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사실은 직원뿐 아니라 사장마저도 “치마를 허벅지까지 올려라” “옆에 누워봐라” 등의 음담패설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부 간부의 경우 아예 노골적으로 “속궁합을 맞춰보자”고 음란한 제의를 하기도 했다.
최씨는 성희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중되면서 위출혈, 편두통과 같은 신경성 질환을 몸에 달고 살았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는 위에 있는 내용물이 식도로 역류하는 역류성 식도염까지 앓아 1개월 동안 병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남자 직원들의 성희롱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싫은 내색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기업의 경우 여직원이 많아 도움을 청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사정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씨는 할 수 없이 노동부 고용평등상담실에 도움을 요청했다.
직장내 성희롱이 사회문제로 등장한 지 꽤 오래 됐다. 그동안 여성단체의 노력으로 직장내 성희롱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상을 뜯어보면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최근 직장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는 여직원들의 상담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나 수직 상승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적이다. <일요신문>이 노동부에서 입수한 ‘직장 여성들의 성희롱 피해 사례’를 보면 성희롱 건수뿐 아니라 수위도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대다수 직장 남성들은 아직도 ‘친근함의 표시와 성희롱’의 애매모호한 기준에 대해 답답함을 표시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직장내 성희롱의 피해자가 여성에게 국한돼 있다는 인식도 크게 바뀌어야 할 형편이다. 전체 남성의 30% 정도가 ‘남성들도 직장내 동성이나 이성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직장내 성희롱 관련 신고 건수는 72건. 전년도의 48건에 비해 무려 50% 정도 늘어났다. 성희롱 관련 상담건수도 1천3백40건에서 1천8백45건으로 37.7% 증가했다. 문제는 용기를 내서 성희롱 사실을 신고해도 회사측으로부터 또다른 보복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결국 여성이 피해를 본다는 점.
▲ 직장상사에 의한 성희롱이 지난해에 비해 50% 정도 늘어나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없음. | ||
서울의 정보통신업체에 근무하는 김아무개씨(27)의 경우가 이 같은 대표적인 케이스. 김씨는 우연히 회사 건물의 여자 화장실에서 몰래 카메라를 발견했다. 알고 보니 문제의 몰카는 같은 회사 서아무개 과장이 설치해놓은 것. 서 과장은 몰카를 설치해놓고 여직원들의 치맛속이나 용변 보는 모습을 몰래 훔쳐봤을 뿐 아니라 이를 컴퓨터에 저장해놓기까지 했다.
그러나 회사측은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했다. 김씨가 문제의 과장을 경찰에 고소하려고 하자 오히려 “직장 상사한테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며 만류하고 나섰던 것. 김씨는 결국 여성 관련 상담소의 도움을 받아 서 과장을 경찰에 고소했고, 문제의 과장은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서울의 한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이아무개씨(26)는 회사측의 어이없는 실수로 인해 가해자로부터 협박에 시달린 경우. 직장 상사인 배아무개씨의 성추행 사실을 회사에 알리고 징계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탄원서가 가해자에게 유출됐기 때문이다. 이씨는 당시 직장 상사가 징계를 받고 다른 지점으로 옮길 때까지 수시로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는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센터 서민자 상담부장은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으로 인해 성희롱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문제제기 수준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회사쪽의 인식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가해자로 몰리는 직장남성들의 항변도 만만치 않다. ‘어디까지가 숲이고 어디서부터가 늪인지’ 좀처럼 분간이 가질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
현재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성희롱 여부를 판단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이를 당하는 사람이 느끼는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만이 기준이 된다. 그리고 이 감정의 판단 여부는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사람으로써 느낄 수 있는 감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만 가지고 봤을 땐 성희롱에 대한 시비거리가 끊임없이 양산될 소지가 충분하다는 게 직장 남성들의 의견. “오히려 일부 여직원들의 경우 사소한 농담까지 꼬투리를 잡기도 한다”는 불만도 극에 달해 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 근무한다는 김아무개씨(36)는 “얼마전 아무런 생각없이 ‘인사 좀 하라’며 여직원의 엉덩이를 신문으로 툭 건드린 것이 화근이 되어 ‘성희롱으로 고발하겠다’고 날뛰는 바람에 기겁을 했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여직원을 목석으로 보는 훈련을 따로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토로했다.
노동부측도 이 같은 남성들의 불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분위기이다. 노동부 고용정책국 정언숙 감독관은 “성희롱에 대한 기준이 애매한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상대방 여성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줄 수 있을 만한 행동만 문제 삼기 때문에 지금까지 큰 문제는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석 프리랜서 zeus@newsbank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