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화문 촛불시위 장면.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미국측은 이에 대해 SOFA협정은 이미 지난해에 개정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개정의사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또한 한국군도 해외에서 ‘불평등’한 주둔군지위협정을 맺고 있다며 자신들의 개정불가 입장을 합리화하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과연 그 말이 사실일까. 한국이 해외에서 맺은 주둔군지위협정의 내용을 추적해본다.
한국 군대가 외국과 맺은 주둔군지위협정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해외 파병부대 현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합동참모본부가 밝히고 있는 2002년 12월 현재 한국군의 해외 파병현황은 총 10개 지역에 8백여 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 파병부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UN에 속해 활약하고 있는 평화유지군과 미국의 대 테러전쟁을 지원하고 있는 파병부대가 있다. 이중 UN 평화유지군은 UN의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주둔군지위협정은 UN이 각 주재국과 맺고 있기 때문에 한국은 협정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한국의 UN 평화유지군은 총 5개지역에 걸쳐 4백77명 규모. 대표격인 상록수부대의 경우 동티모르에 평화유지를 목적으로 파병되어 있다. 4백40명의 병력이 활동하고 있는데 주로 국경선 통제, 치안유지 등을 담당하고 있다. UN이 각 주재국과 맺고 있는 주둔국지위협정의 수준은 한미 간 SOFA 규정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외교부 UN과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UN이 맺은 주둔국지위협정과 한미 간 SOFA와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재판권 같은 경우도 공무중일 때는 UN군에 재판권이 있다”고 밝혔다.
UN 평화유지군 외에 한국이 조약의 주체로서 사상최초로 주둔국지위협정을 맺은 나라는 키르기스스탄(아프가니스탄 북부에 위치해 있는, 옛 소련 연방에 속했던 나라 중 하나). 현재 한국은 미국의 대테러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이곳에서 의료지원단, 수송지원단, 한국군 협조단 등을 운용하고 있다.
이들 부대는 UN이나 미국의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순수 국가예산을 투입해 운용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주둔군지위협정도 한국이 직접 조약 당사국이 됐다.
▲ 한국과 키르기스스탄 간의 주둔군 지위 협정은 올해 초 한국이 먼저 제안각서(사진)를 보내 이루어졌다. | ||
이 협정은 한국이 올해 1월3일 의료지원단 파병을 앞두고 키르기스스탄공화국에 제안각서를 먼저 보내 이루어졌다고 한다. 키르기스스탄은 이 각서를 접수하고 올해 2월26일에 우리측 제안을 수용하는 회답각서를 보내 협정이 맺어졌다. 이 협정은 올해 4월30일자로 발효되었다.
협정 내용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대한민국 요원들에게 대한민국 대사관의 행정 기술직원에게 부여되는 지위와 동등한 지위가 부여된다는 것. 군인의 신분이 아니라 준외교관 신분을 부여한 셈이다.
두 번째는 키르기스스탄은 대한민국 요원에 대한 대한민국 군 당국의 규율적 통제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해서 한국정부가 자국 요원들에 대해서 형사관할권을 가지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
세 번째는 대한민국의 요원의 작위 또는 부작위로 인해서 사고가 발생하거나 손해가 있는 경우에는 대한민국 법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하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조사와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협정 내용은 겉보기에 미국측의 주장처럼 한미간 SOFA협정보다 훨씬 우리에게 유리하게 비쳐지기도 한다. 외교부 조약과 한 관계자는 “우리측 제안각서를 키르기스스탄이 모두 수용했기 때문에 협정은 우리에게 유리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한미 간 SOFA협정과 이 협약과는 차이가 많아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우선 주둔군의 규모로 볼 때도 3만7천 명에 이르는 주한미군과 1백여 명에 불과한 주키르기스스탄 한국군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수도 서울의 심장부에 주둔하면서 끊임없이 대민 사고나 환경오염 사고 등을 일으키고 있는 주한미군의 경우와 키르기스스탄에서 의료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군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는 것.
그런데도 미국측이 “한국도 해외에선 ‘불평등’한 주둔군지위협정을 맺지 않느냐”며 딴죽을 거는 것은 지나친 궤변이라는 지적이다. 외교부 한 관계자는 “한국은 이번에 ‘항구적 자유’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키르기스스탄에 지원단을 파병하였다.
이는 인도적 지원을 위한 것이지 전투 지원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이들의 행동반경도 항구적 자유작전에 한정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한미군과 달리 문제발생 소지가 훨씬 적다. 또한 그 나라 법제와 국내 상황을 충분히 검토해서 맺은 조약이므로 한미간 SOFA 협정과 비교해 우리도 불평등한 조약을 맺고 있다는 논리는 지나친 비약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키르기스스탄이 협정에 일부 불평등한 내용이 있다고 주장하면 그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SOFA 개정문제에 대해 ‘뻣뻣한’ 미국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한편 한국-키르기스스탄 주둔군지위협정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한미 간 SOFA 협정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한국군에 유리하도록 협정이 체결됐다는 것은 외교부도 인정하고 있는 점이다. 이에 대한 한 외교부 관계자의 말에는 한국의 SOFA 개정운동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아무리 나라가 작고 치안이 불안하더라도 주둔군지위협정은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지역이 ‘무법천지’인데 SOFA협정이 왜 필요하냐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나라들도 엄연한 국권이 있다. 약소국의 어려움을 존중하고 평등하게 협약을 맺도록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