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재산이 29만원이 전부”라는 말로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민적 지탄을 한몸에 받게 되자, 연희동 이웃인 노 전 대통령측도 덩달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약 5백50여억원 정도의 남은 추징금 문제가 전씨의 파문으로 인해 새삼 불거지기 시작한 때문이다. 애써 전씨와의 차별화를 강조하지만 최근 노씨의 표정 또한 어둡다는 전언.
사위 최태원 (주)SK 회장의 구속과 함께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에 대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 탓에 바깥 출입도 부쩍 줄었다고 한다.
‘연희동’에 다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연희동은 연희3거리를 중심으로 1·2·3동으로 나뉘어진다. 남서쪽은 노씨의 사저가 있는 연희1동, 북서쪽은 전 전씨의 사저가 있는 연희2동이며, 그 맞은편인 동쪽에는 연세대학교 캠퍼스가 3동에 자리잡고 있다.
이 같은 연희동의 지형 형태는 많은 상징성을 띠기도 했다. 횡으로 난 길 하나를 사이에 둔 두 전직 대통령의 미묘한 신경전. 또한 퇴임 이후 5·18 진상규명, 대통령 비자금 문제 등이 불거질 때마다 종으로 난 길 하나를 대치하고 한총련 등 대학생들이 1·2동 쪽으로의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다시 ‘연희2동’의 불똥이 ‘연희1동’으로 옮겨 붙었다. 전씨의 ‘추징금 안 내고 버티기’가 여론의 도마위에 오르면서 덩달아 노씨의 바깥출입이 눈에 띄게 뜸해졌다.
언론에서 전씨의 추징금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실과 바늘처럼 노씨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의 외출은 고향인 대구를 한 차례 방문했던 것. 하지만 이도 주변 소문없이 조용히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 지난 2월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나란히 자리한 노 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 | ||
징수율 79%로 전씨(14%)에 비하면 상당히 ‘모범’적인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에게도 5백50여억원의 미납액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녀, 전씨와 함께 싸잡아 ‘돈 안 내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대접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한 연희1동의 불만은 상당하다.
특히 얼마전 한 신문이 ‘전·노, 추징금 반도 안 냈다’는 제목의 보도를 한 것에 대해 크게 못마땅해했다는 후문이다.
이 보도는 두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과 완납 및 미납금을 합산해서 뭉뚱그려 제목을 단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하면 노씨도 추징금을 반도 안낸 것처럼 국민들에게 비칠 수 있다는 것이 연희1동측의 우려인 셈이다.
노씨의 측근인 김유후 전 청와대 사정수석은 “현재 재판에 계류중인 나라종금과 쌍용, 한보 등의 국고환수 판결만 나오면 100% 완납이 끝난다”고 밝혔다.
그는 “한보만 해도 6백억원이 넘는다. 그 이자만 해도 얼마인가. 완납하고도 남는다. 안 내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빨리 내고 싶지만 재판을 기다리는 것이다”라며 연희2동과의 엄연한 차별성을 강조했다.
본인 명의의 재산이 없는 전씨에 비하면, 노씨의 경우 비자금을 각 기업에 분산배치한 관계로 국가 환수가 비교적 용이했다. 노씨는 97년 판결 직후 신한은행 등 3개 은행의 예금 1천3백29억여원과 현금 4백14억원을 바로 추징당했다.
2001년 2월에는 나라종금에 차명예탁된 2백48억5천여만원이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환수됐고, 이어 2001년 7월과 2003년 1월에 걸쳐 나라종금에 은닉해둔 비자금의 일부 배당금을 환수한 바 있다. 2001년 10월에는 동생 재우씨에게 맡겨진 돈 중 70억원의 추가 환수를 판결하기도 했다.
검찰에서 확인한 결과 노씨 징수금에 대해서는 현재 쌍용 김석원 전 회장에게 맡겼다는 2백억원과 한보 정태수 전 회장에게 빌려준 5백90억원 등의 내용이 계속 재판에 남아 있는 상태. 노씨측에서 “사실상 우리는 추징금에 대한 징수 책임이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연희1동은 연희2동의 몸살에 따른 후유증을 함께 앓고 있다. 연희동의 한 주민은 “항상 전씨에서 노씨로 이어져 왔던 두 양반의 인연은 참으로 끈질기고도 모질기만 하다”고 한마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