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노출 수위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감독이 자신의 연출 의도에 따라 노출 장면을 기획하고 배우들이 여기에 충실한 연기를 선보여 완성되는 노출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노출 수위는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또 한 가지는 영화의 제작 단계가 아닌 홍보 마케팅 단계에서 형성되는 노출 수위다. 영화의 실제 노출 수위와는 무관하게 마치 이 영화가 파격적으로 야한 영화인 듯 홍보 마케팅이 이뤄지면서 형성되는 노출 수위로, 당연히 이는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실체가 없는 노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아한 맛은 있지!”라는 카피를 앞세운 영화 <관능의 법칙> 역시 후자에 속한다. 엄정화 문소리 조민수 등 좋은 영화를 위해서라면 노출을 마다하지 않는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한 이 영화는 상당히 야한 영화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베드신이 다수 등장하며 섹스에 대한 거침없는 대사가 넘쳐나긴 하다. 그렇지만 노출 수위는 다소 낮은 편인 데다 이 영화의 핵심은 노출이나 섹스가 절대 아니다. 40대 여성들의 솔직한 모습을 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섹스 얘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건 그들의 일상일 뿐, 자극적인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어찌 말하면 이 영화는 ‘관능’이 일상이 된 40대 여성의 이야기다. 더 이상 섹스가 감춰야 할 만큼 금기시되고 부끄러운 이야기가 아닌 원숙한 여성들의 이야기다.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는 섹스를 매우 현실적이며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있다. 베드신이 자주 등장하지만 자극적인 이유로 베드신을 남발했다는 느낌은 거의 없다. 그냥 평범한 40대 여성의 일상을 다루다 보니 섹스 관련 얘기도 많은 것 뿐이다.
그만큼 섹스 관련 대화도 현실적이다. 열애 중인 40대 싱글맘 이해영(조민수 분)은 “곱게 좀 늙어! 왜 그렇게 밝혀?”라고 타박하는 20대 딸 김수정(전혜진 분)에게 “엄마는 뭐 클리토리스도 없는 줄 알아?”라고 항변한다. 또 젊은 20대 남자와 열애 중인 골드미스 정신혜(엄정화 분)에게 남편의 발기 부전 증상으로 힘겨워 하는 조미연(문소리 분)은 “잘하지? 잘하겠지. 약 안 먹어도 잘만 서겠지”라며 대놓고 부러워하고 정신혜는 “어리니까”라고 응수한다.
베드신 역시 자연스럽고, 노출 수위는 매우 낮지만 자연스러운 대화가 더 자극적인 대목도 있다. 연인 최성재(이경영 분)와 카섹스 도중 성재가 해영의 가슴을 만지려 상의 밑으로 손을 넣으려 하자 이해영은 “위로 넣어서 만져요”라고 말한다. 곧 이해영은 상의 목 부분을 어깨선까지 늘려 내리며 “안 오시는 줄 알고 너무 많이 먹었더니 배가 나와서요”라고 수줍게 말한다.
20대가 등장하는 카섹스였다면 가슴을 만지려는 남성의 손길을 거부하는 여성의 대사는 “싫어!” “왜 이래?” “아직 가슴까진 안 돼” 등이었을 것이다. 부끄러움, 내숭 내지는 설렘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그렇지만 더 이상 청춘이 아닌 40대 여성인 만큼 현실적인 대사가 등장한 셈이다.
@ 줄거리
이 영화는 40대 여성들의 솔직한 모습을 그려내는 데 충실하다. 방송 PD로 성공한 커리어우먼이지만 결혼은 못한 골드미스 신혜(엄정화 분)는 오랜 기간 교제한 남성이 젊은 여자와 결혼하는 상황에 상처 받는다. 그리곤 우연한 기회에 20대 어린 남자와 하루 밤을 보낸 뒤 진심인지 알 수 없는 어린 남자의 사랑 고백에 당황해 한다.
일주일에 3번은 부부 관계를 해야 한다며 당당하게 원하는 주부 미연(문소리 분)은 아이들까지 외국으로 유학을 보낸 뒤 남편과 적극적인 성생활을 즐기려 한다. 그렇지만 남편이 발기부전으로 자신과의 성관계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발기부전치료제를 몰래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고민에 빠진다. 게다가 남편에게 숨겨둔 애인이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뒤 충격에 빠진다.
신혜, 미연과 가까운 사이지만 그들보다는 나이가 더 많은 언니인 해영(조민수 분)은 20대 딸을 둔 싱글맘이다. 애인이 생겨 목하 열애 중이라 하루 빨리 딸이 결혼하길 바란다. 딸이 집을 떠나야 본격적으로 열애를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애인까지 있는 딸은 남자친구가 정규직이 될 때까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버티는 데다 애인 성재는 결혼하지 말고 지금처럼 연애만 하자며 은근히 결혼을 기대하는 해영을 실망시킨다.
이처럼 절친한 사이인 신혜과 미연 그리고 해영은 전혀 다른 처지의 40대 여성이다. 이처럼 각기 다른 상황의 세 캐릭터가 반짝반짝 빛나며 영화에 활력을 심어주고 있다. 영화 <싱글즈> <뜨거운 것이 좋아> 등을 통해 여성들의 솔직 담백한 모습을 그려내며 호평을 받았던 권칠인 감독의 저력은 2012년 제1회 롯데엔터테인먼트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14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대상을 수상한 이수아 작가의 시나리오를 만나 또 한 번 좋은 영화로 완성됐다.
한국 사회에서 40대 여성은 어떤 위치일까. 이를 매우 정확하게 보여주는 신혜와 미연, 그리고 해영의 대화 내용을 몇 가지 소개한다.
우선 병으로 수술을 받게 돼 불안해하는 해영과 그를 달래는 신혜와 미연의 대사다. “점쟁이가 요절할 팔자라더니” “그건 아니거든” “하긴 요절할 나이는 넘었구나” “넘었지~ 한참 넘었지. 아! 슬퍼.”
이웃으로 이사 온 20대 여자에 대해 얘기하는 신혜와 미연, 그리고 해영의 대화다. “걔 별로 안 예쁘지 않아?” “예쁘던데” “뭐가 예뻐? 나이가 예쁜 거지” “하긴, 젊은 애들은 깊이가 없어.”
또 이런 얘기도 한다. “우리 하루하루 늙어가겠지” “하루하루 안 예뻐지겠지” “에이~ 우리가 또 우아한 맛은 있지” “맞아! 우린 농염해” “우린 치명적인 매력이 있으니까” “걱정 마! 타 죽기 전에 꼭 불타오를 거니까.”
@ 베드신 / 노출 정보
영화 <관능의 법칙>에는 다양한 베드신이 등장하지만 노출 수위는 매우 낮은 편이다. 노출의 기준을 가슴 노출로 본다면 노출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전체적인 노출 장면 활용법 역시 제목처럼 관능적이고 에로티시즘적인 측면은 아니다. 다만 그네들의 일상 가운데 하나로 베드신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세 여배우의 베드신이 각기 다른 매력을 갖고 있는 만큼 베드신을 장면 별로 소개하지 않고 배우 별로 소개한다.
#조민수 베드신
조민수는 세 여배우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역할인 데다 20대 딸을 둔 싱글맘 역할이다. 그럼에도 베드신에선 가장 귀엽고 발랄하다. 젊은 시절에는 성에 매우 소극적이었을 것 같아 보이는 캐릭터지만 40대라는 나이는 그에게 섹스에 대한 자유롭고 편안한 생각을 선물해줬다. 그럼에도 본래 성격 탓에 수줍은 여성의 모습은 베드신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문소리 베드신
성에 가장 적극적인 여성이다. 남편과 일주일에 세 번은 성관계를 가져야 하는 적극적인 주부로 메이드 복장으로 남편을 유혹하기도 한다. 남편의 발기부전 증상을 알게 된 뒤에는 남편의 발기를 돕는 민간요법까지 배워서 직접 해줄 정도다.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고 맞바람으로 복수하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진 않는다. 이런 캐릭터는 베드신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데 다소 코믹한 설정이 강하다.
#엄정화 베드신
골드미스로 아직 미혼인 탓에 가장 농염하고 격정적인 베드신을 연이어 선보인다. 조민수가 수줍으면서도 발랄한 베드신, 문소리가 코믹한 베드신을 담당한다면 엄정화가 본격적인 베드신을 선보인다. 가슴까지 노출되진 않지만 엄정화의 베드신이 그나마 가장 수위가 높고 격정적이다. 특히 20대 젊은 애인과의 베드신인 만큼 여느 영화의 격정적인 베드신에 밀리지 않으며 엄정화의 몸매 역시 여느 20대 여배우에 뒤지지 않는다.
@ 에로 지수 : 20
전체적으로 에로 지수는 매우 낮은 영화다. 그렇다고 야할 줄 알았지만 야하지 않으니 보지 말아야 할 영화라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이 영화는 야하다는 생각을 배제하고 보면 매우 재밌게 몰입할 수 있는 40대 여성들의 로맨틱 코미디다. 세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탄탄한 이들인 데다 세 캐릭터 모두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노출 수위가 낮은 영화인데도 에로지수를 0이 아닌 20으로 정한 까닭은 노출이 아닌 자연스러움으로 다가오는 성의 아름다움을 적절한 수위로 잘 그려냈기 때문이다. 타 죽기 전에 꼭 불타오를 거라고 외치는 대한민국 40대 여성들의 농염한 관능은 에로 지수 따위로 평가할 수 있는 개념도 아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