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참에 A씨는 지난 5월 초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고양시에 있는 한 모텔에 투숙하게 됐다. 목이 탄 그는 음료수 주문을 하기 위해 객실에 있는 전화기를 들다가, 문득 수화기에 닥지닥지 붙어 있던 조각광고에 눈길이 멈췄다.
손가락 크기 만한 조각광고에는 ‘○○ 다방’ ‘×× 다방’ 등 이름도 모르는 다방 8곳의 전화번호가 실려 있었다. 평소 인근지역 다방은 안 가본 곳이 없는 A씨였지만, 조각광고에 실린 다방 이름은 낯설었다.
A씨는 술김에 “여기 싱싱한 아가씨 하나만 보내 줘”라고 하곤 전화를 끊었다. 짙은 화장의 아가씨 한 명이 객실 안으로 들어온 건 그 얼마 후.
찬찬히 아가씨의 얼굴을 뜯어보던 A씨는 화들짝 놀랐다. “네가 여기에 웬일이야?” 술김이긴 했지만 A씨 방으로 온 아가씨는 분명 S다방 여종업원인 B양임을 알 수 있었다.
약간은 실망한 A씨가 B양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그녀는 빙긋 웃으며 “이 모텔 전화기 판에 붙어 있는 다방 전화번호는 모두 자신이 일하고 있는 S다방으로 연결돼 있다”고 전해주었다.
이상은 최근 등장한 ‘네트워크 티켓다방’을 경험한 사람의 에피소드. 속칭 ‘티켓다방’은 일부 지역 소재 다방에서 불법적으로 성행하는 매춘 행위. 이 업태가 등장한 것은 지난 90년대 초 무렵이다. 그 후 티켓다방은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번지다가 사회문제로 비화돼 경찰의 집중단속이라는 철퇴를 맞으면서 잠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런 티켓다방이 최근 ‘네트워크 티켓다방’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 업태는 포주가 거점 다방 한 곳을 중심으로 인근에 새끼다방(업주는 거점 다방 운영자가 대부분)을 여러 곳 개설한 뒤 다방을 찾는 손님들을 유혹, 거점 다방으로 연결시켜 매춘을 한다는 것이다.
‘네트워크형 티켓다방’은 변칙적인 불법 매춘이라는 점에서 기존 티켓다방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모텔 등 숙박시설과 연계해 한층 발전된 형태로 영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경기 고양경찰서가 이 지역 모텔 및 여관 30여 곳과 거점 다방을 연결해 불법 매춘업을 하던 전양숙씨(가명·여·49)를 구속 수사하는 과정에서 네트워크 티켓다방의 영업방식이 처음 드러났다.
전씨는 광고를 부착한 직통 전화 4백여 대를 인근 모텔과 여관에 무료로 설치해준 뒤 투숙 고객이 전화를 해오면 여종업원을 보내 윤락행위를 시킨 혐의로 지난 7월17일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업주 전씨는 1천만원 이상의 선불금을 주고 데려온 여종업원 10여명에게 윤락행위를 시킨 뒤 10만∼20만원의 화대를 받아 대부분 가로채는 등 지난 99년부터 모두 10억여원을 가로챈 혐의(윤락행위방지법 위반 등)다.
전씨는 또 다방에 CCTV 2대를 설치해 여종업원들을 감시하며 지각, 흡연, 결근을 하면 벌금 명목으로 1만∼20만원씩을 뜯어오기도 했다는 것.
경찰에 따르면 S다방을 운영해 오던 전씨는 최근 자신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S다방 외에도 8곳의 유령 다방의 전화번호를 더 등록했다. 아가씨들에게 티켓영업을 통해 윤락을 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일종의 편법이었다.
이후 전씨는 이 유령다방들의 전화번호가 표시된 전화기 4백여 대를 주문제작해 S다방 인근의 여관과 모텔에 무료로 제공했다. 물론 이 전화기에 부착된 광고 속 전화번호는 각기 다르지만 상호 연결서비스를 통해 모두 S다방으로 연결되게 조작돼 있었다.
여관이나 모텔로서는 어차피 객실에 기본적으로 설치해야 할 전화기를 무료로 제공받는 셈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다방업주 전씨와 모텔, 여관 업주간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
결국 새로운 아가씨와의 ‘짜릿한 만남’을 원해 여관이나 모텔을 찾아간 손님들은 업주 전씨가 구축해 놓은 ‘티켓다방 네트워크’ 안에 갖혀 매번 S다방의 아가씨만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전씨는 아가씨들이 도망가면 되레 선불금 사기 등의 혐의로 아가씨들을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혐의로 검거된 전씨는 경찰에서 “보다 많은 손님들을 끌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며 선처를 부탁했지만 결국 윤락행위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쇠고랑을 차고 말았다.
한편 경찰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이와 유사한 매춘업이 본격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고양경찰서 관계자는 “전씨와 같은 식으로 영업한다면 앞으로는 티켓다방도 실제 업소 없이 전화번호만 갖고 영업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다방 등의 장소를 마련하지 않고도 전화를 통해 고객과 아가씨를 연결해주는 매춘업을 할 수 있다는 얘기. 고양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관계자는 “네트워크 티켓다방과 비슷한 거점 다방을 통한 매춘업이 수도권 지역에 상당히 퍼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이런 형태의 업태가 확산될 경우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이들이 불법 윤락행위를 하더라도 단속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