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가도에 재 뿌리지 마’
왼쪽부터 박원순 서울시장, 송영길 인천시장.
“정말 죽고 싶습니다. 날은 점점 더워지는데 냄새 때문에 제대로 숨을 못 쉴 지경이라 함부로 창문도 못 엽니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아이를 키웁니까. 제발 살려주세요.”
지금 인천광역시는 수도권매립지 인근 주민들의 민원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주민들은 1992년 매립이 시작된 이래 20년 넘게 악취·미세먼지·침출수 등으로 인한 환경적 피해와 집값 하락 등의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한다. 수도권매립지와 5㎞ 정도 떨어진 청라국제지구에는 ‘2016년 수도권매립지 사용종료’에 관한 현수막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오는 25일 서울시청광장에서 대규모 궐기대회를 예고하고 있다.
서울시는 난감하다. 수도권매립지의 47.5%(2012년 기준)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대체할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대체 매립지를 찾거나 소각장을 늘린다 해도 혐오시설이기에 입지 선정부터 완공까지 10년 이상의 조성기간과 수조 원의 재원이 들어가야 한다. 다급해진 서울시는 최근 “2017년부터는 여러분의 집안에 쓰레기를 쌓아야 될지도 모릅니다”와 같은 자극적 문구의 사용연장 홍보물을 제작·배포했다 거센 비난에 시달렸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대외협력실 관계자는 “수도권매립지 사용연한을 2016년으로 잡은 것은 매립지를 짓기 시작한 1980년대에 하루 배출량을 3만t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쓰레기종량제 실시와 분리수거 등으로 하루 배출량이 1만t까지 줄어 현재 매립지의 절반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연장해 사용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시에서는 여의도의 6배에 달하는 규모의 수도권매립지가 아닌 대체 부지를 마련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인천 주민들의 민원을 무시할 수도 없다. 우리 역시 매립지 환경개선 등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공사 측 설명에 따르면, 수도권매립지에는 1~4매립지가 있는데 제1매립지는 이미 사용종료돼 골프장으로 재탄생했고 2매립지는 현재 80% 정도 채워져 오는 2016년 12월경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다. 제3·4매립지는 부지만 조성돼 있는데 실제 매립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전처리시설, 하수슬러지 처리시설, 가스처리장치 등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3~4년은 소요된다. 올해가 연장 여부 결정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셈이다.
인천시 백석동 해안간척지에 조성된 수도권매립지.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급기야 여당이 구원투수를 자처했다. 지난 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윤성규 환경부 장관과 당정협의회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수도권매립지를 2050년까지 연장해야 한다는 입장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환노위 간사를 맡고 있는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쓰레기매립장이 2050년까지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인천시의 정치적 반대 행위로 차질이 빚어지면 안 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밝혀 사용 연장에 무게를 싣는 동시에 정치적 공세로 번지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 발언으로 또 한 명이 ‘무대’에 등장했다. 수도권매립지에 지역구를 둔 이학재 새누리당 의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이 의원은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송영길 시장과 맞붙을 유력 새누리당 후보로 꾸준히 거론된다. 실제 수도권매립지 문제와 관련해 송영길 시장과 이학재 의원의 목소리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여당에서 연장 합의설이 나온 만큼 어느 정도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학재 의원 측은 “송·박 두 시장이 내년 지방선거판에 수도권매립장 연장문제를 이슈화해서 표심을 잡으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 측은 “김성태 의원의 발언이 나간 이후 민주당에서 청라지구에 ‘환경부와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즉각 사과하고 매립종료 선언하라’는 현수막을 거는 등 남의 지역구에서 정치 공세를 벌였다. 수도권매립지 문제는 두 시장이 조용히 합의하면 되는 일이다. 특히 송 시장은 사용연장 불가를 말하면서도 인천시는 이미 서울시와 중앙정부에 3조 6000억 원 지원 건과 수도권매립지 사용연장을 연계해 논의하려고 하는 등 이중플레이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인천시는 “서울시와 경기도는 25년간 매립지를 사용한 만큼 사후 관리·개발비로 3조 6000억 원을 지불해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수도권매립지 사용연장과는 별개라고 밝혔지만 물밑에서 사용연장에 대한 합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와 인천시가 다시 실무회의에 들어간 것도 확인됐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인천시와 실무적인 협의를 통해 입장차를 좁히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사안은 대외비나 주변 환경개선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라고 전했다. 인천시 한 관계자는 “서울시와 비정기적으로 만나 대책을 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도권매립지 연장 불가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