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하던 두 좌장 맞잡은 손 의미는…
2월 26일 이재오 의원 출판기념회에서 축사를 한 서청원 의원이 이 의원의 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이 의원이 제안하는 개헌안은 분권형 대통령제. 국무총리를 기존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신 국회에서 선출하는 것이 골자다. 이렇게 뽑힌 총리는 행정부 수반이자 대통령 대신 국무회의 의장으로서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사실상 내치를 국무총리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여당 지도부에서는 개헌 이슈가 국회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당 지도부에서 개헌은 시기상조라고 거듭 말하고 있고 여당 의원 대다수가 개헌보다 경제 활성화를 우선시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취임 2년차를 맞아 ‘통일 담론’을 꺼내든 이유로 국회의 개헌 논의를 저지하기 위한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친박계 전략통은 “통일이 되면 어차피 전체적으로 헌법을 고쳐야 하는데 이번에 개헌한 뒤 재차 수정하면 사회 혼란을 가중시키고 번거로움만 더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26일 출판기념회장에 모인 인사들은 개헌론 자체보다는 새누리당 대권·당권주자들이 어떤 말을 쏟아내는지 더 관심을 기울였다. 개헌에 관해 시기상조 입장을 보였던 여당 주자들은 이날 앞 다퉈 유연한 입장을 표명하며 친이계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에게 구애를 보내는 진풍경을 연출한 것이다.
최고 관심사는 서청원 의원이었다. 서청원·이재오 두 의원은 중앙대학교 선·후배 사이로 가깝게 지냈지만 지난 2007년 대선 경선을 기점으로 각각 친박과 친이로 갈렸다. 서 의원이 지난해 10월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개헌 문제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언론에 노출하며 여전히 소원한 상태로 알려져 있다.
앞서의 친박계 전략통은 “사실 두 사람은 2007년 이전, 이미 2002년 대선 이후부터 사이가 틀어졌다. 이듬해 서청원 의원이 전당대회에 나섰지만 이재오 의원이 당시 최병렬 후보를 당 대표로 지지했기 때문”이라며 “이후 서 의원이 이명박 정부에서 구속되면서 더 소원한 사이가 됐다. 서 의원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 의원과 자주 접촉하며 관계회복을 시도했었다”고 귀띔했다.
이날 두 사람은 유달리 친분을 강조하면서 출판기념회장은 중앙대 동문회장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첫 번째 축사자로 나선 서 의원은 “여러분 내가 무슨 이야기 할지 궁금하실 것”이라고 운을 떼며 이렇게 말했다.
출판기념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정몽준 의원. 이종현 기자
이에 대한 이재오 의원의 화답은 이랬다.
“(서 의원과 본회의장) 옆자리 앉아서 매일 속닥거리는데, 바깥에서는 그렇게(싸우는 것처럼) 보이느냐. 친이와 친박이 나뉘었던 그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나라를 위해 어떻게 의견을 하나로 모아 정권을 성공하게 할지 고민할 때다. 내가 가끔 쓴소리를 하지만 잘 새겨들어야 한다. 반대 의견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바로 서청원 선배다. 서청원 선배와 잘 상의해 반드시 개헌안을 이뤄서 나라의 틀을 바꿔 나가겠다.”
정작 서청원 의원을 비롯한 차기 당권주자들은 개헌론에 적극적인 공감을 표하지는 않았다. 서 의원은 축사에서 “(책 내용이) 20년 넘은 대한민국 대통령제가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좋다. 그러나 금년은 타이밍이 아니다. 지금은 우선 경제를 살리고 내년부터는 논의하자, 내가 이렇게 말했었다”는 과거 자신의 주장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김무성 의원도 “이재오 의원이 나라를 위해 산전수전 겪으며 이것저것 다 경험해보니 (개헌이) 꼭 필요하겠다, 이렇게 생각하신 것 같다”라면서도 “시기조절만 조금 해주시면 저도 따라가겠다”고 단서를 달았다.
반면 또 다른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이인제 의원은 “사실 제가 이 의원보다 먼저 개헌을 주장한 사람이다. 문민정부 당시 YS(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권력 구조를 좀 바꿔야 하겠습니다. 외교·안보·국방·통일은 대통령이 맡고 내치는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돼서 맡고, 이리 권력을 나눕시다.’ 이렇게 말하니 YS가 ‘개헌 그거 힘들데이, 쉽지 않은 일이야’라고 해서 못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이재오 의원이 개헌이라는 가마솥에 불을 때고 있다. 저도 장작이 돼 열심히 돕겠다. 여론이 모이면 대통령도 나서실 것”이라고 적극 동참 의사를 밝혔다.
한편 이날 오전 서울시장 출마선언 소식이 알려진 정몽준 의원 역시 축사에 동참했다. 정 의원은 “헌법에 관심을 갖는 것은 국회의원의 당연한 책무”라며 개헌에 힘을 싣는 동시에 “제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는데, 그때 내 역할은 당내 이재오 의원과 같은 훌륭한 분들이 불편함 없이 (박근혜 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대선 때처럼 산업화 세력이 민주화 세력과 다시 진심으로 마음을 합쳐야 하지 않겠느냐”며 은연중 친박계에 대한 경계심을 내비쳤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재오 의원은 서울 같은 지역구에서 5선을 한 유일한 현역 의원이다. 수도권 조직력도 막강한 만큼 정몽준 의원에게 꼭 필요한 인물”이라면서도 “다만 당내 구도상 이재오 의원은 다음 대선에 직접 나서지 않는다면 결국 김문수 지사를 밀게 될 것이다. 이들과 다음 대권을 경쟁하게 될 정 의원이 비박계로 완전히 방향을 트는 것은 장기적으로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진단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