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닫힌 ‘소통의 문’ 빼꼼~
이정현 홍보수석의 기용으로 ‘불통’ 청와대가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이정현 효과’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그가 홍보수석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부터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근무 패턴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기자들 사이에선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출·퇴근 시간을 정하는 건 회사 데스크들이 아닌 이정현 수석”이라는 농담이 오갈 정도다. 이 수석이 홍보수석을 맡은 뒤 전에 없던 오전·오후 백브리핑이 생긴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실제로 이 수석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오전 7시쯤 춘추관으로 출근하고 있다. 그날그날 조간신문과 방송 내용을 살펴본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서다. 그는 조간신문에 보도된 대통령 및 청와대 관련 기사의 사실 여부를 확인해 주고 남북관계와 대야관계 등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의중, 청와대의 입장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수석 부임 전 오전 7시쯤 기자실에 출근하는 기자는 석간신문과 일부 방송사 기자 등 10명 남짓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 수석의 오전 브리핑이 그날그날의 메인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기에 각 회사별로 최소한 1명씩의 기자들은 출근 시간을 당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수석은 매일 오후 6시쯤에도 기자실에 다시 들러 오후 브리핑을 하고, 필요할 때에는 불시에 별도 브리핑에 나서기도 한다. 기자들로서는 사실상 하루의 시작과 끝을 이 수석과 함께하게 됐다.
이런 변화는 그동안 ‘아예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공보기능이 살아났음을 의미한다. 이전까지 대형 이슈가 터져도, 대통령과 관련된 기사들이 쏟아져도 청와대 홍보수석실 관계자들조차 “나는 잘 모른다”,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실의 진위는 물론 특정 현안에 대해 박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정현 효과’로 인해 이런 불통, 모호한 상태는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다. 단적인 사례가 남북당국회담 무산 과정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이다. 6월 12~13일 서울에서 열리기로 돼 있던 남북당국회담이 무산된 11일 밤 이 수석은 긴급 백브리핑을 자처했다. “상대를 존중하는 대신 굴종과 굴욕을 강요하는 것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는 청와대의 입장이 이 자리에서 나왔다. 이튿날인 12일 오전 브리핑에선 “형식은 내용을 지배한다”는 과거 박 대통령의 발언이 소개됐다.
이 수석의 잇단 브리핑을 통해 그동안의 남북대화에서 남측이 북측에 비해 격이 높은 협상대표를 내세워 왔던 것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잘못된 관행’이라고 판단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실제로 정부는 2년 4개월 만의 당국자 회담이 무산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북측을 상대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협상 대표의 격을 맞춰줄 것을 요구했다.
물론 ‘이정현 효과’를 평가하기엔 아직 이른 감이 있고, 실제로 일부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자칫 청와대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단적인 사례가 이 수석의 12일 오후 브리핑 내용이었다. 이 수석은 남북당국회담 무산 책임에 대해 야당과 일부 언론이 남북한 정부를 모두 비판한 것을 겨냥해 “세게 말하자면 양비론은 북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수석의 발언은 이튿날인 13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난타를 당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북한의 떼쓰기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지만 ‘양비론은 북한에 명분을 주는 것’이라는, 사실상의 ‘신 보도지침’을 내리는 것은 오만과 교만, 독선적이라는 점을 경고한다”고 말했다. 심재권 의원도 이 수석의 발언을 “‘신 보도지침’이요, ‘신 매카시즘’, ‘신 색깔론’”이라고 비판하면서 “대통령은 무오류의 교황이고, 모두 추종해야 한다는 식의 권위주의를 넘어 오만 불손한 태도”라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정현 효과’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청와대가 논쟁의 당사자로 뛰어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특히 청와대가 북한과 맞상대하는 모양새가 되는 것은 절대로 경계해야 한다”며 “소통과 불통 사이에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