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언론인 소종섭이 쓴 ‘영원한 청년 김시습’ 출간
1453년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사건 ‘계유정란’은 사육신(死六臣)과 생육신(生六臣)을 역사에 남겼다. 모두 단종에 대한 충성을 지킨 이들이다. 성삼문 등은 단종 복위를 꾀하다 발각돼 처형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육신으로, 벼슬을 등지고 야인으로 살며 세조 통치를 거부한 이들은 생육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1500만 관객 영화를 계기로 바야흐로 역사 공부가 한창인 요즘이다. 이 시점에 현직 언론인 소종섭이 전국 답사를 하며 발로 쓴 ‘영원한 청년 김시습’(도서출판 한걸음 더)이 출간됐다. 부제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행가‧소설가’다.
이긍익(1736~1806)의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성삼문‧박팽년 등 사육신 5명 시신을 수습해 서울 노량진에 묻은 사람이 김시습이다. 충남 공주 동학사에서 단종 초혼제를 지낸 이도 김시습이다.
이 책은 이런 김시습 일생에 관한 기록이다. 출생에서 죽음까지 김시습 일생을 연대기적으로 쉽게 서술했다. 이 책에 담긴 사진들은 과거를 넘어 현재도 살아있는 ‘청년 김시습’을 부활시켰다.
북한산 중흥사에서 공부하고 있던 김시습은 계유정난 소식을 듣자 가지고 있던 책을 모두 불살랐다. 사흘 동안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칩거하다가 내린 결론은 ‘탕유(宕遊‧호탕한 유람)’였다. 조선 국토를 직접 돌아보며 민중 애환을 느껴보겠다는 당찬 결단이었다.
매월당이 마지막까지 몸을 의탁했던 곳은 충남 부여 무량사. 무량사는 저자인 소종섭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매월당과 저자의 첫 인연 끈이 이어진 곳이다. 저자가 2011년 사단법인 매월당김시습기념사업회를 창립해 현재까지 회장을 맡고 있는 것도 ‘무량사 인연’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책은 저자가 전국 곳곳에 있는 매월당 흔적과 발자취를 60여 차례 답사한 기행문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행가이자 최초의 소설가로서 김시습을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강토의 북쪽 끝 신의주에서 남해안 끝까지 전국 팔도를 유람한 인물도 그가 최초다. 매월당은 자신이 돌아본 문화유산 등을 시로 읊어 남기는 시인이자 문학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가 국토를 주유하며 길 위에서 삶을 보낸 시기는 20~30대 청년기였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김시습 흔적을 담아냈다는 점이다. 그의 사리를 모신 부도탑이 있는 부여 무량사를 비롯해 그의 위패를 모신 사당들 13곳, 그의 시를 새긴 시비 11곳, 그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6곳이 전국 어디에 있는지 자세히 기록했다. 김시습 흔적을 따라가고픈 이들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울 여행안내서이자 역사 숨결이 오롯이 녹아 있는 인문서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몽사노(夢死老‧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고 칭했던 매월당.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국토를 주유하며 수많은 시문(時文) 남긴 ‘영원한 청년’이었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