접 거론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고요? 글쎄요. 솔직히 말씀드릴 게 없습니다. 왜냐고요? 전혀 진행된 게 없으니까요.”
1월 22일 LG 관계자는 류제국과의 협상 추이를 묻는 기자의 묻는 말에 그렇게 답했다. 사실이었다. 지난해 12월 류제국이 LG에 “미국 애리조나에서 몸을 만들겠다”고 통보하고 떠난 뒤 양측은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류제국의 LG 입단은 기정사실이었다. LG 김기태 감독은 “류제국 영입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며 “만약 입단한다면 선발투수로 뛰게 될 것”이라는 구체적 보직까지 정했다. 그러나 11월이 지나도록 입단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당시 LG 백순길 단장은 “FA(자유계약선수) 선수들을 잡느라 류제국 영입에 신경 쓰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FA 영입 작업이 모두 끝났으니 이제 류제국과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2월 중순이 지나도 성과는 없었다. 류제국은 여전히 무적 신분으로 개인훈련을 소화할 뿐이었다. 서재응, 최희섭(이상 KIA), 김선우(두산), 봉중근(LG) 등 국외파 선수 대부분이 고국무대로 돌아왔을 때 서둘러 계약을 맺고 몸만들기에 나선 걸 상기하면 류제국의 미계약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그즈음 야구계에선 “류제국이 내심 봉중근이 LG에 입단할 당시의 대우를 요구하는 것 같다”며 “LG에서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류제국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LG 측에 (봉)중근이 형이 받은 액수(계약금 10억 원+연봉 3억 5000만 원) 이상을 원했다는 기사가 나갔지만, 중근이 형의 몸값을 직접 거론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LG 주장은 어땠을까. 운영팀 관계자는 “류제국이 ‘봉중근만큼 달라’고 요구한 적은 없으나, 기준액이 그 정도란 인상을 받았다”며 “우리 쪽에서 제시한 계약금을 승낙하지 않은 걸 봐서도 봉중근의 몸값이 기준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구단에서 얼마를 계약금으로 제시했느냐”는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 “봉중근 계약금과 2억~3억 원 차이가 났다”고 답했다.
# 사면초가에 몰렸던 류제국
구단 관계자의 답변이 맞다면 LG는 류제국 영입비용으로 계약금+연봉 포함 최소 6억 원 이상을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금액을 제시했으나, 류제국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답변을 듣지 못한 듯하다.
이때만 해도 야구계는 LG를 동정하고, 류제국을 성토하는 분위기였다. 모 야구인은 “LG가 자기선수도 아닌 류제국에게 수술비를 지원하고, 훈련장까지 제공했는데 어떻게 류제국이 은혜를 배신할 수 있느냐”며 “가뜩이나 프로 정신이 타 팀에 비해 떨어진다고 소문난 LG에 류제국 같은 선수가 입단하면 재앙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팀 동료들도 류제국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한 베테랑 투수는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
“(봉)중근이는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해 뛰어난 투구를 선보이며 검증을 통과했다. 같은 투수인 내가 봐도 ‘저 정도 구위면 한국 프로야구에서 충분히 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류)제국이는 다르다. 한국으로 돌아와 제국이가 보여준 게 뭐가 있나? 없다. 2년간 공익근무요원으로 지냈을 뿐이다. 제국이 본인은 LG에 입단하면 당장 에이스가 될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인데 제국이 불펜투구를 지켜본 코치들은 ‘구위가 썩 인상적이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생각해봐라. 과연 제국이처럼 전혀 검증되지 않은 투수에게 6억 원 이상을 주는 게 말이 되는지를 말이다. 이건 기존 투수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즈음 류제국이 LG와 협상 중 일본진출을 알아봤다는 기사가 나오며 야구팬들조차 그에게 등을 돌렸다. 야구커뮤니티 사이트엔 ‘차라리 일본에 가라’ ‘배은망덕한 선수는 팀워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류제국을 성토하는 게시물이 줄을 이었다.
# LG “선수에게 끌려다니지 않겠다”
지난해 12월 16일 류제국이 미국으로 떠나자 비난의 강도는 더 세졌다. 일부 야구인은 “수술과 재활은 LG 덕분에 끝내고, 돈벌이는 미국에서 할 모양”이라며 류제국을 비난했다. 하지만 류제국은 출국 전 LG에 “미국에서 개인훈련을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LG는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류제국에게 ‘어차피 LG에서 뛸 거면 사이판에 가서 동료 선수들과 합동훈련을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지만, ‘혼자 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못내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새해 2월이 가깝도록 류제국과 LG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야구계는 조금씩 LG의 협상방식을 문제 삼고 있다. 모 구단 단장은 “LG가 정말 류제국을 헐값으로 잡고 싶었다면 공익근무요원으로 가기 전 계약했어야 했다. 롯데가 송승준을 계약금 2억 원에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당시 송승준이 병역 미필자였기 때문”이라며 “팔꿈치 수술 이후 몸이 좋아지고, 병역문제를 해결한 류제국은 이제 쫓길 게 없는 입장”이라고 설했다.
다른 구단 운영팀장도 “류제국을 놓고 LG가 뭐하는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LG는 부자구단이다. 외국인 투수들에게 지급하는 연봉의 반만 떼도 충분히 류제국을 영입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LG 태도를 보면 마치 돈 몇 푼에 벌벌 떠는 가난한 구단 흉내를 내고 있다. 정말 LG가 류제국을 필요로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과연 LG는 류제국이 필요한 것일까. 백 단장은 “코칭스태프에서 ‘류제국을 잡아달라’는 이야기를 꺼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아직 검증된 바가 없어 우리 팀에서 뛰는 게 좋을지, 나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덧붙여 백 단장은 “우리가 먼저 선수를 애써 찾을 일은 없을 것”이라며 “선수가 구단에 찾아와 ‘뛰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다면 그때 가서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류제국에게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뜻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