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삼성 특혜법이래?
올 초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이 발의할 때부터 금융지주사법 개정안은 야당과 시민단체가 ‘삼성특혜법’이란 수식어를 붙일 만큼 삼성그룹 지배구조와 관련된 논란을 몰고 다녔다. 이번 개정안이 지주회사가 금융자회사와 비금융자회사를 동시에 보유할 수 있게 해주는 까닭에서다. 이는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환상형 출자구조를 이뤄온 삼성의 지주회사제 전환이 총수일가의 ‘큰 출혈’ 없이 용이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둔 지적이었다. 동시에 삼성전자 지분율이 4%에 불과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일가의 지배력 유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이 당장 삼성 지배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일단 이건희 전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지분 25.10%를 보유, 그룹 장악의 기반이 된 에버랜드의 지주사 전환이 어려워 보인다. 개정안에 따르면 보험 자회사가 비금융 손자회사를 보유하는 것이 금지된다. 따라서 삼성이 에버랜드 중심의 지주회사제를 택할 경우 지주사 에버랜드의 자회사인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거느릴 수 없게 된다.
현재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는 지분 7.21%를 가진 삼성생명이며 2대주주는 4.02% 지분율의 삼성물산이다. 지주회사제 전환을 위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일부를 처분하면서 삼성물산을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로 만들어주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주회사제하에서 상장 자회사를 보유하기 위해선 최소 지분율 20%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삼성물산이 지분 1% 매입에 1조 원 정도가 소요되는 삼성전자 지분을 16% 추가 확보해야 하는 재정 부담이 따른다. 삼성물산 지분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는 에버랜드 역시 삼성물산 지분 20%를 새로 사들여야 한다.
에버랜드 대신 삼성생명을 새로운 지주사로 만드는 방법 역시 실현 불가능해 보인다. 금융지주사의 비금융 계열사 보유가 허용되긴 했으나 ‘보험사를 중심으로 한 지주회사제는 계약자 이익 훼손 우려가 크다는 점을 감안해 (보험)지주사가 직접 보유하는 경우에만 비금융 자회사를 허용한다’는 법 취지 때문이다. 지주사 삼성생명의 자회사 삼성전자 보유는 가능하나 삼성생명이 나머지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사들여야 한다는 부담이 따른다.
결국 삼성 입장에선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지주회사제로 전환하느니 이재용 전무가 삼성 특검 재판을 통해 에버랜드 지분 보유 정당성을 인정받은 만큼 현재의 지배구조를 이어가는 데 전력을 쏟을 것으로 관측된다.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보유한도가 종전의 4%에서 9%로 확대됐지만 삼성은 이미 지난해 4·22 삼성쇄신안 발표를 통해 은행업 진출 의사가 없음을 공표한 만큼 이번 법 개정이 삼성의 외연 확대에 미칠 영향은 일단 미비해 보인다.
SK는 금융지주사법 개정안을 통해 SK증권 보유 논란을 불식시키는 수혜를 얻었다. 최태원 회장이 최대주주인 SK C&C를 중심으로 ‘SK C&C→SK㈜→SK네트웍스→SK증권’ 형태의 지배구조 유지가 용이해진 것이다. 개정안 통과 이전 법에 따르면 지주회사제하에서 비금융지주사의 금융자회사 보유가 허용되지 않았던 터라 SK그룹이 지주회사제로 전환될 경우 SK증권 매각이 불가피했다. SK증권 매각설이 나돈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최태원 회장은 좀처럼 SK증권을 내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금융지주사법 개정안 통과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태원 회장 사촌형인 최신원 회장이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SKC와 SK증권 지분율을 15%까지 올리겠다”고 발언해 SK증권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분가 가능성이 큰 최신원 회장이 SK증권 지분 추가 매집 의사를 언급하자 SKC와 SK증권을 동반 계열분리 대상으로 여길지 모른다는 관측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대해 SKC 관계자는 “(최신원 회장이) SKC 지분율을 높이겠다는 것은 계열분리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 아니라 책임경영을 하겠다는 뜻이며 SK증권 지분 매입은 개인투자 차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안 그래도 금융지주사법 특수로 인해 SK증권 주가가 탄력을 받는 마당에 최신원 회장까지 나서 SK증권 주가를 띄우는 발언을 한 배경을 두고 말들이 많다. SK증권 주가가 오르면 오를수록 최신원 회장이 SK증권 지분율을 높이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재계 관계자들은 “최신원 회장의 SK증권 관련 발언이 결국 SK증권을 갖고 있는 최태원 회장에게만 좋은 일 해준 것”이란 평을 내놓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최신원 회장이 SK증권을 염두에 뒀다기보다는 최태원 회장과 추진 중인 빅딜의 일환일지도 모른다는 해석도 등장한다. 결국 금융지주사법 개정안은 최신원-최태원 사촌형제 간 계열분리 관측의 갈래만 늘려준 셈이다.
대한생명을 갖고 있는 한화그룹 역시 이번 금융지주사법으로 재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대한생명을 중심에 두고 한화손해보험과 제일화재 한화증권 등을 엮는 보험지주사로의 전환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화 측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 못 박는다. 대한생명은 현재 한화손해보험 지분 59.84%를 갖고 있지만 제일화재 지분율은 0.99%에 불과하며 한화증권 주식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
㈜한화를 중심으로 한 지주회사제 전환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화는 주요 계열사들 지분을 두루 보유하고 있으며 대한생명 지분도 28.16% 갖고 있다. 그런데 지주사는 비상장 계열사 지분을 40% 이상 보유해야 하므로 지주사 ㈜한화는 비상장 자회사 대한생명 지분을 11.84% 더 사들여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상장 계열사의 경우 지주사의 지분율이 20%면 되는 까닭에 대한생명 상장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대한생명을 상장시킬 경우 ㈜한화는 대한생명 지분 8.16%를 매각, 다른 용도의 실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화 측은 “대한생명 상장 시기를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현재로선 지주회사제 전환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