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터무니없는 생각일 수 있다.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인 데다 전쟁 영웅은 어린 아이다. 아니 이제 10살 정도밖에 안 된 어린 아이에게 말 그대로 ‘빡쎈’ 군사 훈련일 시키고 왕따까지 조장하며 경쟁심을 유발한다. 전쟁을 컴퓨터 시뮬레이션 게임 정도로 여기는 어린 아이들을 활용해 외계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설정의 영화에서 평화라는 메시지를 떠올리다니, 정말 어이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기자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선 영화의 줄거리부터 살펴본다. 영화는 외계 종족 ‘포믹’의 지구 공격으로 시작된다. 수천만 명이 사망했을 만큼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지구는 한 명의 영웅이 펼친 뛰어난 활약과 희생으로 포믹을 물리친다.
그리고 5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언제 포믹이 또 공격해올 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구는 철저한 전쟁 준비에 돌입한다. 포믹과의 전쟁에 대비해 지구가 마련한 우주함대가 전쟁 준비를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지구를 지켜 낼 지휘관을 키워내는 것이 우주함대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된다.
이를 위해 우주함대는 어린 아이들을 징병한다. 뛰어난 지능과 천재적 전략을 지난 어린 아이들을 선발해 최고의 지휘관으로 키워내기 위해서다. 영화는 최고의 지휘관은 경험이 많은 어른보다는 어린 아이가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영화 마지막 반전에서 이런 발상이 결국은 어린 아이들의 순수함을 악용하려는 어른들의 술책에 불과했음이 드러난다.
여하튼 이런 과정을 거쳐 선발된 이가 바로 엔더(아사 버터필드 분)다. 폭력적인 형과 감성적인 누나를 절반씩 닮은 엔더는 최고의 지휘관이 될 자질을 충분히 갖췄다. 엔더는 우주함대로 선발돼 전투교육과 지휘교육을 거치며 고속 승진을 거듭해 지휘관이 된다. 가족과 떨어져서 지내야 하는 외로움, 냉혹한 경쟁 과정에서의 갈등, 그리고 엄격한 군사 훈련을 이겨내며 엔더는 최고의 지휘관이 된다.
우주함대는 50년째 휴전 중인 포믹을 선제공격할 계획을 세운다. 언제 다시 지구를 공격할 지 모르는 포믹에 대한 최선의 방어는 곧 선제공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략과 전술에는 능하지만 전쟁 상대인 포믹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점이 두려운 엔더는 포믹을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어른인 군 고위층은 이런 엔더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최고의 지휘관으로 인정받기 위한 마지막 시뮬레이션 전투가 시작된다.
영화 <엔더스 무비>의 첫 번째 화두는 전쟁의 정당성이다. 전쟁은 시점에 따라 누군가를 침략해서 벌이는 침략 전쟁과 침략 당한 국가가 방어를 위해 벌이는 방어 전쟁으로 구분된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이 일본 입장에선 침략 전쟁이고 조선 입장에선 방어 전쟁이다. 일반적으로 침략 전쟁은 부당하고 방어 전쟁은 정당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영화 속 지구 우주함대처럼 방어를 위한 침략 전쟁은 정당한 것일까. 적어도 엔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록 지구를 침략해 수천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포믹이지만 50년 동안 전쟁을 벌이지 않고 있는 포믹의 생각은 무엇일까. 행여 이제는 휴전하고 평화로운 공존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 엔더는 이런 갈등에 휘말리지만 복수와 승리에 눈이 먼 어른들은 이런 엔더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두 번째 화두는 어린 아이를 활용한 전쟁이 정당한가라는 물음이다. 물론 현실에선 정당하지 않다. 미성년자를 군에 징병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며 인권 탄압이다. 그렇지만 과거 전쟁에서 학도병처럼 미성년자들이 전쟁에 나선 사례는 많다. 그들의 희생정신은 높게 평가 받고 있을 정도다. 영화 <엔더스 게임>의 우주함대는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에서 어린 아이들을 군인으로 징병하는 것은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아이들은 평화라는 개념과 전쟁이라는 개념의 공존에 대한 갈등이 적다. 내가 쏜 총으로 적군이 죽는다는 부분에 대한 고뇌는 거의 없고 전쟁을 하나의 컴퓨터 게임처럼 집중할 수 있다. 이런 부분이 우주함대가 어린 아이들을 지휘관으로 선발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우주함대의 생각은 적중했고 결국 지구는 포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 물론 엔더는 그 승리를 이끈 지구의 영웅이 된다.
그렇지만 전쟁이 모두 끝난 뒤 평화에 대한 개념은 엇갈린다. 어른들은 승리 자체에 기뻐한다. 이젠 포믹의 침략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으며 포믹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지구인 수천만 명의 복수를 했다는 데 만족해한다.
당연히 그들 기준에서 엔더는 지구를 구한 영웅이다. 그렇지만 정작 엔더는 자신의 행동, 지구를 구한 승리에 충격 받아 기절한다. 지구가 만들어낸 전쟁영웅이자 전쟁병기인 엔더는 포믹과의 공존을 통한 평화를 꿈꿨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는 포믹을 멸망시킨 살인마가 돼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승전의 기쁨에 빠져 있는 동안 괴로워하던 엔더는 홀로 우주여행을 떠난다. 아직도 살생을 통한 전쟁이 가져다 준 평화보다는 공존을 통한 평화를 꿈꾸는 엔더는 스스로 그 일을 해내기 위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 자체가 현실을 잘 모르는 어린 아이이기에 가능한 이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영화 <엔더스 게임>이 던지는 메시지 역시 우주전쟁에서의 승리가 아닌 바로 공존을 통한 평화를 꿈꾸는 엔더의 이상 아닐까.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