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양’도 그의 ‘지갑’이었다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정정 및 반론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 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보도들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일이 정정 및 반론보도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본사는 기독교복음침례회 교단 및 유병언 전 회장의 유족과 합의를 통해 다음의 통합 정정 및 반론보도를 게재합니다. 1. 구원파의 교리 폄하 및 살인집단 연루성 보도에 대하여 일부 언론은 기독교복음침례회 교리를 한번 구원 받으면 무슨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가르치며, 유병언 전 회장의 사업이 하나님의 일이며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구원이고 예배라는 교리를 가졌다고 보도하였으나 해당 교단은 그런 교리를 가진 사실이 없다고 밝혀왔습니다. 2.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구원파 신도라는 보도에 대하여 세월호 사고 당시 먼저 퇴선했던 세월호 선장 및 승무원들은 모두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가 아니며, 다만 승객을 먼저 대피시키다 사망하여 의사자로 지정된 故 정현선 씨와, 승객을 구하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구조된 한 분 등, 2명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3. 금수원 관련보도에 대하여 일부 언론은 금수원의 폐쇄성과 반사회적 분위기를 보도하였으나 기독교복음침례회 교인들은 금수원을 자유롭게 출입하고 있으며, 행사 때는 외부인들도 자유롭게 출입 가능하여 폐쇄적인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은 명백한 오보라고 밝혀왔습니다. 금수원의 땅굴을 비롯해 지하벙커 등 추측성 보도 또한 검찰조사 결과 사실무근으로 밝혀진 바 있습니다. 4. 구원파의 내부 규율 및 각종 팀 관련 왜곡선정 보도에 대하여 기독교복음침례회는 출입이 자유로운 곳이고 이탈자를 감시하거나 미행하는 팀을 운영하였다는 보도는 사실무근임이 밝혀왔습니다. 5. 기독교복음침례회 및 유병언 전 회장의 5공화국 유착설 보도에 대하여 일부 언론은 유병언 전 회장이 1980년대 전경환 씨와의 친분 관계와 전두환 대통령의 5공화국과의 유착관계를 통해서 유람선 사업 선정 등 세모그룹을 급성장시킬 수 있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병언 전 회장과 기독교복음침례회는 5공화국과 유착관계가 없었으며 지난 5월 21일 인천지검에서 공문을 통해 이를 확인해 준 바 있습니다. 6. 유병언 전 회장의 50억 골프채 로비설 보도에 대하여 일부 언론은 유병언 전 회장이 사돈을 동원하여 50억 상당의 골프채로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했다고 보도하였으나, 지난 10월 검찰이 해당 로비설은 사실이 아니고 세모도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회생하였음을 확인해 준 바 있습니다. 이에 해당 기사를 바로 잡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복음침례회는 언론사에 다음과 같은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언론은 출연자들의 일방적 주장을 경계하면서 객관적이며 균형 있는 취재보도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한편, 이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언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 주기 바랍니다. 수사가 진척되고 사실이 밝혀지면서 법의 판단을 기다리지 않고, 단독보도와 선정적인 보도에 집중하며 여론을 호도하여 사건을 여론재판으로 끌어간 세월호 사고 관련 보도 행태를 돌아보고, 법치주의 국가로서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도록 노력해 줄 것과 또한 대형 참사로 온 국민이 비탄에 잠긴 이 시기를 자신들의 입지와 교권확보로 이용하는 세력들을 엄중 경계하는 현명함도 당부 드립니다.” 기독교복음침례회 측의 자세한 입장을 ‘구원파에 대한 오해와 진실(http://klef.co.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정정 보도2 제주도에 소재한 ‘남녘수산’은 유병언 전 회장이나 청해진해운과는 무관하며, 정동섭 씨가 극동방송국 재직 시절 4만 원의 급여를 받아 노동력 착취를 당했다는 것에 대하여 조사 결과 당시 9급 공무원 급여는 1만 8000원으로 4만 원이라는 급여는 다른 직종에 비해 매우 높은 급여였으므로 노동력 착취는 사실 무근이며, 금수원 이 모 상무가 여자 경찰관을 통해 신도 사찰을 하거나 유대균 씨의 도피를 도왔다는 보도는 사실 무근이며, 유 전 회장이 은신했던 별장에서 발견된 총기류는 무기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장식용에 불과하며, 1997년 당시 유병언 전 회장의 세모그룹은 정상적인 회생 절차를 밟은 것으로 확인되었으므로 고의로 빚털기를 한 것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유병언 장학생’이나 ‘유병언 키즈’에 대한 주장은 확인된 사실이 아니며, 이용욱 전 해경 국장은 기독교복음침례회 현 신도가 아님을 확인하였습니다. 아울러, 김혜경 씨가 유병언 전 회장의 비서를 역임하거나 재산을 관리했다는 주장, 유 전 회장이 “김혜경이 배신하면 우리는 망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확인된 사실이 없습니다. 그리고 유대균 씨가 운영했다고 알려진 카페도 실제로는 김 모 씨가 사장으로서 운영했으므로 사실 무근임을 알려드립니다. 더 나아가 해당 카페에서의 비밀 친목모임이 있었다는 주장도 입증할 만한 사실이 없음을 밝혀드립니다. 기독교복음침례회 측의 자세한 입장을 ‘구원파에 대한 오해와 진실(http://klef.co.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일요신문] 세월호 선사 청해진해운의 실제 오너로 알려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둘러싼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검찰은 세월호 침몰 사건과는 별개로 유병언 전 회장의 횡령·배임·탈세 혐의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전방위적으로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 1997년 8월 한강유람선 사업 실패로 2000억 원대의 빚을 지고 부도를 냈는데도 빼돌린 돈으로 불과 1년 6개월 만에 청해진해운으로 재기에 성공한 유병언 전 회장. 통상적으로 기업이 부도가 나면 채무변제를 위해 오너 일가 재산까지 동원되면서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입게 되는데, 유 전 회장은 예상을 뛰어 넘는 속도로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하고 수십 개에 달하는 계열사를 보유한 수천억 원대 자산가로 성장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배경에는 전두환 정권의 5공화국과 이어진 6공화국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정치권과 깊숙한 유착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되지 않을 정도의 미스터리가 유 전 회장 주변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 전 회장이 이처럼 화려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신비에 가까운 비밀은 뭘까.
유병언 전 회장. JTBC 방송화면 캡처.
종교방송인 극동방송에 부국장으로 취임했으나 정통 기독교 교단으로부터 사이비 이단이라는 항의를 받다가 쫓겨 나기도 하는 유 전 회장은, 이후 “교제의 구심점이 필요하다”며 신도들 12명을 모아 당시 부도 위기의 ‘삼우상사’를 인수해 삼우트레이딩을 설립한 뒤 사장의 자리에 올라 사업을 본격화한다. 그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돈이나 귀중품은 하나님의 것이다”, “돈을 차용해서라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등의 말로 신도들의 돈을 끌어 모았다고 전해진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서울 염곡동 소재 자택. 일본의 언론사에서도 취재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이후 1980년대에는 ‘세모’라는 이름으로 스쿠알렌(상어에서 추출한 불포화 지방산으로 만든 건강식품), 한강 유람선 등의 사업을 펼치며 세를 급격히 불려 나갔다. 특히 태권도 공인 7단으로 알려진 유 전 회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씨와 대구에서 무술을 통해 맺은 친분을 바탕으로 전두환 정권의 비호 속에 승승장구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83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에는 경호 인력을 지원해 줄 정도로 전 전 대통령과 가까워져 핫라인까지 생겼던 것으로 전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유 전 회장은 이른바 ‘오대양 사건’으로 한 차례 큰 풍파를 만나게 된다. 오대양 사건이란 지난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오대양’의 공예품 공장 식당 천장에서 이 회사 대표 박 아무개 씨와 그녀의 두 아들, 종업원 등 신도 32명이 손이 묶이거나 목에 끈이 감긴 채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박 대표가 사채 170억 원을 갚지 못해 집단 자살했다는 것이 당시 수사당국의 공식 발표였다.
당시 유 전 회장은 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며 두 차례에 걸쳐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다만 유 전 회장은 구원파 신도들로부터 거액을 빌린 뒤 갚지 않아 상습사기 혐의로 1992년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5선 국회의원을 지낸 박찬종 변호사가 일정 부분 역할을 하게 된다.
1990년대 초반 ‘유병언 전 회장이 오대양의 배후’라고 폭로한 박찬종 변호사(왼쪽)와 당시 유 전 회장의 상습 사기사건 수사를 맡은 김각영 전 검찰총장.
박 변호사는 유 전 회장과 전두환 정권의 유착설에 대해서도 “전두환 정권과 상당한 유착 관계가 있다는 것을 ‘증거로 확실하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오대양 사건 배후를 조사해 놓고 무마한 흔적들도 있고, 전 대통령이 유 씨의 조그만 중소기업 공장도 일부러 방문한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 정황상 그렇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87년 경기도 용인에 있는 오대양의 공예품 공장 식당 천장에서 집단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연합뉴스
오대양 사건에 대한 수사를 담당하고 지휘했던 대검 중수부장 출신의 심재륜 변호사도 지난 2012년 초 한 월간지 인터뷰를 통한 회고담에서 오대양 사건의 사망자들이 조달한 사채가 구원파를 거쳐 세모 측으로 유입됐음을 나타내는 수표 기록이 발견됐다며 오대양과 구원파, 세모의 관련성을 언급했다.
이 인터뷰 때문에 심 변호사는 유 전 회장으로부터 소송을 당했지만 서울남부지법은 심 변호사의 회고담을 허위 사실이라고 단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오대양 사장 박 씨가 1983~1984년 구원파인 송 아무개 씨에게 4억 6300만 여 원 상당의 수표를 송금한 사실, 송 씨의 계좌에서 인출된 수표 1억 7500만 원이 세모 측에 전달된 사실, 오대양 직원들이 사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 사실 등을 모두 인정했다.
수많은 의문만 남긴 채 덮어져 버린 오대양 사건과 함께 미스터리의 중심인 유 전 회장도 사업의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1997년 부도를 맞게 된다. 하지만 그는 금세 다시 신도들을 규합해 청해진해운을 설립하고 그동안 쌓은 정관계의 끈끈한 커넥션을 활용해 화려한 부활을 하게 된다. 정관계 커넥션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미 한 번 크게 망한 회사의 대표를 위해 추종자들이 돈을 들고 다시 뭉친다는 게 언뜻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과거 구원파로 활동하며 8년간 유 전 회장의 통역을 맡았던 정동섭 전 한동대 외래교수는 이에 대해 “유병언 씨는 일단 달변이고 설득력이 있다. 그의 ‘구원파’라는 것은 한마디로 ‘구원지상주의’다. 구원이 궁극적인 가치고 유 전 회장은 신도들에게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만들어 준다. 그 다음 부터는 모든 신도가 형제·자매가 된다. 신도들과 신도들이 돈을 내 만든 회사들은 모두 유병언 개인을 위해 오로지 그 목적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