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영화의 전부다. ‘슬플 창(愴)에 목숨 수(壽)자’를 쓰는 이름 ‘창수’. 그는 성이 없고 생일은 어린이날인 5월 5일이다. 부모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천애고아인 창수는 부모의 성을 몰라 고아원 원장의 성인 ‘박’ 받아 ‘박창수’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정확한 생일조차 몰라 어린이날인 5월 5일이 그의 생일이다.
이 영화는 철저히 ‘창수의 영화’이며 그 역할을 소화한 ‘임창정의 영화’다. 오랜만에 가수로 컴백한 임창정이지만, 그는 본래 배우이며 앞으로도 배우여야 하는 이유를 이 영화를 통해 제대로 보여줬다. 영화 <창수>는 스토리보다는 철저하게 창수라는 캐릭터에 의해 완성돼 있으며 창수라는 캐릭터는 임창정이라는 배우를 만나 완성됐다.
창수라는 캐릭터가 가운데서 살아나니 동생 상태 역할의 정성화, 미연 역할의 손은서, 악역 도석 역할의 안내상 등도 자연스럽게 살아난다. 특히 피를 나누진 않았지만 같은 고아끼리 형제처럼 지내는 창수와 상태의 짠한 관계는 그 어떤 영화 속 남자들의 의리보다 더 뜨겁다. 짧지만 창수의 삶에 강한 햇살을 비춰주는 미연 역할의 손은서와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악역으로 분한 안내상의 연기도 함께 빛난다.
어찌 보면 이제는 핫한 배우가 아닌 임창정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인 터라 극장가에선 다소 외면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기대감 없이 본 영화 <창수>는 예상을 뛰어 넘는 수작이다. 한국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양아치 캐릭터 가운데 최고라고 손꼽히는 것은 지금까지 <파이란>에서 최민식이 소화한 이강재였다. 그리고 12년의 세월이 흐른 뒤 이강재에 필적할 양아치 캐릭터가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임창정이 연기한 창수다. 영화는 지난 11월 28일 개봉했으며 러닝타임은 104분이다.
인천 차이나타운 인근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양아치 창수,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순박한 청년 창수, 인생의 모토가 비겁함으로 길고 가늘게 오래오래 살겠다는 창수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껏 살아온 모든 인생에서 자기 마음대로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이제 죽는 것만큼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비장한 창수의 다짐이 이 영화의 주제이자 모든 것이다. 창수처럼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진 않을지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세상이라는 커다란 벽에 부딪히고 인생이라는 큰 무게에 시름해봤을 것이다. 시련에 빠지고 좌절하는 그 순간 한 번쯤은 자신이 영화 속 창수 같다고 생각해 본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창수>는 바로 그런 모든 이들을 위한 영화가 아닐까.
@ 줄거리
영화는 창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우선 창수가 누구인지 살펴본다. 창수의 직업은 징역살이 대행업자다. 누군가 죄를 지은 이를 대신해 징역을 살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이 창수의 직업이다. 고아로 자란 창수는 그렇게 내일이 없는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우연히 길을 걷다 만난 미연이라는 여성을 통해 창수는 달라진다. 처음 창수는 미연을 감히 자신이 다가갈 수 없는 여성이라 여기지만 조금씩 미연에게 빠져들면서 거칠던 동네 양아치 창수는 미연을 위해 반지를 사는 순진한 청년이 된다.
그렇지만 반지를 들고 찾아간 집에는 미연의 주검만 남아 있고 피가 흥건해 있다. 조직폭력배 두목의 연인이던 미연은 그렇게 창수와의 짧은 인연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났고 이제 창수는 미연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과 조폭에 동시에 쫓기는 몸이 된다.
더 떨어질 곳이 없다고, 내일이 없다고 여기며 살아온 창수에게 짧은 사랑의 기쁨은 더 큰 비극을 가져다준다. 어쩌겠는가? 슬플 창(愴)에 목숨 수(壽)자를 쓰는 창수의 모질도록 슬픈 목숨을.
@ 배틀M이 추천 ‘초이스 기준’ : 비장한 한 남자와 함께 깊은 슬픔에 빠져들고 싶다면 클릭
영화 <창수>는 기본적으로 슬픈 영화다. 창수가 미연과 잠시 사랑의 기쁨을 나누는 짧은 순간을 제외하면 영화는 내내 어둡고 슬프다. 게다가 임창정의 연기가 너무 리얼한 탓에 관객들은 금세 영화 속 창수가 되고 만다. 창수라는 캐릭터에 몰입돼 그와 함께 잠시 설렌 뒤 오랜 슬픔과 좌절에 빠져들게 되는 것. 창수라는 멋진 캐릭터와 임창정이라는 배우의 완벽한 연기에 빠져들면 104분이라는 러닝타임이 금세 지나가 버릴 정도다. 영화 <파이란>을 좋게 본 분들이라면 적극 추천한다. <파이란>과 비슷한 색채의 영화지만 이야기 전개가 훨씬 빨라 흥미진진하게 관람할 수 있다. 영화 분위기가 어둡긴 매한가지지만 <파이란>보다는 밝은 영화다.
@ 배틀M 추천 ‘다운로드 가격’ : 7000원
극장용으로 제작된 볼거리가 풍성한 영화가 아닌 마큼 집에서 온라인 다운로드나 케이블 TV나 IPTV의 VOD 서비스로 즐겨도 무방한 영화다. 오히려 집중해서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선 극장보다 집에서 혼자 즐기는 것을 더 추천할 만한 영화이기도 하다. 다운로드(VOD) 가격으로 가장 비싼 가격은 보통 1만 원으로 극장 동시 개봉 영화들이 초반에 잠시 이 정도의 가격을 유지한다. 결국 7000 원이 추천 가격이라는 얘긴, 그만큼 강력 추천할 만한 영화라는 얘기다. 다만 영화가 내내 우울한 터라 비 오는 날 홀로 술 마시면서 영화 <창수>를 보는 것은 피할 것을 권한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