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끓는 청춘>은 제목처럼 청춘영화다. 80년대를 살아간 청춘의 이야기로 ‘요즘 연애는 연애도 아니여~~!’라는 카피처럼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춘 남녀보다 더욱 뜨겁게 사랑하며 청춘의 나날을 보낸 80년대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사실 <피끓는 청춘>의 중심은 박보영이 아닌 이종석이다. 홍성농고 전설의 카사노바 ‘중길’로 등장하는 이종석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근 마을 여고생들을 꾀여 낸다. 중길의 접근이 뻔한 카사노바의 작업에 불과하며 넘어가면 상처만 받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공부만 잘하는 모범생부터 소위 논다하는 일진까지 중길의 작업에 백발백중 넘어간다. 심지어 중길에게 차인 뒤 가출을 감행한 여학생도 있다. 그럼에도 중길은 작업에 성공할 때마다 책상 서랍 속 여학생 단체 사진에 표시까지 해가며 동네 여고생들에게 작업을 걸고 있다.
이런 중길을 남몰래 짝사랑하는 여학생 가운데에는 영숙(박보영 분)도 있다. 싸움으로는 그 일대를 평정한 일진인 영숙은 홍성공고 짱 광식(김영광 분)과 전략적 파트너 관계다. 영숙은 소꿉친구 중길을 짝사랑하지만 모든 여자를 마다하지 않는 중길이 유독 영숙에게는 무심하다.
반면 광식은 중길이 싫다. 여동생이 중길에게 차인 뒤 가출했다고 알고 있는 터라 끊임없이 중길을 괴롭히는 광식은 전략적 파트너를 뛰어 넘어 연인 관계가 되고픈 영숙까지 중길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뒤 더욱 심하게 중길을 괴롭힌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에서 전학 온 소희(이세영 분)가 가세한다. 부잣집 딸로 어린 시절 서울로 유학을 떠났던 소희는 몸이 안 좋아 고향으로 내려왔는데 중길이 한 눈에 반하게 된다. 그렇지만 서울 출신답게 100% 성공률을 자랑하는 중길의 수법이 소희에게는 전혀 먹혀들지 않으면서 중길은 애만 태운다.
이렇게 꼬이고 꼬인 청춘 남녀의 애정 전선이 영화 <피끓는 청춘>의 주된 스토리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숨겨진 반전들이 하나 둘 드러난다. 모든 여자 마다 않는 중길이 유독 영숙에게만 작업을 걸지 않는 이유부터 그런 중길을 영숙이 짝사랑하는 이유까지, 또 소희가 갑자기 서울에서 고향 충청도로 전학을 왔으며 중길의 작업에 미동도 하지 않았던 이유 등이 드러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청춘 남녀의 애정 전선에서 80년대를 살아간 평범한 가족들의 힘겨운 일상으로 이야기의 폭을 넓혀 간다.
기본적으로 재밌는 청춘 영화이긴 하지만 어딘지 산만하고 전개가 더디다. 이런 저런 소소한 웃음거리는 많지만 줄거리의 진행이 너무 더디다 보니 웃고 있으면서도 지루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부분은 연출을 맡은 이연우 감독의 전작 <거북이 달린다>(2009)와 다소 비슷하다. 연쇄살인범과 경찰의 이야기를 다룬 <거북이 달린다> 역시 큰 틀에선 재밌는 영화지만 다소 산만하고 이야기 전개가 더딘 영화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연우 감독만의 스타일로 보인다.
그나마 <거북이 달린다>는 경찰이 연쇄살인범을 체포한다는 명확한 결말이 있기 때문에 산만하고 더딘 스토리가 결론에 이르러서는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맛이 있다. 그렇지만 <피끓는 청춘>는 후반부에 이르러 숨겨진 각각의 사연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면서 이야기를 더욱 산만하게 만든다. <피끓는 청춘> 기자시사회가 끝난 뒤 영화사 측은 기자들에게 다양한 영화 후반부 반전들은 기사화하지 말아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그렇지만 공식 요청한 반전들이 너무 많다. 최고의 반전이 돋보이는 영화 <식스센스>처럼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다’는 결정적 사안 하나가 반전으로 숨겨져 있어야 영화는 빛이 난다. <피끓는 청춘>은 소소한 반전을 너무 여러 개 숨겨 놓고 있는 터라 영화가 결말에 이르러 이야기가 더욱 산만해지고 말았다.
또한 ‘서울 전학생’ 이세영 때문인지 <아홉살 인생>의 냄새도 살살 풍긴다. 아홉 살 초등학생들의 연애를 그린 <아홉살 인생> 역시 시골 초등학생들의 이야기인데 예쁜 서울 전학생이 전학 오면서 벌어지는 3각 관계가 이야기의 큰 틀이다. 두 영화에서 이세영은 모두 서울 전학생 역할을 맡았다. 이연우 감독이 <아홉살 인생>의 대본을 쓴 이만희 작가의 제자인 탓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아홉살 인생>보다 <피끓는 청춘>이 더 코믹하긴 하지만 완성도는 크게 떨어지는 편이다. 아무래도 <피끓는 청춘>이 방송가에서 시작된 복고 열풍을 스크린에서 이어가기는 조금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 이 영화 볼까 말까?
볼까?
1. ‘대세’ 이종석을 좋아하는 여성 팬이라면 관람을 추천한다. 여자라면 넘어갈 수밖에 없는 카사노바 중길의 작업을 보고 있노라면 왜 그가 요즘 대세인지 알 수 있다.
2. 80년대 충청도의 모습을 다시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도 추천한다. 80년대 충청도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다양한 디테일로 그 당시를 제대로 복원해 놨다.
3. 영화 <거북이 달린다>를 재밌게 봤다면 이 영화도 추천한다. <거북이 달린다>에서 경험한 이연우 감독 특유의 느릿한 스토리 전개가 좋았다면 <피끓는 청춘> 역시 재밌게 볼 수 있다.
말까?
1. 전형적인 청춘 하이틴 영화를 기대한다면 비추다. 줄거리 라인은 분명 하이틴 영화이며 전체적인 분위기 역시 그렇다. 그렇지만 전형적인 하이틴 영화와 달리 이야기 전개가 다소 느릿느릿하며 스토리도 다소 산만하다.
2. 80년대의 정서를 다시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는 비추다. 80년대 당시의 비주얼은 상당히 잘 복원돼 있지만 당시 청춘들의 정서를 잘 살렸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80년대 교복을 입은 요즘 고교생들의 이야기 같다.
3. 밝고 경쾌한 영화를 원한다면 비추다. 중길의 작업이 중심인 중반부까지는 분명 밝고 경쾌한 영화지만 후반부에 이르면 비장미가 느껴지는 영화가 된다. 반전에 해당되는 등장인물들의 숨겨진 사연들은 대부분 80년대 초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한국 사회 상황에 맞춰져 있다. 경제적으로 낙후한 80년대 초 충청도 시골 마을, 그것도 인문계가 아닌 농고와 공고 고교생의 이야기라는 기본 전제에 너무 기대가는 영화라는 느낌이 농후하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