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위권도 출렁… 한진 밖으로 KT 안으로
서울 서초구 서초동 KT 올레캠퍼스 전경. KT가 한진을 대신해 재계순위 10위권 안으로 진입할 전망이다. 구윤성 기자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STX와 동양그룹은 올해 재계 순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듯하다. 특히 재계 13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던 STX의 몰락은 2010년대 초반 재계의 가장 큰 사건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STX는 2005년 재계 26위로 진입, 불과 3년 만인 2008년 15위까지 뛰어올랐다. 2007년 세계 최대 크루즈선 건조사인 아커야즈(STX유럽)를 인수하면서 자산이 확 늘어난 덕분이다. 이후 13위까지 올라 자리를 계속 지킨 STX지만 그 영화는 지난해 끝났다. 재계 30위권에서 핵심 계열사들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지난해 이미 48위로 추락한 웅진 역시 올해 재계 순위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20위권의 동부, 현대그룹 등 지난해 강도 높은 자구안을 내놓은 기업집단 역시 자산 기준 재계 순위에서 하락이 불가피하다. 동부는 김준기 회장이 끝까지 지키고 싶어 했던 동부하이텍을 비롯해 일부 계열사와 보유 자산을 매각키로 결정한 상태며 현대그룹은 현대증권을 포함해 금융계열사를 전부 매각할 방침이다. 재계 순위 15위권부터는 자산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아 1조~2조 원 차이로 순위가 마구 뒤바뀔 수 있다.
자산을 매각하는 기업이 있다면 반대로 자산을 늘리는 기업도 있는 법. 이들은 M&A나 지분 투자 등의 방식으로 자산을 늘려 재무구조개선 작업으로 신음하는 20위권 밖 기업들의 사정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로 4대그룹을 중심으로 한 상위권 기업들이다.
상위권 기업이 M&A를 통해 자산도 늘리고 실적 면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011년 현대차의 현대건설 인수, 2011년 말 SK의 하이닉스(현 SK하이닉스) 인수, 2012년 롯데의 하이마트(현 롯데하이마트) 인수 등이 대표적이다. 현대차가 인수할 당시 현대건설 자산은 약 11조 원이었으며 재계 순위도 23위나 됐다. 하이닉스 역시 SK가 인수하기 직전까지 자산 16조 원에 재계 순위는 17위였다. 이보다는 작지만 하이마트의 자산은 약 2조 7000억 원이었다.
건설·부동산 경기 침체기에서 건설업체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현대건설만은 현대차 인수 후 오히려 더 좋은 실적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현대건설의 영업이익은 7600억 원이었으며 지난해는 8500억~9000억 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금호산업, 쌍용건설 등 건설업체들이 잇달아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큰 성과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직접 최근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어려운 여건에서도 건설이 잘했다”는 말을 종종 한다고 전해질 정도다.
총수 부재 상황에서도 SK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SK하이닉스 덕에 한편에서 웃음을 짓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매출액 약 14조 원, 영업이익은 무려 3조 2000억여 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SK 인수 후 처음으로 임직원들에게 두둑한 보너스도 지급할 예정이다. 롯데하이마트도 롯데에 ‘꿩 먹고 알 먹는’ 효자 계열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모양새다.
사실 자산 총액으로 따지는 재계 순위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너는 물론 임직원 입장에서도 의전과 자존심 차원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대기업 관계자들은 종종 ‘재계 순위 몇 위’라며 다른 기업과 비교하기 거북해 하거나 일부러 선을 긋기도 한다. 수조 원에 달하는 계열사 매각 후 ‘재계 순위’의 근거가 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집단 지정 현황’에서 빠진 한 대기업 관계자는 푸념조로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나름대로 웬만한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자부심도 있었고 사람들의 시선과 조명도 자주 받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중소기업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 오히려 편할 때도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딱히 이름난 계열사가 없어 회사를 내세우기 쑥스러워졌다. 연봉보다 명예 때문에 회사를 옮기려는 직원도 적지 않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