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 | ||
<일요신문>은 지난 3월2일자(563호)에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 재산은닉 의혹’을 보도한 바 있다. 당시 나 전 회장측은 “은닉 재산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보도가 나간 이후 전 거평그룹 직원의 진정서가 청와대와 국세청 등에 접수됐다. 기사 보도와 함께 진정서가 접수되자 청와대 비서실에선 검찰에 진상확인을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서울지검 금융조사부에서는 수사에 돌입했다. 또한 국세청에서도 자체적으로 진상 파악에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이처럼 관계 당국에서 나 전 회장 재산 은닉 의혹에 대한 수사에 들어가자 거평그룹 채권단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98년 5월 부도난 거평그룹 나승렬 전 회장의 장녀 윤주씨(29)와 장남 영돈씨(27) 등이 현 시세로 4백50억여원에 달하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요신문>은 보도했다.
윤주씨는 서울 구로동 611번지 일대 땅(2천4백31평) 지분의 90%를 소유하고 있으며, 현재 이곳에 지하 4층 지상 12층 규모의 빌딩을 짓고 있다. 또 동생인 영돈씨는 서울 후암동 101번지 62호 땅(2천5백8평) 지분의 90%를 보유, 아파트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경기도 성남시 금곡동 165번지(4백71평)와 금곡동 170번지(6백97평) 땅 지분 80%를 갖고 있으며, 이곳에 오피스텔을 짓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근거로 나승렬 전 회장의 은닉 재산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당시 윤주씨는 “부친(나 전 회장)으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은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보도 이후 나 전 회장측에선 관련 자료를 제시하며 “나승렬 전 거평 회장은 수백억원의 재산을 은닉하거나 이를 자녀들(윤주씨와 영돈씨)에게 증여한 사실이 없다”라고 밝혔다.
▲ 위쪽부터 장녀 윤주씨의 서울 구로동 땅, 장남 영돈씨의 서울 후암동 땅, 역시 영돈씨의 성남 금곡동 땅. 세 곳 모두 아파트 등 건물신축공사가 진행중이다. | ||
그러나 보도 이후 청와대 국민참여수석실과 국세청 등에서는 ‘나 전 회장의 재산 은닉 의혹’에 대한 진상 파악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기관에서 사실 확인 작업에 들어간 결정적 계기는 보도 이후 접수된 한 통의 ‘진정서’ 때문.
진정서를 작성한 사람은 거평그룹에서 15년 동안 근무했던 김아무개씨(56). 김씨는 지난 3월 중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자신이 작성한 진정서와 <일요신문> 기사 사본 등을 접수시켰다.
민정수석실에서는 다시 국민참여수석실로 김씨의 진정서 등을 이첩했다. 국민참여수석실에선 지난 4월 중순 대검찰청으로 진정서 등을 보냈다. 대검에선 다시 지난 5월 초 서울지검 금융조사부로 관련 자료들을 넘겼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참여수석실 관계자는 “검찰에 (나승렬 전 회장의) 비리가 있는지 확인해보라고 지시했다”며 “본격적인 수사 착수 여부는 검찰의 판단에 맡겼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지검 금융조사부에선 ‘진정서’를 작성한 김씨를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하려 했으나 난관에 부딪쳤다. 지난해 초 폐암 진단을 받은 진정인 김씨는 지난 4월24일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으나 지난 25일 오전 10시께 사망했다.
금융조사부 관계자는 “대검에서 이첩된 진정서만으로는 내용이 부족해 진정인에게 검찰 출두를 요청했다”며 “하지만 진정인이 뇌출혈로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가족들의 얘기를 듣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진정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검찰은 “지금으로선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이번 진정 사건은 법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 중이어서 구체적인 수사 과정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는 원칙적인 입장만 밝혔다. 진정인 김씨의 사망은 검찰의 수사 속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국세청에서도 자체적인 진상파악에 나섰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관계자는 “현재 나승렬 전 회장의 재산 은닉 의혹과 관련해 자체 조사중이다”며 “나 전 회장이 그동안 세금 신고를 제대로 했는지부터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사가 언제 끝날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사망한 진정인 김씨는 지난 4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내 진정서가 국세청에 접수된 것을 알게 된 나 전 회장측 관계자가 국세청에 다녀왔다”고 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조사4국 관계자는 “그쪽(나 전 회장) 직원이 온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관계당국이 수사에 나서자 채권단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채권단에 속한 조흥은행 관계자는 “나승렬 전 회장 자녀들의 부동산 매입 자금 출처가 어딘지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며 “만약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나 전 회장의 은닉 재산으로 밝혀진다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