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돌리기’ 후유증을 조심해!
▲ 송도 신도시 조감도. | ||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면서 투기조짐까지 엿보이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하듯 한동안 쓰이지 않던 부동산 은어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투기 조짐이 살아나면서 투자 위험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부동산 시장 은어를 통해 은밀한 거래의 실상을 조명했다.
최근 인천 송도·청라지구 분양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분양권 야(夜)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분양권 야시장’이란 당첨자 발표 하루 전날 밤 모델하우스 인근에 형성되는 분양권 거래시장이다.
지난 5월 21일 인천 송도 신도시. P 건설이 분양한 S 아파트의 당첨자 발표가 이날 자정에 있었다. 이곳에는 100여 개의 ‘떴다방’ 파라솔이 세워지면서 모처럼 분양권 야시장이 섰다. 분양권 야시장의 주인공은 속칭 ‘떴다방’, 이동식 중개업소다. 떴다방 중개업자들은 현장에서 일반적으로 ‘실장’으로 통한다. 이동식 중개업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은어 중 하나가 ‘딱지’다. 딱지는 당첨된 청약서를 말한다.
다른 중개업자에게 ‘피’(P·웃돈, 프리미엄)를 주고 딱지를 사는 것을 ‘찍는다’라고 한다. 이렇게 찍은 딱지를 더 비싼 값으로 다른 중개업자나 고객에게 넘긴다. 이를 두고 사용되는 은어가 ‘폭탄돌리기’다. 이동식 중개업자들만이 사용하는 은어 중에는 ‘명함아줌마’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말 그대로 중개업자들의 명함을 고객에게 뿌리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런데 인천 청라·송도는 계약 후 중대형 아파트의 경우 1년, 중소형은 3년간 전매를 할 수 없다. 최근 이들 지역 모델하우스 앞에서 전매를 하는 떴다방의 영업은 모두 불법인 셈이다. 떴다방이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주로 거래하는 방식이 ‘복등기 계약’이다.
복등기는 말 그대로 등기를 두 번 동시에 하는 것. 전매가 불가능한 시점에서 계약을 하고 거래대금을 지불하지만 소유권(분양권)은 향후 전매가 가능한 시점(등기시점)에 가서 넘겨주는 거래 방식이다. 물론 양도자는 이행각서, 권리포기각서 등을 써야 하며 사는 사람은 서류 일체를 받고 이후부터의 계약금 및 중도금, 잔금 등을 부담하게 된다.
‘가등기 계약’도 있다. 가등기는 채권·채무를 활용하는 것으로 복등기보다 좀 더 정교하다. 일반적인 형태는 분양권을 보유한 사람이 매수자에게 돈을 꾼 것처럼 매도 대금을 받은 뒤 이에 대한 담보 형태로 분양권에 대해 가등기를 설정해 놓는다. 나중에 소유권 이전 등기가 이뤄지면 매수자가 채무 불이행을 이유로 가등기를 본등기로 바꾸면서 소유권을 넘겨받는 방식이다.
이러한 계약 방식들의 경우 떴다방 업자들이 설명하면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명백한 불법이다. 불법이기 때문에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당장 떴다방 중 상당수는 미등록 중개업자다. 대부분 떴다방들은 분양권 거래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타 지역에 있는 중개업소가 중개한 것처럼 매매계약서를 작성한다. 자신들이 중개를 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청라지구에서 떴다방이 중개를 했더라도 실제 계약서에는 지방 어느 도시의 중개사무소 직인이 찍혀 있을지 모른다. 계약자가 직접 확인해 보기 전까지는 해당 중개사무소가 실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자칫 계약상 문제가 발생하면 손실은 고스란히 계약자 몫이 되는 셈이다.
한편 딱지는 분양시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상암동, 위례신도시 등 도시계획이나 택지개발사업 등으로 집이 헐리게 된 철거민이나 원주민에 대한 보상책으로 주는 권리도 딱지라 불린다. 즉 단독택지 분양권 또는 전용면적 85㎡(25.7평) 이하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특별 입주권을 말한다.
딱지의 종류는 다양하다. 택지지구 예정지역에 상가를 소유하고 있었다면 상가용지 우선 분양권(상가딱지)이 주어진다. ‘조개딱지’라는 것도 있다. 과거 인천광역시는 송도신도시 개발예정지 인근에서 조개를 채취하는 어민 1200여 명에게 토지 우선매입권을 준 적이 있다. 이 조개딱지로는 송도신도시 내 준주거용지 165㎡(50평)를 우선 매입할 수 있었다.
딱지의 최대 매력은 저렴한 가격에 아파트나 상가를 매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 딱지는 원주민들에게 개발에 따른 피해보상 차원에서 주어지기 때문에 아파트는 원가에, 상가용지는 시세보다 싼 감정평가금액에 공급된다. 그러나 이 같은 딱지 거래도 불법이다. 택지개발예정지구에서 이주자 택지나 아파트 분양권을 받을 수 있는 원주민은 공람공고일 1년 이전부터 보상계약 체결일까지 계속해 가옥을 소유하고 그 가옥에 거주한 사람으로 돼 있다.
입주권이 부여되지 않은 딱지가 나올 수도 있다. 이를 두고 속칭 ‘물딱지’라고 한다. 딱지 거래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입주권이 부여됐는지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설령 입주권이 확보된 딱지라고 해도 원주민이 이를 두세 명에게 동시에 팔 경우 손해를 볼 수 있다. 과거 서울 마포구 상암동 아파트 입주 당시 한 아파트를 두고 여러 사람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일이 빚어졌던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상가딱지 역시 마찬가지다. 상가 우선분양권은 상가용지 공급대상자로 선정된 후 소유권 이전 등기 때까지 한 차례 전매가 가능하다. 상가 딱지를 판 사람이 나중에 상가용지 대상자 선정에서 제외되거나 이중 매매할 경우 손해는 딱지를 산 사람이 떠안아야 해 주의가 요구된다.
윤진섭 이데일리 기자 yjs@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