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입’… 존재감은 대표 이상
김무성 의원(왼쪽)과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의 잇따른 파격 언행과 관련해 여권 일각에서는 수위조절을 당부하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최근 친박계 핵심으로 급부상한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의 발언에 이같이 반응했다. 윤상현 의원은 지난 9월 22일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채동욱 총장의 혼외자로 지목된) 모자 혈액형을 어떻게 알았는지 확인해봤더니, <조선일보> 보도 이후에 청와대가 정상적 방법으로 권한 하에 알게 됐다고 한다.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사전 기획한 것이나 비정상적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여권에 보면 혈액형이 나와 있는 경우가 있다”는 발언이었다. 국내 여권에는 혈액형이 기재됐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윤 의원의 실언으로 앞서의 해명 역시 신빙성이 떨어졌고, 민주당은 “공직자가 아닌 민간인의 혈액형을 청와대가 어떤 방법으로, 어떤 근거에 의해서 취득하였는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채동욱 총장의 혼외자 의혹과 관련해 청와대 개입 의혹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윤 의원의 발언으로 민간인 사찰 의혹까지 덧씌워진 셈이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 역시 “발언 자체가 정부가 불법적으로 개인 신상털이를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되쏘았다.
친박계 한 보좌관은 “윤 의원이 꼬인 정국을 수습해 보려다 일이 꼬인 셈”이라며 지적하며 “윤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과 직접 의논하고 소통한다기보다 박 대통령 보좌관 출신의 청와대 행정관들과 교류가 잦은 것으로 안다. 이 과정에서 조금씩 각색되니 말이 오류가 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또 “원래 여기(친박계)가 사고를 쳤을 경우 본인이 직접 수습해야 한다”며 “이정현 홍보수석도 대선 때 박 대통령 입을 자처하며 나섰고 결국 그 공로가 인정되지 않았느냐. 그런 전략을 갖고 정기국회를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본다”라고 전했다.
윤상현 의원의 존재감은 9월 25일 여야 4자 회동에서도 드러났다. 국정원개혁특위 설치 문제와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 관련 긴급 현안질의 여부를 놓고 옥신각신 하는 동안 윤 의원은 별다른 말을 보태지 않았다. 당시 회담을 지켜보던 한 인사는 “최경환 원내대표가 부드럽게 협상을 유도하려고 한다면 민주당은 다소 삐딱했고, 윤 의원은 고자세를 유지한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 윤 의원은 시도당위원장연석회의에 참석해 새누리당에서 ‘국회선진화법’ 개선 TF(태스크포스)를 준비 중임을 밝히기도 했다. 국회선진화법이 헌법 제49조인 다수결의 원칙에 반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민주당 대변인실 관계자는 “윤 의원은 반성문 발언(지난 8일 ‘민주당은 야권연대를 통해 종북세력을 국회 안에 교두보를 마련해 준 과오에 대한 반성문을 써야 한다’는 발언)부터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며 “자기들(새누리당)이 18대 국회 때 여론을 의식해 만든 법인데, 위헌인지 아닌지 따져보겠다는 게 이상한 일 아니냐. 그러니 결국 안에서도 불만이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앞서의 친박계 보좌관은 “그건 전병헌 원내대표가 입을 잘못 놀렸기 때문이다. 전 대표가 기자들에게 야당 협조 없이 어렵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겠다고 선전포고 했는데 사실상 선진화법을 악용하겠다는 말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집권여당이 반응하고 대응하지 않는다는 게 더 이상하다”고 두둔했다. 해석은 엇갈리지만 현재 윤 의원이 여의도 최고의 이슈메이커로 떠오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모습이다.
발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오전 근현대사 모임에 이어 오후에 울산을 방문한 김 의원은 핵심 당원들에게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될 때까지 우파정권이 집권해야 한다”면서 “월급은 두 배로 받으면서 생산성은 2분의 1밖에 안 되는 현대차 귀족노조를 두드려 잡지 않으면 경제발전이 어렵다”고 말해 각계각층의 비난과 지지를 동시에 받았다.
김무성 의원이 연일 강성 행보를 이어가는 데는 청와대와 관계 개선에 나서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권을 노리는 상황에서 청와대와 맞각을 세우는 이미지에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원조 친박’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가 10월 재·보선을 통해 국회 입성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친이계 성향의 한 전직 의원은 “취지는 이해하지만 꼭 그렇게까지 이야기하고 다닐 필요가 있나 싶다. 김무성 의원이니 그러려니 하는 면도 있을 것이다. 그냥 당권을 갖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낫다”라고 일갈했다.
청와대 행정관 출신 한 여론 전문가는 “김무성과 서청원 두 사람 모두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로 시작해 친박계가 됐다는 공통점이 있어 각별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두 사람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발전협의회를 꾸리는 과정에서도 충돌이 있었다. 정발협을 이끌었던 서 전 대표에 맞서 당시 상도동 막내격인 김 의원이 재정적인 자문을 하다 조금씩 발을 뺐다. 이번에 김무성 잡으러 서청원이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지나친 비약만은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김 의원의 발언이 너무 나가고 있다는 당내 반응이 적지 않지만 그만큼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새누리당 한 초선 의원은 “김무성 의원이 이제야 박근혜 대통령이나 김기춘 비서실장과 공조하는 전략을 취한다는 느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래서 김무성·윤상현 두 이슈메이커에 대한 한 민주당 의원의 다음과 같은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잘나가는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재산이 많아야 한다. 돈이 많아야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소신을 펼치기 좋다는 의미에서다. 또 폭탄주도 잘 마셔야 한다. 술자리에서 편안하면 두루두루 대인관계가 좋아지기 마련이다. 좋든 나쁘든 언론에 많이 나오는 것도 중요하다. 김무성·윤상현 두 의원이 꼭 맞는 경우인데 지금 보면 황우여 당 대표보다 김무성 의원이, 최경환 원내대표보다 윤상현 수석부대표가 더 많이 나오는 상황 같다. 야권에서는 그만큼 상대하기 껄끄럽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