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그냥 모르고 지냈으면 좋았겠다 싶은 것들이 있다. 아니 알아도 그냥 모른 채 살아갔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요즘 20~40대가 어린 시절 TV를 통해 보면서 자란 애니메이션의 상당수가 일본 작품이라는 것, 어린 시절 지구를 지키는 영웅으로 알고 지낸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사실은 일본의 영웅이라는 것.
<독수리 오형제> 역시 그렇다. 한국에선 1호만 독수리일 뿐 2호부터는 콘돌, 백조, 제비, 부엉이 등이니 ‘조류 오형제’라느니, 3호는 여성이니 ‘조류 오남매’라느니 제목을 두고도 말들이 많은 이 영화의 원래 이름은 <독수리 오형제>가 아닌 <과학닌자대 갓차맨(Gatchaman)>이다. 일본 원제는 <ガッチャマン>이고 영어 제목이 이다. 러닝타임은 110분.
갓차맨의 ‘갓차’는 영어 ‘got you’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말로 직역하면 ‘잘났다’ 정도이니 한국 제목은 <과학닌자대 잘난맨> 정도 되는데, ‘닌자’라는 단어나 ‘잘난맨’라는 표현이 어색해 한국에선 <독수리 오형제>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일본에서 1972년부터 방영돼 큰 인기를 얻었으며 국내에서도 1979년~1980년, 1990년과 1996년, 2004년과 2009년에 걸쳐 방영됐다. 물론 한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린 애니메이션이다.
원작 애니메이션 제작사 타츠노코 프로덕션 50주년을 맞이해 실사판으로 제작된 <독수리 오형제>는 820억 원이라는 일본 역사상 최고의 제작비가 투자됐다. 따라서 어린이를 위한 영화라기 보단 성인 관객층을 겨냥한 블록버스터 영화로 분류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실사판 영화 <독수리 오형제>는 ‘어린이들도 유치하다고 안 볼만한 수준이다. 게다가 노골적인 극우화가 진행 중인 일본의 요즘 상황을 감안하면 뭔가 의도가 있어서 역대 최대 제작비를 들여 이런 영화를 만든 게 아닌가 싶은 의혹까지 들 정도다.
마치 할리우드의 '팍스 아메리카나'처럼 이 영화는 일본의 ‘팍스 재패니즈’를 보여준다. 갤럭터라 불리는 전세계의 적이 등장해 지구는 최대의 위기에 직면한다. 갤럭터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신성한 돌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적합자들이 유일한 지구의 희망인데 특수 훈련을 받은 적합자들이 바로 갓차맨, 우리 개념으로 독수리 오형제다.
이 가운데 1호 켄(마츠자카 토리 분)과 2호 조(아야노 고)는 본래 유럽에서 적합자 훈련을 받고 유럽에서 활동하던 갓차맨들이다. 둘은 어린 시절 적합자로 판명돼 함께 훈련을 받은 친구 사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모두 유럽인이 아닌 일본인이다.
전세계 유력 도시들이 대부분 갤럭터에게 점령됐지만 일본은 아직 무사한 상황이라 도쿄에서 대책 회의가 열리고 도쿄에서 활동하는 독수리 오형제가 전세계의 유일한 희망이다. 그리고 결국은 일본인 다섯 명으로 구성된 독수리 오형제가 갤럭터의 ‘라스트 수어사이드’ 작전으로부터 지구를 구한다.
물론 일본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원작을 실사화한 만큼 등장인물이 모두 일본인인 것은 당연한 한계다. 사실 전세계를 위기에 몰아넣은 갤럭터 군단의 대장 ‘베르크 캇체’ 역시 일본인이다.
이런 측면에서 일본인이 전세계를 구한다는 ‘팍스 재패니즈’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군국주의적인 요소가 강조된 영화라는 점이 요즘 일본의 우경화 정세와 맞물려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무조건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1호 켄의 모습, 그런 켄에게 반발하면서도 리더의 말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다른 갓차맨들의 모습은 가미카제로 대변되는 일본 군국주의를 연상케 한다. 게다가 갤럭터의 마지막 작전명 역시 가미카제를 연상케 하는 ‘라스트 수어사이드(최후의 자살)’다.
이 영화를 보며 ‘상명하복이 확실한 현대판 닌자들로 뭉친 일본군이 재건돼 전 세계 평화를 지켜야 한다’가 이 영화의 주제처럼 받아들여졌다면, 너무 편견을 가지고 이 영화를 본 것일까. 아직 많이 부족한 기자는 이런 편견으로 인해 <독수리 오형제>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아동이 아닌 성인들을 위한 실사 영화인 터라 원작에 없는 부분을 추가해 성인 관객들의 취향에 맞추려고 애쓴 부분도 있다. 특히 원작에 없던 나오미(하츠네 에리코 분)를 등장시켜 켄, 조와 삼각관계를 형성해 갈등 구조를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해 현실성보다는 캐릭터만 강조된 부분은 다소 아쉽다. 예를 들어 갤럭터의 움직이는 요새에 독수리 오형제가 침투하지만 이들을 막아서는 갤릭터 군사는 10여 명뿐이다. 이들을 물리치자 곧 주요 악당 장교급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악당 두목인 베르크 캇체까지 단 한 명의 호위병 없이 직접 싸움에 동참한다.
결국 갤릭터의 본부에 해당되는 움직이는 요새에 고작 10여 명의 병사와 두세 명의 장교급 캐릭터와 두목만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데, 이는 주인공과 악당 캐릭터의 대결이 중시되는 애니메이션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벌어진 한계로 보인다.
@ 줄거리
2015년 강력한 쉴드라는 붉은 빛으로 무장해 지구인의 무기로는 공격이 불가능한 갤럭터라는 강력한 지구의 적이 출현한다. 이로 인해 전 세계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몇 년 사이 지구 대부분이 갤릭터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결국 인류는 제한된 지역에서만 생존을 허락받은 채 멸망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갤럭터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신비의 돌’을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적합자들뿐이다. 지구는 적합자들을 찾아내 특수 교육을 시켜 갓챠맨으로 만들어 전투에 투입시키는데 도쿄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바로 갓차맨, 우리 개념으로 ‘독수리 오형제’다.
본래 4명의 요원이 도쿄에서 활동 중인데 유럽에서 온 2호 조가 합류하면서 5인조가 된다. 사실 조는 1호 켄과 함께 유럽에서 활동했었다. 그렇지만 켄과 조가 모두 사랑했던 나오미가 명령을 어기고 단독 행동을 하던 켄을 구하려다 갤럭터의 공격으로 사망하고 만다. 그것도 하필이면 조가 나오미에게 프러포즈를 한 직후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 일로 인해 켄은 유럽을 떠나 도쿄로 왔고 몇 년 뒤 조도 일본으로 와 한 팀에서 합류한다. 당연히 켄과 조는 껄끄러운 사이다. 자신이 명령을 어긴 탓에 나오미가 죽었다며 자책한 켄은 무조건 명령에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 대원들과의 마찰이 잦다.
켄을 짝사랑하는 3호 준(고리키 아야메 분)과 4호 진페이(하마다 타츠오미 분)는 남매 사이로 어린 시절 부모가 갤럭터에게 죽음 뒤 갓차맨이 됐다. 그리고 5호 류(스즈키 료헤이 분)는 별다른 이유 없이 적합자라는 이유로 징집돼 갓차맨이 됐다.
갤럭터가 ‘라스트 수어사이드’라는 작전에 돌입하면서 지구는 멸망 위기에 내몰린다. 이런 상황에서 갤럭터 1인자인 베르크 캇체에 밀린 2인자 이리야가 라스트 수어사이드 작전의 전모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지구 망명 의사를 밝혀온다. 이리야는 바로 나오미를 죽인 장본인으로 켄과 조에게는 반드시 복수해야 할 대상이다. 그렇지만 독수리 오형제는 이리야를 보호해야 하는 명령을 받고 이로 인해 켄과 조는 대립하는데….
@ 배틀M이 추천 ‘초이스 기준’ : 일본의 극우화를 동의할 만큼 일본 마니아라면 클릭
뭐 그리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물론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 가운데 실사화된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캐릭터와 캐릭터 고유의 무기 정도를 제외하면 원작 애니메이션과 다른 부분이 많은 데다 우경화 돼 가는 일본의 정세를 투영돼 있는 성향도 짙어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따라서 일본 마니아 가운데서도 일본의 극우화에 동의하는 이들에게만 극도로 제한적으로 추천한다.
@ 배틀M 추천 ‘다운로드 가격’ : 0 원
아동물과 성인물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 강한 영화다.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 <독수리 오형제>의 추억이라도 되살려 주는 최소한의 효과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따라 하다가 이도 저도 아닌 영화가 되고 말았다. 굳이 요금을 지불하면서까지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