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3000억 달러’ 기후재원 합의…한국, ESS로 반전 노린다
특히 기후위기에 취약한 80여 개국은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등 극한 대립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개도국들은 "기후위기를 초래한 선진국의 책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일부 국가는 COP29 탈퇴까지 거론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한국은 이번 총회에서 명암이 교차했다. '오늘의 화석상'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고, 기후변화대응지수(CCPI)에서는 비산유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며 국제사회의 우려를 샀다. 특히 CCPI 평가에서 한국이 2030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없다는 점이 큰 마이너스 요인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회의 막바지 '에너지 저장 및 전력망 서약'에 참여하며 반전을 이뤘다. 이 서약으로 한국은 2030년까지 에너지저장장치(ESS) 용량을 6배 확대하고, 2040년까지 전력망을 8000만 킬로미터(km) 추가 또는 개조하는 목표에 동참하게 됐다. 또한 35개국이 참여한 ‘유기성 폐기물 메탄 감축’ 선언에도 서명하며 구체적인 감축 로드맵 수립을 약속했다.
이번 COP29에서는 처음으로 ‘식량과 농업분야 날’이 지정돼 농업 부문의 탄소 배출 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됐다. 각국은 농업 분야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탄소 배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향후 한국의 최대 과제는 내년 2월 제출 예정인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다. 현재 한국은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메릴랜드대 글로벌 지속가능성 센터는 한국이 2035년까지 58% 감축이 가능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국내 환경단체들은 더 나아가 지구 기온 상승 1.5도 목표와 누적배출량을 고려할 때 67% 감축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헌법재판소의 기후 소송 헌법불합치 판결로 인해 한국은 “과학적 사실과 국제적 기준에 근거한” 상향된 목표 설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영국이 COP29에서 2035년까지 1990년 대비 81% 감축 계획을 발표해 국제사회의 호응을 얻은 것처럼, 한국도 보다 야심 찬 목표 제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기후 리더십을 확보하려면 야심 찬 2035년 NDC 제시와 함께 OECD 화석연료 투자 제한 협정 참여가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한국이 ‘오늘의 화석상’을 받게 된 배경에는 OECD 수출신용 협정 논의 과정에서 화석연료 투자 제한에 주도적으로 반대해 온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 1950년부터의 누적 배출량이 세계 18위, OECD 국가 중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 5위, 1인당 배출량 6위를 기록하고 있다.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이자 현재 온실가스 배출에 큰 책임이 있는 나라로서, 이제는 구체적인 감축 계획과 실천으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COP29는 한국에 비판의 무대이기도 했지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 발판이기도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2035년 NDC 수립과 화석연료 투자 중단 등 향후 결단과 실천이 한국의 기후 리더십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