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끊고 역비행’ 조종실선 무슨 일이…
지난 3월 8일 발생한 말레이시아 항공 MH370편의 실종 사고로 온 세계가 떠들썩하다. 0시 41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정상적으로 이륙했던 비행기가 이륙 두 시간 만인 오전 2시 40분경 말 그대로 공중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더욱 이상한 것은 비행기가 마지막으로 레이더에 포착된 지점이다. 다름이 아니라 규정 항로에서 550㎞가량 벗어난 엉뚱한 곳에서 사라졌던 것. 닷새가 지나도록 비행기 잔해와 시신이 발견되지 않자 곧 이런저런 추측과 음모론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외계인 납치나 블랙홀 등 초자연적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 말레이시아 당국은 비행기가 납치된 것으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납치 동기와 납치된 장소를 밝히지 못 해 의문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과연 비행기는 공중에서 어디로 사라진 걸까. 왜 비행기 잔해와 시신은 발견되지 않고 있는 걸까. 말레이시아 항공 실종 사고를 둘러싼 여러 가지 가설들을 살펴봤다.
3월 8일 발생한 말레이시아 항공 MH370편의 실종 사고를 둘러싸고 온갖 추측과 음모론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말레이시아공항 모습. AP/연합뉴스
지난 8일 오전 1시 22분. 베이징으로 향하던 말레이시아 항공 MH370편 여객기가 마지막으로 관제소와 교신한 시각이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연락이 두절됐던 비행기는 오전 2시 40분경 말라카 해협 북부의 풀라우페락섬 인근에서 마지막으로 레이더에 포착됐다. 그리고 그것이 승객 222명과 승무원 12명을 태운 이 비행기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현재 사고 조사팀은 무엇보다도 블랙박스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태. 비행경로와 사고 당시의 비행 속도, 고도, 엔진 상태, 관제소와의 교신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는 블랙박스를 해독해야지만 미스터리가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전파 탐지기로 블랙박스를 추적할 수 있는 시간이 블랙박스의 USB 배터리 수명인 30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행기가 바닷속으로 추락했을 경우에는 더더욱 어렵기 마련.
이번 사고를 둘러싼 의문점은 첫째, 대체 왜 비행기가 항로를 이탈해 한 시간 넘게 엉뚱한 곳을 향해 역비행했는지 둘째, 왜 갑자기 공중에서 사라졌는지 셋째, 왜 조난 항공기 위치 송신기(ELT)와 항공기 운항정보 교신 장치(ACARS) 등 무선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는지 넷째, 왜 조종사는 구조 신호를 보내지 않았는지 등이다.
현재 이런 의문점들을 바탕으로 세울 수 있는 가설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가장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테러범 소행이다. 탑승객 가운데 이란 청년 두 명이 위조 여권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한때 폭탄 테러의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곧 테러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란 청년들은 테러범이라기보다는 독일로 정치적 망명을 시도하려 했던 밀입국자들로 추정됐던 것. 존 앤드류스 필리핀 민간항공국(CAAP) 총국장은 “항공기의 공중 폭발은 지극히 희박한 경우다. 그런 일은 실제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만일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비행기 잔해가 발견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공중에서 폭발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만에 하나 테러범 소행이라고 가정할 경우에도 왜 조종사는 구조 신호를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점도 의문으로 남는다. 이에 혹시 비행기가 ‘공중 납치’된 것은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관제소와 교신할 수 있는 무선 응답기가 꺼져 있었던 것이 혹시 누군가의 협박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에도 승무원들이 납치를 의심케 하는 어떠한 구조 신호도 송출하지 않았다는 점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는다.
그렇다면 혹시 기체 결함에 의한 사고는 아니었을까. 조종사가 갑자기 방향을 바꿨던 것은 비상 착륙을 시도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비행기가 바다 위에 무사히 비상 착륙한 후 해저로 가라앉았기 때문에 잔해가 발견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여기에도 의문은 남는다. 왜 조종사와 승무원들이 비행기가 가라앉기 전까지 구조신호를 송출하지 않았냐는 점이다. 해당 기종인 보잉 777은 엔진이 꺼진 상태에서도 160㎞ 이상 비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시간은 충분했다.
기상 악화 및 기체 결함에 따른 사고 가능성도 대두됐다. 하지만 비행 당시 날씨는 상당히 양호했으며, 말레이시아 항공 관계자는 “사고 발생 10일 전에 마지막으로 안전점검을 실시했었다.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라고 말했다.
부기장의 과거 부적절한 행동 역시 논란이 됐다. 한 호주 여성이 지난 2011년 부기장인 파리크 압둘 하미드의 초대를 받아 조종실에서 한 시간가량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호주 일간 데일리텔레그래프는 12일 말레이시아 항공 여객기 부기장인 파리크 압둘 하미드가 3년 전 여객기를 조종할 당시 만났던 금발의 여성 승객들과 다정한 포즈를 취한 사진을 게재했다.
수색 작업이 난항을 겪자 엉뚱한 주장도 속속 제기됐다. 말레이시아 야당 의원인 모하마드 니자르가 “베트남 해상에 버뮤다 삼각지대가 있다”라고 주장한 것은 그나마 그럴 듯하다. 심지어 외계인에 의해 어디론가 납치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고 발생 후에도 한동안 실종자의 휴대전화 전원이 켜져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실제 비록 전화를 받지는 않았지만 신호음은 계속 울렸으며, 한동안 중국의 메신저 서비스인 ‘QQ’에도 실종자들이 계속 접속인 상태로 떠있었다.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북한이 비행기를 납치해 평양으로 이송했다는 것이다. 비행기에는 평양까지 날아갈 만큼 충분한 연료가 있었으며, 평양도 휴대전화 수신 범위에 충분히 포함된다는 것이다.
‘370’ 숫자의 저주라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미 비행기 사고는 예정되어 있었다고 말하는 한 누리꾼은 다음과 같은 기막힌 우연이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말레이시아 항공 370편은 현지시간으로 3월 7일 3700㎞를 비행할 예정이었다. 마지막으로 관제소와 교신이 이뤄졌을 때 비행 고도는 3만 7000피트였다. 이란인이 위조했던 여권의 실제 주인인 루이지 마랄디의 나이는 37세다. 말레이시아 항공은 매일 약 3만 7000명의 승객을 운송하는 아시아 최대 항공사다. 사고 발생일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정확히 37개월 째 접어드는 날이었다. 후쿠시마 위도는 37.4도이며, 당시 원전 사고로 처음 실종됐던 사람은 37명이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추측 가운데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조종사 자살설’이다. 존 앤드류스 CAAP 총국장은 ‘비행기가 사라지기 전까지 조종사들이 어떠한 구조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는 점에 무게를 실었다. 비행기가 3만 5000피트 상공에서 급강하할 경우, 구조 신호를 보낼 충분한 시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무선 교신장치의 전원이 꺼져 있었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관제소에서 비행기의 위치와 고도를 추적할 수 있는 이 장치를 끌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바로 기장이다. 이 말인즉슨, 기장이 의도적으로 전원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조종사 자살설에도 여전히 의문은 있다. 만일 자살을 시도했던 것이라면 왜 굳이 한 시간이나 항로를 이탈해서 비행했을까 하는 점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조종사의 자살 시도로 여객기가 추락한 사고는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더러 있었다. 항공사고 집계 사이트인 ASN에 따르면, 1976년 이래 조종사 자살로 인한 여객기 사고는 여덟 건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해 발생했던 모잠비크 항공 TM-470의 추락 사건이 있었으며, 당시 사고로 승객 27명과 승무원 6명이 사망했었다. 또한 1999년 탑승객 217명 전원이 사망했던 이집트 항공 990편 추락사고 역시 조종사의 자살이 원인인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매우 드문 경우긴 하지만 조종사들이 비행기를 몰고 자살을 시도하는 이유는 대개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기 승무원들의 정신건강 검진은 주기적으로 매우 엄격하게 실시되고 있는 것이 사실. 미연방항공청(FAA)의 경우, 기장들은 6개월마다 한 번씩, 그리고 부기장들은 1년에 한 번씩 건강 검진을 받도록 되어 있으며,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심각한 성격장애, 조울증, 약물 의존증을 보일 경우에는 검사를 통과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승무원들은 매년 수백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엄격한 검사에도 불구하고 조종사들의 자살 시도는 간혹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미국에서는 총 24명의 조종사들이 비행 도중 자살을 시도했었다. 이 가운데 23명은 의도적으로 비행기를 추락시켰으며, 나머지 한 명은 비행 도중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하지만 모두 대형 여객기 조종사들은 아니었다.
조종사들이 자살을 시도하는 가장 큰 이유가 우울증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미연방항공청(FAA)은 지난 2010년 오래된 규정 하나를 폐지했다. ‘항우울제 복용 금지 규정’을 삭제해 필요한 경우 조종사들이 처방약인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을 허용한 것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