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성실하게 살아왔다면, 그래서 좋은 직장에서 성실하게 근무하고 있으며 가족들에게도 믿음직한 구성원이라면, 바로 당신이 월터다.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선 성실하고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 자체도 쉽지 않겠지만 사실 이런 삶은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무료한 삶이기도 하다.
누구나 일상을 벗어나 특별한 뭔가를 해보고 싶지만 잠시 딴 데로 눈을 돌렸다가는 지금의 평범한 삶이 위협받을 수 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당신의 삶에서 특별한 순간은 언제였나?’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성실하게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곧 특별한 순간들을 포기하고 지낸다는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의 '월터'가 그런 것처럼.
해본 것도, 가본 곳도, 특별한 일도 없는 월터. 그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월터에게 유일하게 특별한 순간은 바로 ‘상상’이다. 상상 속에서 월터는 늘 특별하다. SF영화 속 히어로가 돼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고 로맨틱한 사랑에 빠지기도 하며 극지를 모험하기도 한다. 때론 직장 상사에게 시원하게 한방을 날려 버리기도 한다. 아마도 당신 역시 이런 상상들로 삶을 버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영화의 제목은 <월터의 상상>이 아닌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다. 이런 제목과 예고편, 그리고 스틸 사진 등을 통해 이 영화를 주인공이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특수 능력을 가진 판타지 무비로 생각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지금 내가 남태평양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은 미녀들과 함께 있다고 상상하면 정말로 그곳으로 가게 되는 특수 능력을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 말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판타지 무비가 아닌 철저히 리얼리티에 기초하고 있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극사실주의 영화다.
그렇지만 영화에서 월터의 상상은 분명 현실이 된다. 이를 위해 먼저 월터는 성실하고 평범한 일상과 멀어지게 된다. 그의 의지와는 달리 사상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위기에 빠진 이들은 절망의 나락에 빠져든다. 그렇지만 우리의 월터는 그런 위기를 겪으며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기적적인 나날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고 월터가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거나 하진 않는다. 회사를 쫓겨나 비루한 실직자가 되는 상황은 변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더 이상 상상에 기댄 채 평범한 척 성실한 척 살아가진 않는다. 사회적 지위와 명성과는 별개로 월터 개인이 내적으로 성장하고 또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월터의 기막힌 스토리가 담긴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보는 재미는 물론이고 관객들에게 조금이나마 삶의 변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9.11 테러를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다룬 영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과 유사한 점이 많다. 월터는 이 영화의 주인공 오스카 쉘(토마스 혼 분)처럼 중요한 뭔가를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상상을 현실로 바꾼다. 그렇지만 두 영화의 주인공이 결국 찾아낸 성과물 자체는 다소 허무하다. 그렇지만 그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두 주인공은 성장하고 풍성해진다.
이 과정에서 멋진 대사가 하나 나온다. “정말 멋진 순간에는 나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냥 머물 뿐이다.” 아마도 성실하게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는 그런 멋진 순간이 찾아오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뭔가를 하려고 급해지겠지만,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낸 누군가는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그 순간에 머물려고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바로 이것이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원동력 아닐까.
@ 줄거리
자신의 꿈은 접어둔 채 16년째 <라이프> 잡지사에서 포토 에디터로 일하고 있는 월터 미티(벤 스틸러 분). 그는 성실하고 평범하게 살아온 직장인이다. 그렇지만 미팅 주선 사이트 프로필의 ‘특별한 경험’ 란에는 아무 것도 쓸게 없다. 해본 것 없고 가본 곳 없고, 그래서 특별한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일은 엉뚱한 데서 시작된다. 그의 직장 <라이프> 지가 다른 회사에 인수 합병된다. 새로운 경영진은 <라이프> 지면 잡지를 폐간하고 온라인 매체로 재창간한다고 발표한다. 부서가 축소되면서 일부 직원의 정리해고가 임박한 상황에서 월터는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을지 걱정이다. 어렵게 같은 회사에서 마음에 드는 여직원을 만나 가까워지고 싶지만 그와 같은 회사를 다닐 수 있는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
게다가 세계 각지를 다니며 활동하는 전설의 사진기자 숀 오코넬(숀 펜 분)이 <라이프> 지면 잡지 마지막 호의 표지 사진을 보내왔지만 월터가 받은 필름에는 유독 그 사진만 빠져 있다. 오랜 기간 몸담았던 <라이프>의 마지막 호가 될 기념비적인 잡지 표지가 위기에 처하면서 월터의 직장 생활도 위태로워진다. 필름을 찾지 못하면 월터 역시 정리해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월터는 숀을 찾아 떠난다. 전세계 오지를 떠돌며 사진 작업을 하는 숀을 찾기 위해 월터 역시 세계 각지의 오지를 뛰어 다니게 된다. 그렇게 상상이 하나 둘 현실이 되면서 월터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특별한 순간들을 맞이하기 시작한다.
@ 배틀M이 추천 ‘초이스 기준’ : 무료한 삶에 지쳐 뭔가 일탈을 꿈꾸는 이라면 클릭
이 세상의 월터들에게 강력 추천할 만한 영화다. 성실하게 평범한 하루하루를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월터를 만나 무료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보는 게 어떨까.
이 영화는 비록 직장인의 이야기지만 성장 영화의 틀을 갖추고 있다. 분명 월터는 사회 생활을 영유하는 다 큰 어른이지만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내적인 성장을 일궈낸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성인인 관객들 역시 뭔가 내적으로 성장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어른들을 위한 성장영화라는 부분에서도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는 영화다.
@ 배틀M 추천 ‘다운로드 가격’ : 5000원
스토리와 캐릭터, 그리고 벤 스틸러의 연기가 조화를 이루며 좋은 영화로 완성됐다. 얼마 전 영화 전문 기자 서너 명과 가진 사적인 자리에서 지난 몇 달 사이 기자시사회에서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재밌었던 영화에 대해 잡담을 나눴는데 그 자리에서도 가장 좋았던 영화로 <월터의 상상을 현실이 된다>가 언급됐을 정도다. 바로 당신처럼 평범한 누구나가 주인공 월터일 수 있다는 부분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며 당신이 하지 못한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일은 월터가 대신 해준다는 부분에선 대리만족도 크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