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홍콩 중국 등지의 외국언론과 이를 주로 인용해 보도해온 국내 언론들은 그가 네덜란드 라이든 대학에서 ‘공부’했던 것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일요신문>이 라이든 대학과 양빈의 대학 은사로 알려진 미국 하버드대학 사이크 교수에게 확인해 본 결과 ‘양빈’이라는 학생은 라이든 대학에 다닌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양빈의 자택연금이 탈세 등의 범법 혐의 때문인지, 아니면 서구자본에의 지나친 의존 등 북한의 일방적인 개방정책에 대한 중국의 견제 때문인지 현재로선 명확하지 않은 상태.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가 행정장관직에 있는 한 ‘신의주의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선 투명한 경영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만약 양빈이 내세운 학력이 ‘가짜’라면 연행사태로 인한 후유증 못지 않게 그의 도덕성에도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양빈의 이력서에는 어떤 ‘거짓의 잉크’가 묻어있는지 추적해봤다.
먼저 양빈의 학력 의혹을 밝히기 위해서는 그의 공식 이력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컨설팅업체 ‘아시아 엑세스’ 상하이 지부는 어우야그룹으로부터 양빈의 공식 이력서를 제공받아 활용해오고 있었다. 다음은 ‘아시아 엑세스’가 <일요신문>에 보내온 양빈 공식 파일의 일부분이다. ‘1963년생인 그는 중국의 해군 학교를 졸업한 뒤 1987년 네덜란드 라이든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다녔다. 그뒤 1989년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자 정치 망명 자격을 얻었다.’
‘아시아 엑세스’측이 보관중인 양빈 파일은 다른 국내외 언론에서 보도된 그의 이력과는 차이가 있다. 홍콩의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는 양빈이 1987년 라이든 대학에 입학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국내에서는 <중앙일보>가 ‘지난 87년 네덜란드의 라이든 대학에 유학한 뒤, 90년에 정치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가 실제로 라이든 대학에서 공부한 적이 있을까.
<일요신문>은 지난 9월26일 네덜란드 라이든 대학에 양빈의 학력에 대한 확인 요청 이메일을 보냈다. 4일 뒤 라이든 대학 학생정보센터에서 근무하는 모리츠 브룸씨에게서 답장이 왔다. 브룸씨는 답변서에서 “매우 미안하지만 우리는 당신이 요구한 정보에 대해 어떤 답도 줄 수 없다. 프라이버시 법에 따라 단지 우리가 당신에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은 그가 한때라도 우리 대학에서 공부를 했는지의 여부밖에 없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우리 시스템(학생 신원조회)에서 찾아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 그가 졸업했다고 주장한 네덜란드 라이든 대학 본부 건물 | ||
“혹시 이름을 바꾸고 학교생활을 했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브레그넌씨는 “동양에서 온 학생들의 경우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을 간혹 영어 이름으로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성까지 바꾼 학생은 한명도 보지 못했다”며 양빈이 가명을 사용했을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라이든 대학 개교 이래 ‘양빈’이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은 어떤 학부에서도 공부한 적이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양빈은 자신이 라이든 대학에서 공부했던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에서 주로 양빈을 취재하고 있는 네덜란드 외신기자 게리씨는 “그는 기자들과의 대화에서도 하버드 대학의 정치학 교수 토니 사이크 교수를 자신의 ‘은사’로 즐겨 거론하곤 했다. 사람들은 양빈의 ‘당당한’ 발언을 믿고 그가 라이든 대학을 다녔다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의심을 가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외신을 인용 보도한 국내 언론도 양빈과 사이크 교수의 관계를 보도한 적이 있다. 모 일간지는 양빈의 프로필을 소개하면서 “라이든 대학 시절 은사였던 사이크 교수는 그(양빈)를 ‘똑똑한 수완가’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국내신문은 “라이든 대학에서 그를 가르쳤던 하버드 대학 정치학과의 토니 사이크 교수도 중국경제지인 위안둥(遠東) 경제평론과의 회견에서 양 장관에 대해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로 폄하했다”고 보도했다.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 보도의 요지는 ‘사이크 교수가 라이든 대학에서 양빈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이크 교수에 따르면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일요신문>은 하버드 대학 부설 ‘존 F. 케네디 정부문제연구소’에서 국제관계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토니 사이크 교수에게 양빈과의 관계를 묻는 이메일 질의서를 보냈다. 사이크 교수는 라이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뒤 라이든 대학 부설 중국학연구소 소장으로 일한 적이 있는 ‘중국통’이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라이든 대학에서 공부했던 중국 학생들을 잘 아는 인물이므로 그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사이크 교수가 <일요신문>에 보낸 답신 이메일 내용 전문이다.
“양빈은 결코 라이든 대학에서 공부한 적이 없다. 그는 1989년 천안문 사태가 일어났을 때 네덜란드를 방문하고 있었다. 양빈은 자신이 반정부 학생그룹의 중요한 리더이고 이 때문에 중국에 돌아갈 수 없다고 주위에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신분을 등에 업고 정치적 망명 지위를 얻고 또한 네덜란드 국적도 취득했다. 그런데 중국이 대외개방에 나서자 그는 중국으로 돌아가 돈을 벌 기회를 잡았다. 나는 그를 아주 가끔 만났지만 그의 비즈니스 업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사이크 교수는 양빈이 자신을 은사라고 자랑한 것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그가 결코 라이든 대학에서 공부한 적이 없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렇다면 양빈은 어떻게 사이크 교수를 알게 돼 주변에 ‘은사’라고 말했던 것일까. 사이크 교수는 이에 대해 “내가 라이든 대학에 있을 때 중국에서 온 한 대학원생으로부터 양빈을 소개받았다”고 말했다. 또한 사이크 교수는 그 후의 인연에 대해서도 “네덜란드에서 몇 번 그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90년대 내가 중국에 살 때도 3~4번 저녁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양빈과 사적인 만남을 몇 번 가지긴 했지만 어떤 말을 했는지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의례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사이크 교수는 양빈이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사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과연 양빈은 이에 대해 어떤 ‘변명’을 할지 궁금했다. 기자는 지난 10월3일 중국 센양에 머물고 있는 양빈에게 밤늦게 전화를 했다. 양빈의 비서 ‘류’(Liu)씨가 전화를 받았다. 기자는 양빈과의 직접 통화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류씨는 양빈의 학력 조작 의혹에 대해 묻자 “그것은 모르는 내용이다. 그런 문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시중에 떠도는 루머에 대해 신경을 안쓴다”고 말했다. 기자가 “이번 의혹에 대해 밝힐 입장이 있다면 반론을 실어주겠다”
고 했지만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면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공교롭게도 기자가 양빈에게 전화를 했던 날은 그가 중국 당국에 연행되기 바로 전날 밤이었다. 이 전화는 양빈도 가끔 받는 경우가 있는 직통연결 라인이었다.
통화 내내 전화기 너머에선 누군가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쉴새 없이 들렸다. 몇 시간 뒤면 중국공안의 ‘올가미’를 받아야 할 신세였지만 양빈 일행은 그들의 ‘미래’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