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곳곳에 ‘노무현 신드롬’ 이 퍼지고 있다. 인터넷을 활용한 선거전략, 서민적인 친 근함 등 노 당선자의 여러 이미지가 또다른 ‘노풍’이 되어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 ||
정치인 홈페이지 개설 붐, ‘노사모’와 유사한 팬클럽 결성 붐, 상속세 개편 등에 맞춘 무기명채권 가격 급등, 학벌타파를 주제로 한 서적 판매고 급증, 통기타와 민중가요의 ‘제2의 전성시대’ 구가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홈페이지 개설붐]
16대 대선에서 인터넷의 위력이 발휘되면서 정치권뿐 아니라 개인들 사이에서는 인터넷 홈페이지 개설 붐이 일고 있다. 노무현 당선자의 개인 홈페이지가 대선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분석 때문.
정치전문 사이트 e-윈컴의 박관조 기획팀장은 “대선 이후 홈페이지를 개설하겠다는 정치인들의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정치인들의 인터넷 홈페이지 개설 및 개편 주문은 당분간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홈페이지가 없었던 한나라당 조정무 의원도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업체를 선정하는 대로 개설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했다가 선거를 하루 앞둔 12월18일 돌연 사퇴했던 장세동씨도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를 개편했다. 장씨의 측근인 권기진씨는 “젊은 네티즌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수정했다”고 밝혔다.
정치인 가운데 민주당 송훈석 의원과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이 홈페이지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들 의원은 심지어 보좌관을 뽑을 때도 홈페이지 관리 능력을 중시한다고. 그만큼 홈페이지의 위력을 인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학벌 타파 서민열풍]
노무현 당선자가 서민 대통령을 주창한 여파 탓인지 사회 전반에 서민 신드롬이 형성되고 있다. 대선 이후 인터넷 게시판과 노사모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는 “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통령이 되어달라”는 내용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아이디가 ‘갈리아’인 네티즌은 “대통령 유세 당시 시장판 사람들이 돈을 걷어 주며 ‘부디 잘 해달라’고 부탁한 말을 잊지 않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
이런 ‘신드롬’ 때문인지 서점에서도 학벌 타파를 주제로 한 서적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서울대가 없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은 대선 이후 세 배 이상 더 팔려나가고 있다.
▲ 20∼30대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팬클럽 ‘노사모’ | ||
대통령직인수위가 상속·증여세에 관한 완전 포괄주의 과세방침을 밝힌 이후 무기명채권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무기명채권의 경우 상속세를 피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서울 명동 등 사채시장에 따르면 1만3천∼1만4천원에 거래됐던 증권금융채가 대선 이후 1만5천5백∼1만6천원으로 치솟았다.
상속과 증여를 위해 무기명채권을 구입하려는 ‘큰손’들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무기명채권으로 재산을 상속하거나 증여하면 세금이 면제될 뿐만 아니라 자금출처 조사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현재 무기명채권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는 게 사채업자들의 전언이다. 명동의 한 사채업자는 “무기명채권을 사려는 사람들은 줄을 섰지만 매물이 없어 가격만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며, 아는 사람끼리 은밀히 거래되고 있다”고 전했다.
[5060 위기의식]
노무현 당선자의 승리가 20∼30대(2030)의 힘에 의한 것이었다고 판별되면서 보수성향의 50∼60대(5060)는 의기소침해졌다. 50∼60대(5060)는 2030에게 보수주의자, 반개혁론자로 집단 매도당하고 있다. 게다가 50대 중반인 노무현 당선자가 대통령직인수위원에 40대 후반∼50대 초반의 소장파 학자들을 대거 임명하면서 5060은 ‘위기의식’까지 느끼고 있다.
김창원씨(62·자영업)는 “선거가 끝난 뒤 우리 세대가 찬밥신세로 전락한 것 같다”며 “젊은이들의 생각은 이해하지만 우리 세대를 너무 배척하는 분위기가 못마땅하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경기 안양시에 사는 최광규씨(59)는 “이회창 후보 장남이 병역비리의혹을 받았지만, 노 당선자보다 나이도 많고 경륜도 높은 것 같아 이회창 후보를 찍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반된 분위기는 직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50대 중반의 최아무개 이사는 “지난해 월드컵 때까지만 해도 20~30대 직원들과 잘 어울렸는데 대선 때는 나이에 따라 지지하는 후보가 다른 것을 보고 세대차를 절감했다”고 털어놨다.
[정치인 팬클럽 붐]
노무현 당선자의 열성모임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대선에서 중추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와 유사한 팬클럽 결성이 붐을 이루고 있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의 ‘한사모’와 자민련 이인제 총재대행의 ‘이사모’, 민주당 정동영 의원의 ‘정사모’(정동영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도 이같은 모임들.
민주당 이상수 의원 팬클럽인 ‘코이모’(코끼리 이상수와 함께 하는 모임), 김근태 의원의 ‘GT(근태)희망’, 김영환 의원의 ‘김키모’(김영환을 키우는 모임) 등도 눈에 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선 패배 후 정계은퇴를 선언했음에도 팬클럽 ‘창사랑’은 여전히 활동중이다.
정계의 한 관계자는 “노사모의 맹활약 덕분에 노무현씨가 대통령에 당선됐다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 팬클럽이 더욱 활발하게 결성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대선에서 패배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현재 일본에 머물고 있으며, 정몽준 통합21 대표 역시 조만간 미국에 갈 예정이다. | ||
노무현 당선자가 인터넷으로 장관 추천을 받겠다고 밝힌 후 정가에서 회자되고 있는 농담 중 하나가 “장관에 추천됐지요?”이다.
인수위 국민제안센터가 지난 10일부터 25일까지 16일 동안 접수한 추천 인사 건수는 모두 5천5백31건. 이 가운데 인터넷 접수가 4천5백여 건에 달했다. 추천된 인사들은 복수추천을 제외하면 1천7백여 명이나 됐다.
‘장관 후보’로 추천된 인사 가운데 상당수가 정부 산하기관이나 공기업의 기관장으로 앉아 있는 전직 관료이다. 일부 기관에서는 자사 기관장의 입각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에는 ‘아무개 대학 경제학과 교수의 제자들이 인터넷 추천을 했다’ ‘차관 출신 인사의 후배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아무개 대기업의 전직 관료 출신 인사를 다시 입각시키려 한다’ 등의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인터넷 추천 붐은 방송계에서 두드러진다. 노무현 정부 출범을 즈음해서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과 KBS·EBS 사장,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등의 임기가 만료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추천된 KBS사장 후보로는 언론인 S씨와 신문방송학과 K교수 등이 있다. EBS 사장에는 S교수와 B교수 등이 인터넷 추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거물정치인 해외출국]
대선이 끝난 후 ‘거물급 정치인’들의 출국이 잇따르고 있다.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는 지난 15일 일본으로 출국했다. 이 전 총재는 열흘쯤의 일정으로 도쿄와 교토 등 일본 내 명승지를 방문, 휴식을 취할 예정이라고 측근은 전했다.
‘노무현지지 철회 선언’ 이후 칩거중인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도 2월 초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21 관계자는 “정 대표는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문제연구소 초청을 받아 객원연구원으로 머물면서 동북아 정치와 경제·외교·안보 연구에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중가요 다시 인기]
대선 유세기간에 노무현 당선자는 직접 통기타를 들고 민중가요를 부른 일이 있다. 그래서인지 대선 이후 통기타가 젊은층 사이에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80년대 민중가요였던 ‘광야에서’ 등이 다시 술자리나 노래방에서 인기가요 반열에 올랐다. ‘386세대’인 직장인 김철영씨(35)는 “대선 당시 TV에서 통기타를 치고 있는 노무현 후보의 모습을 본 뒤 대학 졸업 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통기타를 다시 잡았다”고 말했다. 또 “노래방에 가서도 마지막 노래로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나 ‘광야에서’ 등과 같은 민중가요를 부르는 친구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