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감독인 필립 슈톨츨의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주인공은 <월드 인베이젼> <사랑의 레시피> <다크나이트> 등에 출연한 아론 에크하트다. 러닝타임은 100분. 1월 16일 개봉한다.
영어 원제는 <The Expatriate>, 직역하면 ‘추방자’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미 자신의 조국에서 추방당해 벨기에에서 살고 있지만 그곳에서도 추방당할 위기에 몰린 한 남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기에 이런 제목이 붙은 것 같다. 한국 개봉 제목은 <하드 데이>, 위기에 몰린 한 남성이 겪는 힘겨운 날(하드 데이)을 그린 영화이기 때문에 붙은 제목으로 보인다.
영화는 매우 황당한 사건으로 시작된다. ‘할게이트’라는 벨기에 소재 다국적 기업의 첨단보안장치 개발 회사에 다니는 벤 로건(아론 에크하트 분)은 사춘기 딸 에이미(리아나 리베라토 분)와 사사건건 부딪히지만 평화로운 삶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평화로운 삶이 산산조각난다. 회사에 출근한 벤은 사무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동안 월급을 지급받은 은행의 금융기록도 모두 사라졌으며 할게이트 본사에도 자신과 관련된 아무런 정보가 남아 있지 않다. 사무실은 물론 그의 신분도 모두 지워진 것.
이런 상황에서 벤은 더욱 무시무시한 사실을 확인한다. 하루 전까지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대부분 이런 저런 사유로 사망했다는 것. 누군가 전문 킬러가 각종 사고를 위장해 동료들을 모두 살해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딸 역시 전문 킬러의 위협을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벤과 그의 딸 에이미에겐 ‘하드데이’가 시작된다. 과연 벤과 그의 회사에 어떤 일이 생긴 것일까.
대부분의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선 이 정도까지만 보여준다. 하루 전까지의 모든 일상이 없었던 일이 돼버리고 신분까지 지워진 남성과 그의 딸이 살해 위협까지 받고 있다는 설정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중요한 부분은 그 이후다. 이런 미스터리하고 흥미진진한 설정에 어떻게 설득력을 주입할 것인지와 주인공이 위기를 헤쳐 나가는 과정을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느냐에 따라 영화의 완성도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반 설정은 탁월했지만 설득력이 없어 황당하게 끝나는, 그런 용두사미의 영화도 많다. 안타깝게도 <하드데이> 역시 이런 축에 속한다.
딸도 몰랐던 벤의 비밀은 그가 전직 CIA 요원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매우 유능한 스페셜 요원이었다. 영화는 주인공이 전직 CIA 스페셜 요원이라는 설정을 통해 너무 편하게 모든 상황을 해결하려 한다. 전직 첩보원이라 그런 황당한 상황에 얽히게 된 것이며 전직 첩보원 출신이라 손쉽게 복수에도 성공한다는 설정인데, 흥미진진한 초반 설정에 비해 너무 심하게 빈 빈약한 내용 전개다.
주인공 벤의 하루 전까지의 일상이 모두 사라져 버린 기막힌 초반 설정에 설득력을 주입하기 위해 감독은 미국 CIA와 CJA 내부 배신자, 그리고 할게이트 그룹의 무기 불법 밀무역 등을 복잡하게 뒤섞어 놓았다. 그렇지만 사실 설득력이 생기긴커녕 너무 복잡해 영화에 대한 집중력만 떨어뜨리고 있다. 또한 딸까지 납치당하는 위기에 내몰린 주인공 벤이 마지막 10여 분 동안 너무나 손쉽게 딸을 구하고 복수를 하는 과정은 허탈감을 안겨준다.
결과적으로 벤이 전직 CIA 요원이었음을 딸에게 고백할 때까지인 초반부 35분가량은 흥미진진하게 볼 만하지만 그 이후 65분가량은 실망의 연속이다. 다시 말해 영화가 진행될수록 재미가 급속도로 반감되는 영화랄까.
@ 이 영화 볼까 말까?
볼까?
1. 벨기에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추천. 영화 주요 배경이 브루셀을 비롯한 벨기에의 유명 관광지를 중심으로 촬영이 이뤄져 벨기에 관광을 앞둔 이들에겐 최고의 ‘시청각 자료’가 될 수도 있다.
2. 여행이나 출장 등으로 벨기에를 다녀온 뒤 당시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도 추천한다.
3. 영화 자체만 놓고 볼 때는 이 영화를 꼭 봐야 할 이유, 관람을 추천할 이유를 잘 모르겠다.
말까?
1. 주인공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영화를 기대한다면 비추다. 오히려 주인공 벤은 딸 에이미를 보호한다는 핑계로 자신이 의존하는 경향이 짙다. 결국 가장으로서는 매우 찌질한 전직 첩보원이다.
2. 첩보나 액션물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비추한다. 첩보영화와 액션영화의 흉내만 내다 끝난다. 특히 전직 CIA 스페셜 요원이 비로소 복수에 성공하는 마지막 폭탄 액션에선 허탈한 하품만 나온다.
3. 극장보다는 집에서 온라인 다운로드나 TV VOD로 관람하길, 그보다는 조금 더 기다려 케이블 영화 채널에서 공짜로 방영할 때 보길 추천한다. 그나마 같은 시간대 다른 채널에서 재밌어 보이는 영화를 방영해준다면 그냥 그 재밌어 보이는 영화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