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초 치러진 한 대학교의 교양과목 기말시험 문제다. 문제를 낸 사람은 경북대학교 미술학과 시간강사 정아무개 교수(32). 정 교수는 이 학교 학생 1백15명이 수강한 ‘미술의 이해’ 과목 기말 시험 에서 전체 40문항 중 상당수에 걸쳐 이같이 기상천외한 문제를 냈다.
정 교수가 낸 문제는 이밖에도 ‘배용준식 머플러 매는 법’ ‘알타미라 동굴을 발견한 사람의 당시 나이는’ ‘이집트 왕 파라오의 딸과 하룻밤 자기 위해 필요한 것은’ 등이 있었다. 정 교수는 심지어 “지금 기말고사를 치르고 있는 이 수업의 이름은?”이라는 질문으로 첫 문제를 시작해 마지막 문항인 40번째 문제를 이렇게 냈다. ‘머리 아파서 50문제는 도저히 ( ) 내겠다.’ 문제의 보기로는 ‘①밥 ②못 ③혀 ④빚’이 나왔다.
정 교수의 이 같은 시험 문제가 11일 공개되자 경북대 게시판은 들끓었다. 게시판에는 ‘학교 망신’이라는 소수의 의견과 함께 “이 문제들이 ‘유치한 말장난’이 아니라 수업 내용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라는 수강생들의 변론이 이어졌다.
정 교수의 수업을 받았다는 농업경제학과의 심아무개씨는 “시험을 치면서 처음엔 황당하기도 하고 화도 났다”며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 시험문제는 각 조별 자유 주제 발표 내용을 토대로 이뤄진 것이고 실제 수업에 빠진 사람들은 맞힐 수 없는 문제였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내용의 유치함은 있지만 수업에 대한 충실성과 실험정신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학교측이 정씨로부터 사과문을 받았으며 내년부터 경북대 강의를 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자 게시판에는 학교측을 비난하는 글들로 넘쳐났다.
물리학과 졸업반이라는 한 학생은 ‘학교 망신’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시험 문제보다도 유연성 없고 고압적인 학교측의 발상과 행동이 전국적인 망신”이라며 “내년이면 졸업인데 진짜 학교 못 다니겠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 학생의 글은 16일 오후 현재 3천8백여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게시판에 글을 올린 대부분의 학생들 역시 정 교수의 취지를 이해하는 의견과 함께 ‘학교측의 징계 조치를 철회해달라’고 요구했다. 게시판이 며칠째 이렇게 들끓자 학교측은 입시원서 접수 마감날인 13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게시판 서비스를 중단했다.
학교 교무과 박재경 팀장은 “정 교수에게 사과문을 받거나 내년 수업을 못하도록 한 조치는 전혀 없다”고 말했으며 정 교수가 소속된 미술학과 관계자 역시 “이번 일과 관련해 학교측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미술학과 관계자는 “이번 시험 문제를 두고 기자들 전화가 많이 걸려오는데 정작 우리 학과 교수님들은 정 교수의 시험 문제를 이해하는 분위기이며 별다른 문제를 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의 당사자인 정 교수는 현재 외부와의 연락을 끊은 상태.
인터넷 사이트 ‘다음 카페’에는 벌써 3개의 관련 카페가 만들어져 4백70여 명의 회원이 가입을 했다. 정 교수는 16일 이 카페에 ‘샤를르’라는 이름으로 글을 올려 “이 기말고사는 단답형의 답을 누가 더 많이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수업에 진지했는가를 알기 위한 방법이었다”며 “그러나 다시 한번 시험문제를 읽어보니 경솔한 점이 없진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 글이 공식 사과문이나 시말서가 아님을 밝히면서 “하지만 우리들의 수업이 인터넷 엽기란에 링크된 점에 대해선 모든 경북대인들에게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 교수는 시험 문제 정답과 함께 각 문항별로 이 같은 문제를 낸 이유를 게시판에 올려 다시 한번 눈길을 끌었다.
알타미라 동굴을 발견한 사람의 나이를 묻는 문제에 대해서는 “동굴을 탐사하던 할아버지를 따라갔다가 너무 심심해서 천장을 바라본 다섯 살짜리 손녀딸(5?)위대한 발견은 때론 너무나 무심결에 이루어지기도 한다는 걸 같이 이야기했지요”라고 했다.
‘배용준식 머플러 매는 법’에 대해서는 “‘영상매체가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이라는 주제의 발표에서 나온 얘기”라며 “틀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눈길을 끌었던 고스톱 점수 계산도 ‘도박’에 대한 주제 발표와 관련된 문제. 정답은 6만4천원이었으며 정 교수는 화투를 칠 줄 모르는 모든 사람의 답을 정답 처리했다.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