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22일 민주당에선 박상천 대표가 소속 의원들을 대동하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가운데는 같은 날 청와대에서 헌혈을 하려다 못하고 버스에서 내리는 노무현 대통령 모습을 합성한 것. 이종현 기자·청와대사진기자단 | ||
민주당이 쪼개지며 형성된 ‘신 여소야대’ 지형은 노 대통령에게 험준한 산맥과 다를 바 없다. 측근들의 국감 증인 채택과 감사원장 후보 임명 동의안 부결 등은 ‘맛보기’에 불과하다고 ‘거야’는 외치고 있다. 작은 여당의 한계를 절감한 상태에서 ‘무당적’을 선언한 노 대통령. 이제 ‘나홀로 정국’을 시작한 노 대통령에게 과연 어떤 정치 행로가 기다리고 있을까.
노 무현 대통령과 통합신당에 대한 민주당의 공세는 한나라당의 공세를 이미 웃돌고 있다. 민주당의 노 대통령과 통합신당에 대한 공세가 구체적 행동으로 나타난 것은 역시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특위 위원 배정문제였다.
통합신당은 지난 9월24일 청문회를 앞두고 박관용 국회의장에게 통합신당의 김영춘 의원 등을 특위위원에 보임해줄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박 의장은 이를 미처 처리하지 않고 외유를 떠났고 청문회는 통합신당 의원들이 참석하지 못한 채 시작됐다. 통합신당이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한 만큼 당연히 민주당 위원 2명이 사임하는 대신 통합신당 위원 2명이 보임돼야 하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국회의장의 결재를 받아오라며 오전 내내 통합신당 위원을 청문회에 참여시키지 않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의한 통합신당 ‘왕따시키기’가 시작된 것이다.
26일 진행된 윤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준투표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보다 노골적으로 확인됐다. 이날 표결에 참석한 2백29명 의원 중 찬성은 87명에 그친 반면 반대는 무려 1백36명에 이르렀다. 통합신당이 찬성을 당론으로 정한 만큼 찬성 87표에는 통합신당 중 표결에 참석한 34명과 민주당 내 신당파 전국구 의원 5명(참석자), 개혁당 2명이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찬성표 중 나머지 46표에 결국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 등의 표가 포함된 것이다. 이날 표결은 당론이 아닌 자유투표로 이뤄졌기 때문에 한나라당 참석 의원들 중 십수 명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표결에 참여한 민주당 의원이 56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민주당 의원 중 적지 않은 수가 반대표로 쏠린 셈이다. 이는 곧 노 대통령과 통합신당에 대한 민주당의 정서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민주당의 노 대통령과 통합신당에 대한 공세는 이 정도 수준에서 머물지는 않을 것이 확실시된다. 그리고 그 공세는 노 대통령과 통합신당의 근간을 뒤흔드는 ‘폭발력’을 지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감 증인 채택은 그 단초를 제시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노무현 정권 출범 후 최대 의혹사건으로 꼽히는 현대 비자금 사건의 핵심 증인인 권노갑 전 고문과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증인에서 제외했다. 반면 양측은 노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와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안희정씨를 정무위와 재경위에서 동시에 증인으로 채택했다. 노건평씨는 부동산 의혹과 관련해, 안씨는 나라종금 퇴출로비 의혹사건과 관련해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들을 상대로 집중적인 추궁을 벌여 노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으려고 칼을 갈고 있다.
최병렬 대표가 “만약 증인이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해당 상임위원장과 간사에게 책임을 추궁하겠다”고 경고한 것이나 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의총을 통해 “이제 우리는 야당으로 국감에서 정부에 대해서는 분명히 시시비비를 가릴 것”이라고 다짐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민주당의 노 대통령 및 통합신당에 대한 공격의 골간은 역시 권력형 비리 의혹과 도덕성 문제다. 그런 차원에서 민주당 예결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울 강동갑의 노관규 위원장이 이상수 총장 체제하에서의 당 재정 운영에 대해 외부 감사기관을 동원, 감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냥 넘기기 어려운 사안이다. 감사의 1차적 목표는 국고보조금과 후원금 등이 당 운영에 적절하게 쓰였는지에 맞춰져 있다. 만약 통합신당으로 넘어간 이상수 총장이 당 자금을 전용하거나 신당 창당을 위해 지출한 사례가 드러나면 통합신당의 도덕성에 상처를 입을 뿐 아니라 민주당의 법적 소송으로 물리적·정신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감사가 여기서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이번 감사를 통해 노 대통령의 대선자금 부분을 건드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분당 이전 신당파는 노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가 논란이 되자 스스로 대선자금을 공개했고 이 과정에서 수차례 액수와 내역을 수정해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만약 민주당이 대선자금의 입출을 조사·공개하는 과정에서 그 내역이 신당파의 발표와 다르거나 탈법 편법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면 신당파는 말할 것도 없고 노 대통령도 엄청난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정치적으로 비주류이자 소수인 노 대통령이 가장 큰 정치적 자산으로 삼고 있는 것은 도덕성이고 그중에서도 ‘돼지저금통’으로 대표되는 대선자금의 투명성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 훼손된다면 노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은 뿌리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물론 민주당 역시 어느 정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만큼 설사 대선자금 조사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나더라도 공개하지 않고 압박용으로 덮어둘 가능성도 있다. 그렇더라도 노 대통령과 통합신당의 입지는 엄청나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2단계 공세는 동교동계가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동교동계는 분당 전 신당파에 대해 “도덕적으로 결코 정치개혁을 주장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란 말을 수차례 해왔다. 과거 권노갑 전 고문 등 동교동계 핵심 실세들로부터 신주류의 핵심인사들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치자금을 제공받아왔다는 것이다.
동교동계의 한 핵심인사는 “신주류 강경파로 분류되는 인사들은 과거 김대중 정부하에서 툭하면 권 전 고문 등과 골프를 함께하며 정치자금을 받아왔고 선거 때에도 적잖은 지원을 받았다”며 “그런 사람들이 이제 와서 동교동계를 퇴출시켜야 할 정치인으로 매도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만약 동교동계가 이런 정치자금 지원 사실을 비공식적으로 흘리기 시작하면 신당파의 핵심인사들은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권 전 고문과 박지원 전 실장은 이미 현대로부터 거액의 비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상태. 권 전 고문이 현대로부터 받은 비자금을 통합신당 의원들에게 나눠주었고 그 과정에서 현대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고 진술한다면 해당 인사들은 줄줄이 사법처리를 받게 된다. 박 전 실장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