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억 혈세 낭비 ‘사기박사’ 또 치고 빠지려고?
지난 2005년 전자부품연구원 김 아무개 박사가 개발했다고 선보인 SMPD는 거짓 기술로 판명났다. 작은 사진은 C사 SNS계정에 올라온 나노이미지센서칩. 연합뉴스
당시 전품연에서 기술을 개발했다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김 아무개 박사도 처벌을 받기는 했다. 김 박사는 2011년 산기평으로부터 3년간 국가연구 참여를 제한하는 징계를 받았다. 그는 징계 직후 퇴직금을 고스란히 챙겨 연구원을 그만뒀다. 당시 내부에선 지나친 솜방망이 처벌 아니냐는 지적이 나돌았다.
김 박사는 퇴직 직후 S 사라는 벤처기업에 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S 사 법인등기부 이사 명단에는 전직 전품연 소속 연구원이자 김 박사의 절친한 후배로 알려진 박 아무개 씨가 등재돼 있었다. 또한 S 사의 전임 이사진 중에는 김 박사의 부인으로 알려진 정 아무개 씨도 있었다. S 사 홈페이지 상에 SMPD 관련 이미지를 올리고 설명을 붙여넣기도 했다. 전직 산업부 관계자는 “SMPD는 Single molecule photon detector, 이런 식으로 김 박사가 만들어낸 말이다. 업계에서는 오직 김 박사만 쓰던 용어였다”고 말했다.
또한 ‘SMPD를 이용해 새롭게 개발했다’는 SEDNA라는 이미지센서 기술도 홈페이지에 소개됐다. 이 역시 김 박사가 개발한 기술로 알려졌다. S 사는 김 박사의 기술을 통해 여러 가지 사업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일요신문>의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되자 S 사 측이 종적을 감췄다. 지난해 12월 24일 기자가 서울 논현동에 있던 사무실을 찾았을 때는 이미 비워진 상태였고 회사 대표번호 역시 사라졌다. 앞서의 전직 산업부 관계자는 “S 사는 지난해 원전 비리 관련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원전브로커 오 아무개 씨가 만든 컨설팅 회사와 국내 원전 수처리 업체들 간 연결선상에 등장했다”며 “아마 이때부터 청산 수순으로 들어간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의문이 증폭된 가운데 <일요신문>은 김 박사와 관련한 새로운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었다. S 사가 종적을 감췄을 즈음, 서울 가산동에 위치한 C 사에서 김 박사의 나노이미지센서 기술과 관련해 투자자를 끌어 모으고 있다는 제보가 입수된 것. C 사의 SNS 계정에는 이와 관련한 사진자료들이 올라와 있었다. 특히 해당 계정에는 나노이미지센서 기술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담긴 문서가 올라와 있었다.
‘기존 센서보다 감도가 약 500배 이상 뛰어나 1룩스 밝기에서도 물체의 형상과 동작 구분이 가능하다’, ‘이런 기술이 가능한 것은 첨단 나노기술이 접목된 양자역학의 원리 때문’이라는 내용은 과거 김 박사가 해당 기술에 대해 설명했던 것과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또한 이 기술을 이용해 발전시켰다는 SEDNA칩 역시 문서에서 발견됐다. 이뿐 아니라 해당 기술의 사업설명회로 보이는 현장 사진과 사업 과정을 설명하는 상세하게 풀어 쓴 것으로 보이는 화이트보드 사진도 함께 올라와 있었다.
C 사의 홈페이지에는 이와 관련해 또 다른 흔적도 발견됐다. 홈페이지에 ‘가족회사’로 소개된 E 사 법인등기부에는 앞서의 S 사 등기이사진 중 한 명인 미국인 이 아무개 씨가 E 사의 등기이사진에도 등재돼 있었던 것이다. E 사의 법인등기부에 기재된 업종은 S 사의 그것과 유사했다. C 사의 등기부에도 지난해 11월 ‘이미지센서’와 관련해 업종이 새롭게 추가된 바 있다.
익명의 업계 관계자는 “S 사에서 해당 기술로 사업이 여의치 않자, 다른 회사를 통해 투자 유치에 나선 것”이라며 “SMPD는 이미 사기로 판명 났다. 이미 오래전에 기술을 사들였던 플래닛82에 투자했던 많은 투자자들이 수백억 원대 피해를 보지 않았는가.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규명돼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요신문>은 여러 차례 C 사 측에 해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C사 측은 ‘대표가 부재중이다’, ‘대표가 통화를 원치 않는다’는 갖가지 이유를 대며 취재를 피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