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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량 전 시장이 타인 명의로 임대계약한 분당 의 L아파트 602호. | ||
‘제2의 수서비리’로 불린 이 사건에는 임창열 전 경기지사를 비롯해 다수의 정치권 인사와 정권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의혹이 제기되면서 2002년 중반을 뜨겁게 달궜다. 이 사건은 현재 검찰 수사가 마무리된 상태.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현 정부 7대 의혹’ 중의 하나로 백궁정자지구 사건을 꼽고 있다.
김 전 시장의 신병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는 김 전 시장이, 이 같은 의혹을 풀어줄 유일한 키이기 때문. 그러나 김 전 시장은 이 사건이 터진 이후 지난해 6월 말 시장직에서 퇴임하고 검찰의 소환 명령을 받자마자 잠적해버렸다. 김 전 시장이 공식석상에 마지막 모습을 보인 것은 지난해 6월30일, 그의 퇴임식이었다.
퇴임식을 마친 김 전 시장이 향한 곳은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의 L아파트 602호. 퇴임 보름 전에 타인명의로 임대 계약한 아파트였다. 당시 아파트 계약서를 작성했던 인근 J부동산의 공인중개사는 “49평 넓이의 이 아파트 전세 보증금은 1억6천여만원을 조금 넘었다”라며 “2002년 6월 중순 무렵 김아무개씨 이름으로 계약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아파트 계약자 김씨는 김병량 시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물. 김 전 시장은 아파트 계약을 마친 뒤 곧바로 이사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아파트 관리 장부에는 김 전 시장이 살고 있는 602호의 입주 일자가 ‘2002년 6월20일’로 적혀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였을까. 김 시장의 L아파트 바로 옆 C아파트의 602호에는 백궁정자지구 사건의 중심 인물인 에이치원개발 홍원표 회장이 살고 있었다. 홍 회장은 김 전시장에게 뇌물을 준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 두 아파트는 걸어서 5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떨어져 있다.
그러나 김 전 시장이 L아파트에 머문 것은 짧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 관리인 정아무개씨는 “김 시장님은 퇴임 이후 사흘 정도밖에 이 아파트에 머물지 않았다”며 “시장님이 외국에 나가신다는 얘기를 비서를 통해 들었다”고 말했다.
내년 6월까지 임대 계약을 맺은 김 전 시장의 아파트에는 현재 부인 이씨가 가끔씩 들러서 집안 정리를 하고 있다. 지난 23일 이 아파트에서 만난 부인 이씨는 김 전 시장의 잠적 직전의 모습을 이렇게 전했다.
“퇴임 후 청소년 관련 행사를 참석하기 위해 아파트 문을 막 나서다가 (검찰 소환)소식을 전해들었다. (남편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다른 곳으로 나가셨다.” 그러나 이씨는 그 ‘다른 곳’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말했다. 이씨는 오히려 “지나가는 비슷한 사람만 봐도 혹시 그 양반인가 싶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며 “어디 있는지 내가 묻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김 전 시장의 측근 김씨 역시 “김 전 시장이 강원도에 있다거나 또다른 지방 도시에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지만 나도 연락이 끊긴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전 시장의 아들 민기씨의 얘기는 다르다.
민기씨는 지난 23일 “아버지는 지방의 조용한 곳에서 쉬고 계신다”며 “아버지와 가끔씩 전화 통화를 하고 있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계신 곳에 이따금씩 머물렀다 오신다”고 말했다.
강남의 한 병원에서 신경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민기씨는 “아버지는 당시 검찰이 파크뷰 사건이 아닌 다른 정치적인 이유로 구속할 것으로 생각하신 것 같다. 검찰이 다소 감정적으로 자신을 수사하려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는 “아버지는 뇌물을 받으실 분도 아니다”며 “조만간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실 생각이고 그 시기는 현재의 수사진이 자리를 옮길 것으로 보이는 2~3월 검찰 정기인사 뒤쯤일 것”이라고 전했다.
아들 민기씨의 얘기대로라면 김 전 시장의 행방은 가족들의 행적을 쫓아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왜 김 전 시장을 검거하지 않는 것일까.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수원지검 특수부의 김영종 검사는 “김 전 시장이 머물고 있다는 곳을 여러 차례 급습해봤지만 모두 허탕이었다”고 말했다. 김 검사는 “특수부 수사가 파크뷰 사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우리 방에서 수배를 내린 사람만도 수십 명인데 직원은 네 명뿐”이라며 인력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또 ‘수사진이 교체된 뒤에 나타나겠다’는 김 전 시장측의 의중에 대해서도 “당시 수사는 어느 수사보다도 공정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김 검사는 “수사할 부분은 다했기 때문에 특검을 하더라도 더 나올 것은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김 전 시장은 이 사건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차원에서라도 엄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