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들이고 사업 망치고… 오너들아, 신중해라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이 컨설턴트 출신 인물에게 무한신뢰를 보낸 탓에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사진은 CJ그룹 본사. 일요신문 DB
이 관계자의 말처럼 대기업들은 컨설팅회사와 그 출신 인물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신사업을 추진하거나 사업 구조조정을 단행하거나 기업의 성격과 사업구조에 변화를 주고자 할 때면 어김없이 유명 컨설팅사의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 컨설턴트 출신 인물을 영입해 핵심부서에 배치하기도 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어떤 기업이든 간에 회사 내 인물들이 조직과 사업구조 틀을 깨거나 넓게 내다보기는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점이 컨설팅사의 자문을 구하고 컨설턴트 출신 인물을 영입하는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이다. 인수합병(M&A)이나 신사업 추진 등 변화와 또 다른 도약을 원하는 기업에서는 컨설턴트 출신 외부 인사 영입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재계에선 이와 반대로 글로벌 컨설팅 회사와 그 출신 인물들이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LG전자는 컨설팅 비용으로 수백억 원을 쓰고도 수조 원의 손해를 봤다. LG 트윈타워 모습.
LG전자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스마트폰 시장에 대응하지 못한 것. ‘초콜릿폰’, ‘프라다폰’ 등 피처폰 부문에서 잇단 ‘대박’을 터뜨린 LG전자가 스마트폰 시대의 도래와 시장 변화를 읽지 못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그러나 LG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이 열릴 것을 전혀 예견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이를 예상했음에도 LG전자는 효자노릇을 하던 피처폰의 디자인과 마케팅에 더욱 주력했다. 비록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할지라도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본 것이다. M 사의 컨설팅과 자문 결과였다.
LG전자는 M 사의 조언을 받아들여 기술력 강화보다 디자인·마케팅에 더 크게 신경 쓰며 스마트폰 시장에 안이하게 대처했던 것이다. LG는 또 M 사의 자문과 컨설팅에 따라 사업 구조조정, 신사업 투자, 해외 인재 영입 등 적지 않은 부분에 변화를 주었지만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았다. LG전자가 M 사에 컨설팅 비용으로 지불한 비용은 연간 300억 원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수백억 원의 컨설팅 비용을 지불하고도 수조 원의 손해를 본 것이다.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웅진그룹 본사.
CJ그룹 역시 이재현 회장이 컨설턴트 출신 인물에게 무한신뢰를 보낸 탓에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2008년 살인청부 혐의로 재판을 받은 이 아무개 전 CJ 재무팀장은 컨설턴트 출신으로서 이 회장의 비자금을 관리해왔으며 이 회장은 이 전 팀장을 가까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이 전 팀장의 일에서 비롯한 것임을 감안하면 이 회장이 컨설턴트 출신 영입 인사를 중용한 것이 화를 불러일으킨 셈이다.
일부 컨설턴트 출신 인물들은 회사가 어려움에 봉착할 경우 이를 극복하기 위해 회사 내에서 노력하기보다 아예 회사를 떠나버리기도 해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대부분 대기업은 컨설팅사와 컨설턴트 출신들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자문을 구하거나 출신 인물을 영입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실제로 오너 구속 상태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CJ그룹은 최근 이 체제를 이끌 기획실 실장으로 보스턴컨설팅그룹 출신 박성훈 부사장을 영입했다. 여전히 구조조정 등 체질 개선에는 컨설턴트 출신이 유리하다는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룹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는 아무래도 내부 인사보다 외부 인사가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장점 때문에 부작용을 알면서도 컨설턴트 출신 인사를 영입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무조건 컨설팅 회사와 컨설턴트 출신들의 잘못으로 몰아붙여서는 곤란하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결정은 오너가 하는 것. 그들을 과신해 그릇된 방향으로 가는 것도, 잘못된 경영 판단을 내리는 것도 결국 오너 책임이라는 얘기다. 앞의 대기업 인사는 “오너나 총수가 종종 컨설턴트 출신 인사들을 이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며 “오히려 회사가 어려울 때 그들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팽’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