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뗀 법무법인 말 못할 사정 있다
고영욱이 지난달 10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부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박은숙 기자
‘무죄 추정의 원칙’은 이미 유명인, 특히 연예인에겐 무의미한 헌법적 가치가 됐다. 연예인의 경우 검찰 기소는커녕 경찰이 입건을 하기 전부터 이미 여론 재판을 통해 유죄를 선고받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찰 소환 조사만 한 번 받아도 매스컴은 동요한다.
이런 측면에서 분명 고영욱은 피해자였다. 고영욱은 지난해 5월 미성년자 강간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렇지만 검찰은 용산경찰서의 사전구속영장 청구 신청을 반려하며 보강 수사를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고영욱의 혐의는 미성년자 간음 혐의가 됐다. 게다가 수사 과정에서 두 명의 미성년자 피해여성이 고영욱을 고소하면서 그는 세 명의 미성년자 여성과 간음한 혐의를 받게 됐다.
그러자 각 언론매체는 거세게 고영욱을 공격했고, 여론은 망설임 없이 고영욱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렇지만 수사를 담당하는 주체인 검찰은 망설였다. 경찰이 고영욱을 불구속 입건해 사건을 검찰로 넘겼지만 관련 증거를 보강 중이라는 말만 반복할 뿐 검찰은 좀처럼 고영욱을 기소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영욱 사건은 마무리 수순을 밟는 듯했다. 검찰이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를 포기한 것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추가적으로 고영욱을 고소했던 두 미성년자 여성 역시 소를 취하했다.
하지만 올해 1월 고영욱이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의 한 도로에서 여중생 A 양(13)을 자신의 차로 유인해 몸을 만지는 등 성추행한 혐의로 다시 구설에 오르자 사건은 급반전됐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 서대문경찰서가 다시 고영욱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또 반려됐다. 다만 이번엔 반려 사유가 달랐다. 지난해와 같은 ‘증거 부족’이 아닌 지난해 불거진 세 건의 사건과의 병합 수사를 위해서였다.
결국 서울서부지검 형사3부(최길수 부장검사)는 지난 1월 23일 고영욱을 구속 기소했다. 지난해 불거진 세 건의 사건과 올해 불거진 또 한 건의 사건을 병합해 총 4건의 혐의에 따른 구속이었다.
지난해 용산경찰서에서 불거진 사건을 기소조차 못하고 있던 서부지검은 올해 불거진 새로운 사건까지 더해지자 비로소 고영욱을 기소했다. 용산경찰서와 서대문경찰서로 지난해와 올해 불거진 사건의 관할 경찰서가 달랐지만 관할 검찰은 모두 서부지검이었던 터라 검찰의 병합수사도 용이했다.
검찰 기소에 따라 고영욱은 드디어 재판정에 서게 됐다. 첫 공판은 오는 14일 오전 10시 10분 서울서부지법 303호 법정에서 열린다. 고영욱이 받고 있는 혐의는 미성년자 성폭행과 성추행이다.
검찰은 4건의 사건을 병합해 기소한 만큼 유죄를 자신하고 있지만 고영욱은 계속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결국 법원에서 치열한 법리논쟁이 오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불거진 3건의 사건은 검찰이 기소조차 못했을 만큼 증거가 부족한 한계가 있다. 올해 불거진 사건 역시 확실한 증거는 고영욱이 자신의 차량에 여중생 A 양을 태우는 모습이 찍힌 CCTV가 전부다. 차량 안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선 고영욱과 A 양의 주장이 상반된다. 따라서 아직까진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예측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고영욱이 거듭해서 미성년자와 성 관련 추문 혐의를 받고 있다는 점은 분명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고영욱의 기소를 거듭 미루던 검찰이 올해 기소를 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인 역시 올해 불거진 사건으로 고영욱의 혐의에 ‘상습성’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법조계 일각에선 고영욱의 변호를 맡던 법무법인 ‘새빛’이 공판 직전 돌연 사임한 것이 고영욱에게 결정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건이 처음 불거진 지난해 5월부터 고영욱의 변호를 담당했던 ‘새빛’은 지난 1월 30일 돌연 이 사건에서 발을 뺐다. 법원에서 치열한 분쟁을 벌여야 하는 고영욱 입장에선 능력 있는 변호사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선 변호인의 도움밖에 받을 수 없는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
그런데 최근 고영욱이 사선 변호사 두 명을 새로 선임했다. 지난 1일 국선 변호사를 지정받았던 고영욱은 최근 국선 변호사 선임 청구를 취소하며 새롭게 사선 변호사 두 명을 선임한 것. 이로써 고영욱이 법정에서 본격적으로 무죄를 주장할 발판이 마련됐다. 그만큼 뜨거운 법정 다툼이 벌어질 전망이다.
그렇다면 새빛이 갑작스럽게 사임한 배경은 뭘까. 이에 대해 새빛 측은 ‘내부 보안’이라는 이유로 관련 내용을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법조계 일각에선 고영욱 사건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사이에 묘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얘기가 흘러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고영욱 사건을 맡았다가 공판 직전 사임한 새빛은 박 당선인의 올케인 서향희 변호사(40·31기)가 지난해 8월까지 대표변호사로 있던 곳이다.
대중의 비난과 관심이 쏠린 고영욱 사건은 각 언론매체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서 변호사가 대표변호사로 재직했던 새빛이 계속해서 고영욱을 변호할 경우 그 불똥은 서 변호사를 넘어 박 당선인에게까지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이런 정황들을 고려해 새빛이 고영욱 변호를 스스로 포기한 게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너무 대중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데다 고영욱에 대한 비난여론 일색이라는 점에서 부담이 컸을 것”이라며 “승소한다고 해도 자칫 그 뒤에 ‘누가 있다’ 식으로 여론이 흐를 경우 만만치 않은 후폭풍에 시달릴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빛 대신 사선 변호인을 새로 선임한 고영욱과 4건의 사건을 병합해서 메스를 들이대고 있는 검찰의 진검 승부가 법정에서 어떤 결과물을 도출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