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극장가에서 가장 사랑 받는 장르의 영화는 단연 로맨틱 코미디(로코)다. 좋은 로코 영화가 한 편 개봉해 있는 연말이라면 다행이지만 매년 연말 마음에 드는 로코가 개봉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2013년 연말은 영화팬들에게 행복한 시기였다. 오랜만에 괜찮은 로코 외화인 <어바웃 타임>이 개봉해 꽤 좋은 흥행 성적을 올린 데다 한국 로코 <결혼전야> 역시 좋은 영화였기 때문이다. 비록 <결혼전야>는 <어바웃타임>의 강세에 밀려 120만 명가량의 흥행 성적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그렇지만 크리스마스이브를 기점으로 온라인 다운로드와 TV VOD 등 부가판권 시장에서 서비스를 시작해 나홀로 집에서 로코를 즐기려는 영화팬들에게 큰 선물이 됐다.
이 영화는 결혼이 대한 영화다. 제목은 <결혼전야>지만 영화는 결혼을 앞둔 일주일 동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결혼이라는 게 미혼 남녀에게 늘 꿈꾸는 로맨틱한 환상이며,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부부들에겐 아름다운 추억이지만 실제 결혼식을 준비하는 예비 부부에겐 전쟁 같은 기간이다. 결혼식장 선정, 사회자와 주례 및 축가 섭외, 헤어메이크업과 웨딩 촬영 및 예복 결정, 하객 초대 등의 결혼식 행사 관련 사안부터 상견례로 시작해 예단 예물 혼수 신혼집 등으로 이어지는 양가의 결혼 전반 조율까지 복잡한 과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혼은 유일하게 선택에 의해 가족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이 되는 삶의 구성체는 가족이다. 그런데 당사자에겐 가족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 스스로 부모와 친척을 선택할 수 없으며 2세 역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유일하게 배우자를 결정하는 결혼만 당사자가 스스로 가족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그러다 보니 이 사람과의 결혼이 정말 옳은 결정인지를 두고 엄청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영화 제목처럼 결혼전야까지도 대부분의 예비 신랑신부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영화 <결혼전야>는 바로 이런 복잡하고 고민스러운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다 보니 출연 인물들의 캐릭터와 상황이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갖고 있는 결혼에 대한 고민들은 모두가 현실적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아직 미혼이라면 결혼식을 앞두고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 각각의 고민들을 모두 다 하게 경험할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영화의 마지막은 등장인물들이 행복하게 결혼하는 모습과 거기서 발생하는 감동으로 채워져 있다. 미혼인 당신 역시 그 많은 고민을 해결하고 결혼에 골인한다면 등장인물들이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느끼는 사랑의 감동과 행복을 모두 합쳐 놓은 것, 그 이상을 한 번에 다 누릴 것이다. 그게 바로 결혼이며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다.
금혼식을 준비하는 예비 신랑 역할로 카메오 출연한 중년배우 송재호가 웨딩플래너인 고준희에게 건네는 대사가 결혼에 대한 압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결혼이라는 게 참 이상해. 50년을 살아 왔으면서도 다시 한다고 하니까 걱정도 되고 떨리기도 하고.”
@ 줄거리
이 영화에는 모두 4.5쌍의 결혼을 앞둔 연인이 출연한다. 등장인물이 많은 터라 혼동의 우려가 있어 극중 캐릭터 이름 대신 배우 실명으로 줄거리를 소개한다. 첫 번째 커플은 김강우와 김효진이다. 어린 시절 만나 연인이었던 두 사람은 한 번 헤어지는 아픔을 겪고 몇 년 뒤 다시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했다. 그런데 결혼을 1주일 앞두고 김강우는 헤어져서 지낸 기간 동안 김효진이 결혼했다가 이혼했다는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된다.
두 번째 커플은 연애 7년차를 맞은 옥택연과 이연희다. 이들이 결혼하려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오래 사귀었기 때문이다. 연애 초반의 뜨거운 설렘의 감정을 식었지만 이제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사이인 두 사람은 사랑보다는 우정, 동지애에 가까운 감정으로 결혼을 약속한다.
2.5번째 커플은 주지훈과 이연희다. 네일 아티스트지만 옥택연의 반대로 결혼과 함께 일을 그만 두게 된 이연희는 마지막으로 제주도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출전하고자 한다. 옥택연에겐 친척을 만나러 간다고 속이고 제주도로 간 이연희는 여행가이드 주지훈을 만나 티격태격 대며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는 뜨거운 설렘을 느끼게 된다.
세 번째 커플은 국제 커플인 마동석과 구잘이다. 열여덟 살 연하의 우즈베키스탄 미녀 구잘과 결혼하게 된 순수한 꽃집 노총각 마동석은 모든 게 불안하다. 너무 예쁘고 어린 그녀가 왜 나와 결혼하려는 걸까. 너무나 사랑스러운 어린 신부를 다른 이에게 빼앗기는 것은 아닐까. 이런 불안감은 마동석에게 심인성 발기부전(신체적인 문제는 없지만 스트레스 등 심리적인 이유로 발생하는 발기부전)까지 유발하고 만다.
네 번째 커플은 클럽에서의 짧은 만남이 임신으로 이어지면서 결혼에 이르게 된 이희준과 고준희다. 웨딩 플래너인 고준희는 결혼 전문가지만 본인의 결혼에선 계속 난항에 부딪힌다. 양가의 종교적 차이는 기본, 혼수와 신혼여행 등 결혼 준비 과정 내내 부딪히기만 한다.
이들 4.5커플이 결혼식을 앞두고 일주일 동안 벌이는 다양한 이야기가 <결혼전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떤 커플은 결혼식을 며칠 남겨두고 결혼식을 취소하고, 결혼식 당일에 결혼식을 취소하는 커플도 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4.5커플 모두 제각각의 방식으로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이 영화의 장르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로코이기 때문이다.
@ 배틀M이 추천 ‘초이스 기준’ : 옴니버스 영화와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한다면 클릭!
영화 <결혼전야>는 기본적으로 옴니버스 영화다. 웨딩 플래너인 고준희와 비뇨기과 의사인 김효진, 그리고 쉐프인 옥택연 등을 통해 4.5커플이 묘하게 얽혀 있기는 하지만 각각의 커플이 각자의 스토리에 충실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의 장편 영화 안에 4.5개의 영화가 옴니버스 형태로 얽여 있는 셈이다. 연말 시즌 로코의 레전드가 된 <러브 액츄얼리>나 한국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등을 재밌게 본 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특히 결혼식을 앞둔 예비 신랑신부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비부부들이 가장 힘겨운 부분 가운데 하나는 ‘다른 예비부부들은 모두 별 탈 없이 행복하게 결혼하는 데 왜 우리만 이렇게 힘들까?’라는 고민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예비부부는 결혼준비 과정에서 많이 싸우게 되며 결혼이 깨질 위기도 한두 번은 겪게 된다. 그렇지만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늘 행복하다고 말하고 그런 모습만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 다른 예비부부들도 힘겹게 결혼에 골인하며, 누구나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전쟁 같은 결혼 준비 과정 속에서 잠시나마 힐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영화랄까.
@ 배틀M 추천 ‘다운로드 가격’ : 4000원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좋아하고 짜임새 있는 옴니버스 영화까지 좋아한다면 흔쾌히 제값주고 다운로드 받아도 후회하지 않을 만한 영화다. 출연 배우진도 탄탄하고 욕심 부리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 낸 홍지영 감독의 연출도 돋보인다.
큰 부담 없이 웃으면서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로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뿐 아니라 인륜지대사인 결혼을 소재로 한 영화라 결혼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다는 측면에선 나름 남는 것도 있는 영화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