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지난 2011년 16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됐지만 국내 정식 극장 개봉은 2014년 2월에서야 이뤄졌다. 총 제작비 6억 위안으로 대만 역대 최대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으로 대만 영화산업의 명운이 걸린 작품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다. 원제는 <賽德克‧巴萊(上):太陽旗>, 영문제목 <Seediq Bale>다. 러닝타임은 144분으로 조금 길다. 제68회 베니스 영화제의 경쟁부문 출품작이며 제48회 대만 금마장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 대만 영화산업의 명운이 걸려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단순히 제작비가 많이 들었기 때문은 아니다.<워리어스 레인보우: 항전의 시작>는 웨이더솅의 드림 프로젝트로 제작된 영화로 12년 동안 시나리오를 10번 이상 가다듬었을 만큼 공을 들인 작품이다. 린코 지역의 대지 3600㎡에 30년대의 우셰 거리를 재현하는 세트를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영화 선진국인 한국과 일본의 특수효과 전문가들까지 투입됐다. (16회 부산국제영화제 소개글 참조)
특히 그 동안 대만에서 터부시돼 온 ‘우서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대만 영화계에서 상당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서 사건의 주역인 시디그족은 2008년에서야 대만 정부를 통해 독립적인 원주민 부족으로 공식 인정받았다. 이로 인해 시디그족을 중심으로 한 우서 사건을 다룬 영화가 제작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서 사건’은 1930년 10월 27일 대만 난터우현 런아이향의 산간지대 우서 지구에서 고산족 원주민 시디그(Seediq) 부족이 일본 군경을 습격한 사건을 의미한다. 청일전쟁의 결과로 1895년부터 50년 동안 일본제국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대만에서 14개 고산족 원주민 부족은 최하층 계급으로 분류되어 가혹한 지배와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강제 노역으로 노동 착취는 기본, 대대로 살아온 사냥터를 빼앗기고 강제 이주를 당하는 상황에서 이뤄진 항일투쟁이 바로 우서 사건이다. (박문각의 시사상식사전 참조)
물론 우서 사건의 결말은 참혹한 비극이다. 그렇지만 이 부분은 영화 <워리어스 레인보우>의 속편에서 다뤄질 내용인 만큼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당시 일본군은 독가스까지 살포하며 시디그 족의 항일투쟁을 탄압했다. 영화 <워리어스 레인보우>의 주인공인 모우나 루도 족장의 실제 삶을 놓고 볼 때 <워리어스 레인보우>의 속편은 참 슬픈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서 사건 초기까지를 그린 <워리어스 레인보우: 항전의 시작>에서 모우나 루도는 너무나 멋진 족장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한국이었다면 해방 이후 독립투사로 추앙받았을 모우나 루도 족장과 독립유공자 대접을 받았을 시디그 족이지만 대만의 현실은 달았다. 국민당 정부의 대만에서 원주민은 소외받았고 이로 인해 우서 사건은 대만 영화계에서도 터부시 된 소재가 되고 말았다.
항일투쟁을 다룬 영화인 터라 한국 관객 입장에서도 쉽게 동화돼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다. 평소 잘 알지 못하던 대만의 원주민들 이야기지만 일제 탄압이라는 참혹한 시대의 모습은 식민지 시대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원주민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라 할리우드 영화 <아포칼립토>가 생각나는 부분도 많다. 일제 침략까지의 시기를 그린 영화 전반부에선 <아포칼립토>의 느낌이 강하다. 그렇지만 30여년의 일제 지배기를 겪은 뒤인 영화 후반부는 한국의 일제 식민시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왜 시디그족이 그 상황에서 목숨을 내건 항전을 시작해야 했는지를 적어도 한국 관객들은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중국 관객들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물론 최근 급속도로 우경화하는 일본 관객들은 미개한 원주민들의 이야기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젊은 시절 최고의 전사이던 모우도 루도는 30여년의 일제 지배기를 겪은 뒤 일제의 지배에 순응하는 중년남성이 돼 있다. 일제의 가혹한 지배와 탄압에 격분하는 시디그족의 젊은이들을 말리며 일제에 순응하려 하는 족장 모우나 루도의 모습이 더 슬프게 느껴지는 것은 현실을 살아가는 요즘 중년 남성들 역시 그의 모습을 닮아 있기 때문이다. 부조리한 현실에 적응하고 그냥 그냥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중년 남성들 역시 젊은 시절엔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 터이니 그들 역시 또 다른 모우나 루도 일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모우나 루도는 일어선다. 항전의 중심에 서서 일제와의 처절한 항전을 주도한다. 결국 우서사건의 중심은 피 끓는 청춘이 아닌 현실에 적응한 척 살아왔지만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살아온 중년 남성 모우나 루도다. 이 부분에선 우리네 중년 남성들도 희망을 갖고 이 영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 줄거리
영화 전반부는 야만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원주민들의 이야기다. 다른 부족과 사냥터의 경계를 두고 참혹한 살육전을 마다하지 않는 전사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족장의 아들 모우나 루도(임경대 분)는 단연 시디그족 최고의 전사다. 대만의 고산 지대에서 살아가는 이들 원주민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서로 경쟁하고 교류하며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사냥터를 노리는 새로운 적이 등장한다. 그들은 바로 일본 제국이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만의 지배권을 인정받아 1895년부터 식민 통치를 시작한다.
일제가 시디그족 등 원주민들이 사는 대만 중심부의 고산지대에 욕심을 내는 까닭은 바로 천연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총칼을 앞세운 일제는 무참히 원주민 마을을 공격하고 결국 시디그족은 일제 앞에 무릎을 꿇는다.
영화 후반부는 일제 식민 통치가 30여년 가량 이어진 뒤다. 이미 대만의 원주민들은 막노동을 강요당하며 혹사당한다. 원주민 여성들을 일본군의 술시중을 들고 원주민 아이들은 일본인이 세운 학교에서 일본말을 배운다. 계속되는 자원 수탈로 사냥터는 줄어들어가고 사냥을 하며 살아가던 원주민들은 일제에 의해 터무니없이 적은 돈을 받고 막노동을 강요당한다.
이런 모든 일제의 탄압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살아온 시디그족과 모우나 루도 족장이지만 일제의 행태는 점차 참을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는데….
@ 배틀M이 추천 ‘초이스 기준’ : 새로운 장르의 항일투쟁기를 원한다면 클릭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일제 식민지 지배에 맞서는 항일투쟁기를 그리고 있다. 항일투쟁기를 그린 영화는 한국에도 많다. 만주 벌판에서 일본군을 물리친 독립군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몇몇 독립투사들의 역사적인 항거를 그린 영화들도 있다. 삼일운동 등 독립운동을 그린 영화도 넘쳐 난다. 중국과 홍콩 등 중화권 영화에도 이런 항일 투쟁기는 많다. <엽문>처럼 중국 무술을 중심으로 한 영화부터 <색계>와 같은 독립운동을 그린 영화도 있다.
반면 <워리어스 레인보우>는 대만 원주민의 항일 투쟁기를 그린 영화라는 점에서 한국이나 중국의 항일투쟁 영화와는 커다란 차이점을 갖고 있다.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대만의 원주민이 그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아포칼립토>의 원주민 전사처럼 이 영화는 대만의 원주민 전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원주민 전사들의 항일투쟁기라는 점에서 기존 항일투쟁 영화와는 전혀 다른 색채의 영화다.
@ 배틀M 추천 ‘다운로드 가격’ : 8000원
워낙 대작인데다 내용도 탄탄해 다소 높은 다운로드 가격 책정했다. 작품성은 이미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입증 받았다. 원주민 전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알려져 다소 생경하게 다가오는 영화일 수 있지만 일제의 탄압과 이에 맞서는 항일 투쟁기를 그린 영화라는 점에서 적어도 한국 관객에게 이질감을 그리 많이 느껴지지 않을 영화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숨겨진 진주 같은 영화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영화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