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법인 일본 재건 이니셔티브가 진행한 ‘9가지 최악의 시나리오’ 프로젝트가 눈에 띈다. 이들은 싱크탱크로서 일본이 직면한 전략적 과제를 조사‧검증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2011년 9월 출범했다.
이들은 일본이 마주할 가능성이 높은 국가적 위기를 크게 9개로 구별했다. 9개의 위기를 바탕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렸다. 9가지의 위기가 시나리오대로 일어났을 때를 가정하고, 최악을 면할 수 있는 방책을 모색했다. 이들의 프로젝트 결과는 <일본 최악의 시나리오 – 9개의 사각지대>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 책의 1부에선 9개의 최악의 시나리오가 차례로 전개된다. ‘센카쿠 충돌’, ‘국채 폭락’, ‘수도직하지진’, ‘사이버테러’, ‘판데믹(pandemic)’, ‘에너지 위기’, ‘북한 붕괴’, ‘핵 테러’, ‘인구감소’ 등 가까운 미래에 일본이 직면할 수 있는 9개의 시나리오가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2부에선 1부에서 도출할 수 있는 교훈을 토대로 ‘법제도’, ‘관민협조’, ‘대외전략’, ‘총리 관저’, ‘커뮤니케이션’ 등 5가지 부문에 초점을 맞춰 효율적인 위기관리 혹은 위기대응을 위해 필요한 정책들을 구체적으로 제언한다.
9개의 시나리오 가운데 ‘북한 붕괴’ 부분이 가장 눈길을 끈다. 북한의 보수파가 김정은의 개혁개방 노선을 반대해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에서 시나리오는 시작한다. 한국 내부에서 내셔널리즘이 고양되면서 한국 주도로 ‘통일한국’이 등장한다. 통일한국은 일본에 위협이 된다. 통일한국 정부가 경제원조 명목아래 일본에 막대한 자금을 요구하기 때문. 이 밖에도 주한미군이 철수한 규모만큼 주일미군이 증강된다는 등 일본 시각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시된다.
각 시나리오가 연결되는 점도 흥미롭다. 예컨대 ‘수도직하지진’ 시나리오는 도쿄에서 지진이 발생한 직후의 이야기다. 지진으로 타격을 입은 화석연료 발전소는 대형화재의 원인이 되므로 자동 정지한다. 전력 없이는 컴퓨터로 작동하는 하이테크 방재시스템은 무용지물이다. 수도 기능이 마비되면 국채는 폭락할 수밖에 없다. 초고령화 사회를 증명하듯 갈 곳 잃은 노인들이 거리에 가득하다. 병원에서 제때 치료하지 못한 환자들은 방치되고,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다. 수도직하지진 시나리오에서 국채 폭락, 판데믹, 에너지 위기, 인구감소 등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함께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35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전쟁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1부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마다 다른 인물이 등장해 긴박한 상황을 겪고, 일본 정부는 무능한 존재로 나온다. 이 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부에선 일본 정부를 향해 해결책을 제시한다. 일본 재건 이니셔티브 지음. 조진구 옮김. 나남. 정가 1만 5000원.
이시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