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농동 두 아이 사건
예나 지금이나 명절을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부류의 사람들은 뭐니뭐니 해도 철없는 아이들. 특히 두둑한 세뱃돈을 쥘 수 있는 설날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명절이다. 그런 탓인지 설날 사건·사고 목록에는 유난히 아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지난 70년 2월6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일어난 황당한 사건도 그 중 하나. 이날 설을 맞아 어른들께 새배를 마친 남궁연옥씨(가명·여·당시 45)의 아들 김웅석군(가명·당시 10)과 현지양(가명·당시 8)의 지갑은 모처럼 두둑해졌다.
이들 남매가 향한 곳은 동네 문구점. 이곳에서 웅석군은 여동생과 함께 속칭 ‘딱총알’을 구입했다. 원래 딱총알은 화약총의 볼록한 곳에 끼운 뒤 방아쇠를 당겨 터뜨리는 일종의 장난감 화약.
장난기가 발동한 동생 웅석군은 여동생을 꾀어 딱총알 하나씩을 입에 물었다. 이빨로 깨물어 터뜨려 볼 심산이었다. 동시에 힘차게 딱총알을 씹은 이들 남매. 딱총알이 이들 남매의 입 속에서 불꽃을 일으키며 폭발한 건 당연한 일.
결국 웅석군은 윗니 두 개가 부러지고 여동생 현지양은 입술이 터지는 중상을 입었다. 철부지 아이들에게 딱총알을 판매한 문구점 주인은 총포화약류단속법위반 혐의로 쇠고랑을 차야 했다.
▲택시기사보다 순진한 강도
경제가 어렵던 70∼80년대에는 설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범죄에 나서야 했던 사건들이 눈에 띈다.
지난 80년 2월16일 설을 맞아 구속된 임현구씨(가명·당시 34). 이틀 전 그는 설날 고향갈 차비 3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택시 강도를 결심했다. 밤 11시 서울 역삼동에서 유상남씨(가명·당시 27)의 개인택시를 타고가던 임씨는 갑자기 강도로 돌변해 유씨를 협박했다.
마침 영업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탓에 유씨의 지갑엔 달랑 4천원뿐이었다. 유씨는 기지를 발휘해 “가진 돈이 마침 4천원뿐이니 내일 찾아오면 나머지 돈을 주겠다”며 임씨를 설득했다. 다음날 오후 2시, 약속장소인 서울 중랑교 S다방을 찾은 임씨. 하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택시 기사 유씨가 아닌 경찰이었다.
임씨는 경찰에서 “운전사 유씨가 젊은 사람들끼리의 약속이라고 해 철썩같이 믿었는데 세상 인심이 이렇게 각박할 줄 몰랐다”며 되레 세태를 한탄하기도.
지난 79년 1월26일에 벌어진 사건도 씁쓸한 뒷맛을 남겨줬다. 이날 오후 1시께, 서울역에서 벌어진 일. 이틀 뒤로 다가온 설날을 맞아 고향을 찾으려는 귀성객들로 매표 창구는 한창 붐비고 있었다. 이때 정체불명의 40대 사내가 사람들을 밀치고 매표 창구 앞으로 향했다.
눈총을 받으며 매표 창구에 도착한 이 사내는 보란 듯이 1만3천6백원이 든 동전봉지를 들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인파를 뚫고 무사히 도망가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 결국 박씨는 뒤따라온 매표원에 이내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경찰에서 진술한 박씨의 말이 압권이었다. 박씨는 경찰에서 “당뇨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교도소에 가서 보리밥을 먹으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 병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아 일부러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결국 ‘소원대로’ 설날을 맞아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박씨는 활짝 웃으며 구치소로 향했다.
▲살인으로 이어진 새배 거부
설날 벌어진 사소한 부부싸움이 끝내 살인극으로 이어진 사건도 있었다. 지난 80년 서울에서 벌어진 사건. 생모와 떨어져 계모 밑에서 자란 윤일국씨(가명·당시 30)는 2월16일 설날을 맞아 부인 김명숙씨(가명·당시 26)와 말다툼을 벌인 끝에 끝내 부인을 살해했다. 이유인즉 ‘생모에게 새배를 가지 않았다’는 것.
윤씨는 경찰에서 아내 김씨가 평소 시어머니인 윤씨의 계모만 따르고 생모인 박말녀씨(가명·당시 52)를 싫어했다며 “사건 당일인 설날에도 가까운 곳에 사는 생모에게 새배를 가자고 했으나 아내가 끝까지 ‘못 가겠다’고 버텨 화가 나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