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원웅 개혁당 대표와 함께한 유시민 의원. | ||
국회 본회의장 선서식에서의 유시민 의원의 캐주얼 복장에 대한 패션 디자이너들의 반응이다. 다급한 마음에 이유를 되물었다. “그냥 유시민 의원 자체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라는 것이 대부분의 견해. 이유인즉 질문 자체가 패션 그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닌 ‘패션의 정치학’이기 때문이란다.
소위 개혁세력의 대표주자로 상징되는 유 의원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가타부타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단다. ‘치기 어린 행태’라고 하면 개혁세력을 지지하는 적지 않은 네티즌들로부터 ‘수구 꼴통’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 분명하고, ‘격식을 파괴한 통쾌한 반란’이라고 하면 개혁세력에 동참하는 존재로 비쳐질 텐데, 그 어느 쪽도 싫다는 얘기다.
즉, ‘패션의 정치학’에 의해 패션 디자이너들의 의상철학이 왜곡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쯤 되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진행되는 이념의 갈등과 불신의 골이 어느 정도로 깊어졌는지 짐작된다.
비공개를 전제로 할 테니 유 의원의 패션 그 자체만 평가해 달라고 재차 요청했다. 대강의 답변들을 요약하면 “패션에는 T.O.P
(Time·Occasion·Place)가 있다”는 것.
때와 행사내용과 장소에 따라 옷차림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들이다. 파티에는 파티복장이, 장례식에는 장례복장이 있듯이 국회의원도 자신의 집무실 등에서 의정활동을 위한 일을 할 때에는 청바지를 입어도 좋고 반바지를 입어도 좋지만 대국민 선서를 할 때만큼은 국민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 보다 모양이 자연스럽지 않았겠는가 하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몇 해 전 첫 대면 때, 유난히도 반짝이는 눈빛을 가진 유시민 청년은 순수함과 열정에 넘쳤던 기억이 난다. 그의 미소에 살짝 들려지는 입술 끝은 열정을 갈무리하는 여유로움과 관용으로 이해되었다.
독일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는 유 의원은 독일 녹색당의 젊은 개혁파의원들이 청바지와 스웨터를 입고 등원하는 모습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는 유 의원의 패션이 패션 그 자체만으로만 해석되기엔 우리사회의 정치적 코드가 너무도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만약 한나라당 의원이 캐주얼을 입고 선서식에 참여했으면 ‘국민모독죄’로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지도 모르는 복장이 유 의원이기 때문에 기존 구습과 구악의 타파로 비쳐질 수도 있고, 반대로 하필 유 의원이기 때문에 치기 어린 ‘튀어보기’ 등으로 폄하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의 패션을 바라보는 시각이 보수·진보라는 이념대결이나 노무현 정권에 대한 호악에 따라 갈라질 정도로 국민들 간에 골이 깊어졌다는 것은 우려할 일이다.
두 번째, 자신의 견해를 밝혔을 때 받아야 할 언어 폭력이 두려워 디자이너들이 입을 다물 정도라면 우리의 언론환경은 최악에 이른 것이다. 그들은 직업적 견해를 밝히기보다는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귀찮아 입을 다물고 말았다.
유 의원의 해프닝을 그의 말 그대로 ‘열심히 일하고 싶어서’라고 일단 받아들여보자. 그가 다음엔 옷이 아닌, 국가경제와 서민들의 생활고를 진정 고민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길 기대한다.
서령창작(주) 대표이사
청주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