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은 손짓 대기업은 팔짱
그런데 최근 반도체 시장 호황 전망에 힘입어 하이닉스 주가가 상승세를 보이자 채권단에서는 매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해 매각에 드라이브를 건 것이다.
채권단은 인수 대상 기업을 국내 기업으로 한정해 인수의향서를 접수하고 예비 입찰과 본 입찰을 거쳐 연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LG 포스코 롯데쇼핑 현대중공업 GS 한진 KT 두산 한화 STX LS 등이 인수 여력이 있는 기업들로 언급되고 있다.
외환은행의 한 관계자는 “‘매각안내문을 보내달라’며 관심을 가진 기업이 있었다”고 말해 하이닉스 매각에 청신호가 들어왔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하이닉스가 새 주인을 만나기는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매각하기로 한 지분은 하이닉스 주주협의회가 보유한 매각제한 지분 10억 6548만 주로 하이닉스 전체 발행 주식 5억 8960만주의 약 28%에 해당한다. 애초에 주주협의회는 인수자의 경영권을 위해 약 36%를 매각제한 지분으로 결정했지만 경기침체로 하이닉스가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유상증자를 단행하면서 매각제한 지분율이 28%로 낮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경영권 프리미엄 30% 정도를 감안하면 인수대금이 무려 4조 5000억 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만한 현금 유동성을 보유한 회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특히 포스코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하이닉스 이천공장을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직접 방문한 것이 알려지면서 포스코의 하이닉스 매각설이 고개를 들었다. 게다가 포스코건설이 다음 달 상장될 것으로 전해지자 일각에는 M&A를 위한 실탄 마련 작업이라는 시선도 나오고 있다. 포스코건설 주식은 현재 장외시장에서 10만 원이 넘는 금액으로 거래되고 있으며 상장시 공모가는 10만~12만 원, 공모 규모는 1조 원 안팎일 것으로 전망된다.
포스코는 포스코건설의 최대주주로 지분율이 89.53%에 달하고 포스코건설의 장부가가 주당 3만 4000원대여서 상장할 경우 적지 않은 상장차익을 얻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러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M&A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재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포스코 관계자는 “철강 전문 기업인 만큼 철강과 관련한 시너지 효과를 감안해 실무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며 “아직까지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하이닉스가 2001년 이전까지만 해도 현대의 이름을 달고 있어서 ‘범 현대가’ 기업도 인수 가능 기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기아차그룹 측은 “자동차와 제철에 신경을 쓰고 있어 M&A 시장에 뛰어들 여력이 없다”며 그 가능성을 일축했다. 현대중공업 측도 “내부에서 언급조차 안 되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실패의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는 한화 측도 “올해 국내 대형 기업들이 M&A 시장에 나올 예정으로 알고 있지만 어떤 회사에도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SK그룹 측도 “하이닉스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밝혔고, 지난 1999년 반도체 빅딜로 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에 LG반도체를 넘겼던 LG그룹 측도 “인수 의사가 없다”고 못을 박았다.
한편 하이닉스 내부 관계자는 “2년 동안 반도체 업계의 ‘치킨게임’에서 승리해 경쟁력이 크게 강화됐다”며 “채권단 관리에 있다 보니 구심점이 없다는 느낌이었는데 매각 작업이 잘 이루어져 하이닉스가 새 주인을 맞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포스코나 현대중공업 등 규모가 큰 회사가 인수하길 바란다”면서 “하지만 전자 부문이 있는 LG가 새 주인이 되면 구조조정 등이 올 수 있어 내부에서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