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개봉한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스릴러 영화 <블랙스완>과 매우 유사한 이름 때문에, 처음 <화이트스완>이라는 제목을 접하곤 <블랙스완>과 비슷한 영화 내지는 속편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지만 영화 <화이트스완>은 <블랙스완>과 전혀 다른 색깔의 영화다. <블랙스완>이 다소 무겁고 어렵게 다가오는 영화라면 <화이트스완>은 복수를 소재로 한 전형적인 킬링타임용 상업 영화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흑조와 백조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발레리나가 주인공이라는 점 정도다.
지난 2012년에 제작돼 국내에선 2013년 12월 19일에 개봉한 <화이트스완>은 극장 개봉 흥행보다는 부가판권 시장에서의 흥행을 목표로 수입된 영화로 보인다. 인터넷 다운로드와 TV VOD 서비스 등 부가판권 시장에선 유독 재난영화와 복수영화의 흥행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짙다.
이 영화의 감독은 로버트 크롬비와 소피아 스카이아 두 명으로 공동 연출했다. 소피아 스카이아는 사실상 이 영화의 원톱 주인공인 마야 역할을 맡기도 했다. 유명 할리우드 배우 크리스찬 슬레이터가 남자 주인공 마이클 역할을 맡았지만 마야에 비하면 비중은 조연급에 가깝다. 러닝타임은 90분.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복수를 다룬 영화다. 기본적으로 초반 30분은 행복했던 마야의 모습, 중반 30분은 남편이 사망하고 딸이 납치당하는 마야의 위기를, 그리고 마지막 30분은 마야의 복수를 그리고 있다.
초반부와 중반부까지는 매우 완성도 높은 복수극이다. 초반부가 너무 행복한 날들이라 다소 늘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전반적인 이야기 흐름은 빠른 편이다. 별 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본 영화가 예상 로 재미있을 때 더욱 빨려들게 되는데 <화이트스완>이 바로 그런 케이스다.
문제는 복수를 다룬 마지막 30분이다. 복수극에선 가장 중요한 대목인 마지막 30분이 다소 많이 허망하다. 기본적으로 마야는 복수를 위해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하지도 못하며, 추격도 벌이지 못한다. 그나마 탈옥 부분이 대단하게 그려지지만, 이 역시 상당히 손쉽게 이뤄진다. 마지막에 범인 일당과 조우하는 장면 역시 마야가 추격해서가 아니라 너무 허망하게 그들에게 붙잡혔기 때문이다. 결국 러시아 마피아 일행에게 붙잡혀 허름한 창고로 끌려와 딸과 함께 죽을 위기에 놓이는데, 기적적인 격투 액션을 선보이며 나쁜 놈들을 모두 물리치며 복수를 마무리한다. 잔혹하기로 소문난 러시아 마피아가 총을 들고도 맨손의 마야 한 명을 당해내지 못한다. 게다가 마피아 두목과의 한판 승부에선 갑자기 마야의 딸 니나가 검객으로 변신한다.
러시아 마피아를 모두 물리친 뒤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이번에도 손쉽게 마피아를 동원해 마야 가족을 위기에 몰아넣은 진범이 드러난다. 그렇지만 반전이라기엔 진범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인물이라 또 한 번 허망하다.
기대하지 않고 찾은 허름한 레스토랑에서 정식 메뉴를 시켜서 애피타이저와 메인 메뉴까지는 맛있게 잘 먹었는데 후식으로 나온 케이크에서 바퀴벌레를 발견한 느낌이랄까.
이 영화의 기본적인 한계는 주인공의 변화에 있다. 기본적인 복수 영화의 화법은 평범한 주인공이 누군가로 인해 가족을 잃는 등의 상처를 입고 변화의 계기를 거쳐 힘을 키워 복수를 하는 것이다. 무협 영화에 이런 설정이 자주 등장하는데 가족을 잃은 주인공이 절망해서 산속을 헤매다 속세를 떠난 무협 고수를 만나 절대적인 권법을 배워 고수가 돼 복수를 하는 방식이다. 영화 <테이큰> 같은 경우 변화된 복수 영화의 화법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남자 주인공은 첩보기관 출신의 고수다. 이런 복수 영화는 주인공이 고수인 터라 고수가 되는 변화의 계기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본래 고수인 주인공이 범인을 쫓는 과정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 된다.
<화이트스완>의 경우 첫 번째 유형의 복수 영화다. 그렇지만 변화의 계기가 너무 빈약하다. 어린 시절부터 발레만을 하며 지낸 마야는 돈 많은 남성과 결혼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남편의 보호 아래 너무 행복하게 지내던 마야는 남편을 잃은 뒤 음모로 인해 교도소에 수감돼 독방 신세를 지게 되는 데 독방에서 홀로 발레 연습을 한다. 알고 보니 독방에서의 연습은 발레를 격투기로 변환하는 기술을 홀로 연마한 것으로 이로 인해 마야는 연약한 발레리나에서 강렬한 여전사로 변신한다. 그 이후는 천하무적 발레 격투기 고수의 복수극이다. 최소한 교도소에서 누군가를 만나 발레를 격투기 기술로 활용하는 방법 등을 배우는 장면이라도 들어갔어야 이런 변화의 계기가 정당성을 얻을 수 있었겠지만, 그런 부분조차 없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은 연약한 발레리나가 여전사로 변신한 부분이 허탈하게 여겨질 뿐이다.
@ 줄거리
기본적으로 영화 <화이트스완>은 모든 발레리나들의 꿈인 ‘백조’(화이트스완) 역할을 맡은 성공한 발레리나 마야가 여전사로 변신해 가족의 평화를 깬 이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이다.
러시아의 유명 발레리나 마야는 성공한 미국인 사업가 마이클과 결혼해 딸 니나를 낳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그렇지만 러시아에서 크게 성공한 사업가 마이클에 불만을 가진 누군가가 마피아와 연계해 마이클을 살해한다. 그리고 마피아는 마이클이 사망하기 전 해외 계좌에 신탁을 맡겨 놓은 5억 달러 상당의 채권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다. 이 과정에서 마야는 필로폰 불법 소지라는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수감되고 미국으로 도피한 딸 니나는 마파아에게 납치당한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딸까지 납치당한 상황에서 마야는 직접 딸을 구하기 위해 탈옥을 시도하는데….
@ 배틀M이 추천 ‘초이스 기준’ : 킬링타임용 여전사의 복수 액션 영화를 원한다면 클릭
영화 <화이트스완>은 여전사가 등장하는 복수 영화라고 정리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복수 영화로서의 완성도는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그렇지만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마야의 발레 액션은 볼 만하다. 출중한 발레 실력을 격투기 기술로 승화한 감독의 연출력은 매우 돋보인다. 이미 마야의 발레 격투기에 당했던 한 마피아가 동료에게 건넨 “그 여자 조심해 머리 뒤로 발차기를 하거든”이라는 대사가 딱 들어맞는다. ‘푸에테 피벗’(fouette pivot. 제자리에서 한 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다른 다리를 접었다 폈다 반복하며 회전하는 동작)을 활용해 연속 회전 펀치와 킥을 날리는 액션은 매우 창의적이고 위력적으로 보인다.
복수 과정의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액션 연기는 볼 만한 전형적인 킬링타임용 영화로 분류하는 게 적합해 보인다.
@ 배틀M 추천 ‘다운로드 가격’ : 1000원
두고두고 복수 과정이 아쉬운 영화다. 초중반부까지만 놓고 보면 3000~4000원 정도의 다운로드 가격을 매길 수 있지만, 결말 부분이 다소 허망해 영화를 다 본 뒤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때문에 추천 다운로드 가격도 1000원으로 책정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 제휴콘텐츠 가격이 1000원 정도로 떨어지거나, 케이블 영화 채널 등에서 무료로 방영될 때를 기다려 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무 생각 없이 TV를 켰다가 케이블 영화 채널에서 이 영화를 틀어준다면 한 번쯤 볼 만한 영화이긴 하다. 다만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다운로드 받거나 VOD 서비스로 이 영화를 볼 경우 재밌게 보다가 허망한 결말 때문에 본전 생각이 날 수도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